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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Mar 02. 2022

선물처럼 내린 봄비

3월 첫날에 봄비가 내린다

3월 1일이라니 안 그래도 짧은 2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가버렸다. 제대로 인사를 할 새도 없이 말이다. 하루는 긴 것 같은데 2~3일 짧다고 2월이 그리도 짧게 느껴지니 참으로 간사한 인간이다. 더 간사한 것은 언제부터 내가 그렇게 3월을 기다렸다고 3월 3월 3월 노래를 불렀는데 올 것 같지 않은 3월은 어느새 눈을 뜨기도 전에 성큼 와 있었다. 


"여보~~ 나와봐 밖에 비 온다."

'엥? 비라고? 오늘이 드디어 3월 맞지? 그럼 봄비네?'


3월 첫날에 봄비가 내린다. 봄이 오는 것만도 감사한데 선물 같은 봄비가 내린다. 현업에 있을 때 3월은 내게 반반 치킨 같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신입생이 입학을 한다. 고3까지 인생 다 산거처럼 얼굴은 누렇고 표정은 온갖 고통을 다 짊어진 듯 찌들어있던 아이들은 대학문을 열면서 다시 새내기가 된다. 1학년 첫 수업에 만나는 그 신선함에 나는 늘 3월이 기다려졌다. 


반면 겨울 내내 방학이라는 특혜 아닌 특혜가 주어진 시간에 나만의 시간을 누리며 부캐에 충실하느라 야무진 시간을 보냈기에 개강을 하는 3월이 반가울 리가 없었다. 1학년은 신선한 맛이라도 있지만 4학년은 또 취업 걱정에 찌들어 강의실이 한숨으로 가득 차 있다. 때로는 격려도 하고 때로는 위로도 하고 때로는 채찍질도 하면서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지만 강의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마음이 답답하다. 나는 영어선생인데 내가 왜 학생들 취업 걱정에 마음이 무겁지? 


영어 수업만 하면 좋겠는데 간혹 정치 경제 사회문제로 빠지기만 하면 참 답이 안 나오는 현실에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그런 3월을 참 오랜 시간 보냈던 것 같다.

 


집을 짓고 입주한 지 딱 6개월이 되는 날이다. 그러니까 가을 겨울을 보낸 셈인데 입주하면서는 이거 저거 정착에 정리에 분주했다. 집을 지은 곳은 유난히 더 춥다는 지역이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 덕에 무탈하게 추운 겨울을 잘 보냈다. 그리고 기다렸다. 봄을 아니 3월을!



3월이 와서 그런가? 왜 밥맛도 없지? 아니 없는 게 아니라 안 먹어도 배부른 게 이런 건가 싶다. 그냥 따끈한 우유 한잔과 커피 한잔으로 봄을 맞이하고 싶다. 반찬 냄새 풍기지 않고 단아한 모습으로 그렇게 봄을 만나고 싶다. 추운 겨울 동안은 힐링 룸을 몇 번 열어 보질 않았다. 주택에서는 아무래도 난방비를 신경 써야 한다. 1~2월은 특히 신경 써야 하는 기간이다. 그러니 3월을 더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홍 집사(남편)가 어김없이 모닝커피를 내린다. 봄비가 내리니 커피 내리는 향이 더 진하게 집안에 휘감긴다.

"우왕~~~ 커피 향 직인다! 역시 커피는 당신이야!"

꾸준한 칭찬과 리엑션은 친정아빠가 내게 몰빵한 유전자 중 하나다. 아빠는 첫술을 뜨시면서 수저를 놓으실 때까지 엄마의 음식에 칭찬과 리엑션을 아끼지 않으셨다. 칭찬과 리엑션이 엄마의 맛난 음식을 평생 누리셨던 아빠의 비결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오늘은 힐링 룸에 가서 마실까?"



힐링 룸 자리엔 홈트 룸을 만들려고 했었는데 아고야 막상 짓고 보니 너무 좁다. 매트 하나 펴기도 빠듯하다. 그래서 수정이 된 방이다. 애초에 계획이 없었던 테이블을 설치하고 '힐링 룸'이라 이름을 지었다. 말한 대로 된다고 이름을 그리 지어놓으니 왠지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남동생이 데리고 온 스피커가 앙증맞다. 이은하의 노래 '봄비'가 봄비처럼 조용히 흐른다. 얼마 전 TV에서 그녀의 살아온 인생 스토리를 접한 적이 있다. 참으로 상상도 못 할 고생과 기막힌 사연에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그녀의 히트곡 중 하나 '봄비'는 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이제 중년을 넘어선 그녀에게 '봄비'는 젊은 시절의 그것과 많이 다를 것이다. 


내가 만난 2022년 3월 1일의 봄비처럼 말이다.


3월 첫날에 선물처럼 내리는 봄비가 조용히 속삭인다.

'우쭈쭈~~~지금까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지요. 이제 쉬엄쉬엄 쉬어가요... 봄비도 즐기면서요.'


3월 첫날 봄비 내린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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