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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Feb 17. 2024

투명함, 진심에 대하여

사람이 성격을 비유할 때 가장 많이 활용되는 동물은 여우와 곰일 것이다.

어찌나 비유를 많이 했던지 단순히 여우, 곰이 아니라 여우 같은 곰, 곰 같은 여우, 여우의 탈을 쓴 곰, 곰의 탈을 쓴 여우 등등 다양한 파생어가 존재한다.

 

여우는 흔히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상대의 마음을 쉽게 간파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상황을 여유롭게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을 의미하고,

곰은 속내를 쉽게 들켜버리는 사람, 겉과 속이 대체로 일치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나는 곰이다. 여우처럼 타인을 조종하기보다 스스로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익숙하다.

정확히 말하면, 진심을 속이는 방법을 잘 모른다.

속이고 있노라면 입이 근질근질하고 마음이 불편하다.


한때는 여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흔히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는 데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면 그것이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는 것.

약육강식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진심을 숨기는 것을 택한다.

사회가 규정하는 가치에 대해 쉬이 옳다고 믿어버리던 줏대 없는 과거의 나는 그렇지 못한 나를 바꾸고 싶어 했다.

‘해나님은 참 순수해요. 그런 모습이 좋아요.’라는 피드백이 그리 달갑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아직 직장 생활 5년 차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진심이 아닌 모습으로 일하는 건 쉽지 않다.

아니, 그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 내가 순진한 걸까.

“해나님, 지금 전략적으로 이야기하셔야 해요. 전 해나님이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어요.”

이런 팀장님의 코멘트는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마치 진심을 속이라는 듯 느껴졌다.

왜 전략적으로 이야기해야 할까? 마음 가는 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걸까?

아무래도 나의 모습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받아들여야 함이 분명했다.


과연 여우 같은 것만이 좋은 걸까? 곰은 결국 여우에게 잡아 먹힐 수밖에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겉과 속이 일치한다는 것은 곧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하고, 투명함을 의미한다.

그런 모습은 상대방에게 신뢰를 가져다준다. 적어도 다른 주머니를 차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그리고 결정적일 때 사람은 결국 진심에 움직이게 되어 있다.


사랑에서도 나는 그런 방식을 택한다. 솔직하게 표현한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아니.. 사실 여전히 싫어하는 걸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끊임없이 주고 싶은 것이 사랑의 궁극적인 형태라고 믿는다.

갈등이 있을 때면 많은 대화를 통해 풀어가고자 한다.

그리고 상대도 그랬으면 한다. 본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스스럼이 없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투명하지 않은 사람이 여전히 불편한 나는,

진심을 속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진심을 속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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