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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Jan 21. 2022

이혼했는데, 전남편의 아버지가 나에게 친절했던 이유


나의 이혼은 그야말로 친권 공통, 양육권 아빠... 그러나 현실은 반반 육아 상태

그 상태로 2년째 이어져 가고 있으며, 곧 큰 아들은 시아버지네 회사에서 일을 할 예정에 있다.     


이혼과 동시에 시댁 부모님은 자기 아들과 연을 끊다시피 하였고, 원래도 희미했던 경제적 지원도 아들에 대한 실망으로 해 주지 않는 눈치다.     


이혼은 전남편의 귀책사유로, 상습적인 폭력과 경제적 무능력함..... 그리고 여자 문제로 하게 되었으니, 교회 장로님 체면에 아들 보기 못마땅한 건 당연했을 거다.     


이혼 당시 집도 경매로 넘어갔던 상황이라, 위자료는커녕 재산분할 한 푼 받지 않고 인연을 끊어야 했으므로 비겁했지만, 원가족(나와 남편의 부모님)의 경제력을 비교해 그래도 단단했던 남편이 양육권을 가지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혼 후 나는 양육권을 가져오지 못한 죄책감에 치열하게 우울했고, 전남편은 그동안 돌보지 않았던 살림과 양육과 교육을 떠맡아 위태위태 했다.     


그러니 떡하니 못 끊을 인연으로 남아, 반은 내가 교육과 육아의 일부분을 담당했던 것은 순전히 양육권을 버린? 아이들에 대한 엄마의 비루한 미안함과 쓸데없는 불안함을,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포장했던 나만의 '모정'이었다.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파탄난 가정의 이혼으로, 나 또한 그동안 돌보지 못한 나의 아픈 감정을 추스릴 새도없이  아이들에 대한 부담감까지 떠맡고 보니, 앞날이 막막하고 살림의 한 푼이 절실하다 못해 공포로 다가왔었던 시간....      


이혼 후 시아버지는 아이들을 핑계 삼아 자주 전화를 걸어왔다." 어떻게 지내는지" "부족한 것은 없는지" 물어오는 전남편의 아버지를... 그저 배척하기에는 내가 너무 모자란 존재라, 그 목적 가득한 호의를  받고 싶어 졌다. "아니, 그런들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남편은 그저 밖으로만 내 돌며 아이들에 대한 육아보다 오늘의 향락이 먼저이고, 나 또한 돈 한 푼 없이 이혼하고 집나와 나이 40 넘어 혼자 자립이란 것을 하고 있는 마당에 '자존심'이 뭐고 '윤리도덕과 상식'이 뭐라고, 아이들에게 돌아갈 경제적인 호의를 무시하겠느냐?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쥐어주지 못하는, 그리고 내가 여유 있게 내밀지 못하는 아이들의 용돈과 외식비용(20만원)을 전남편의 아버지로부터 받고있었다.

그러니 시아버지의 전화를 무시할 수도 없고, 밥 먹자는 제안을 피하기도 좀 뭣한 상태를 내가 스스로 만들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내심 시 아버지의 속내가 뭔지를 알면서, 웃으며 전화받으며 '비즈니스'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없이 못마땅하던 중....     

그간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드러내시는 시아버지의 말씀....         


“나에게 며느리는 너 하나뿐이다. 남자는 그래 봤자 나이 들고 철들면 조강지처 찾아오게 된다. 아버지 말 믿어봐라 그래 될 테니...

아버지 상가에 편의점 하나 차려줄게, 니 하는 일도 힘들잖아 여기 와서 후니 호야랑 너랑 같이 살면 안 되겠냐? "    


제 아들, 사람 구실 못하고 있어도 나이 더 들고 갈 때 없으면 부모 대신 네가 거 둬 주란 말을  “응답하라~” 버전으로 돌리지 않고 어른 말로 훈계처럼 하셨다.     


처음에는 울분이 올라왔다. 그간 ‘맞고 사는 아내’라는 이 말에 스스로 지쳐, 사회적인 잣대와 시선에 부딪혀 당당하게 이혼사유조차 이야기 못하는 내게 그 아들을 받아주라니..... "내가 책임  못질 때가 되면, 너에게 좀 '토스' 할게 네가 좀 책임져 줄래?" 이렇게 밖에는 안 들려, 울컥 쏟아지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받은게 있는 죄인인지라 속시원하게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며 전화를 끊었다.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도 밀물과 썰물처럼 시간이 지나면 왔다 갔다 하더라...


썰물 때를 기다려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하며 생각한 것은, 나 또한 나의 편의를 위해서 경제적인 지원을 받아놓고는 그런 생각할 줄 몰랐냐? 라는 나에 대한 부끄러운 직면과 반성이었다.     

아마도 시아버지는 자신의 전화에 살갑게 대해주는 이혼한 며느리에게" 희망고문"당했을지도 모른다.     


이혼이란 끝났지만, 어떠한 이유에 몰입되면 끝나지 못할 인연의 연결 선상 위에 하나인 것 같다.


경제적으로 오롯이 자립해서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멋지게 다짐하고 글을 쓴 것들이 부끄럽다     

끊어낼 것은 이성적으로 단절하는 것이 맞는 것인데, 당장에 물 한 모금이 절실하여 관계 단절을 못했던 나에게 오늘은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나름의 변명을 하고 싶어 글을 써 본다.    


“오늘 아버지 생일이다. 같이 밥 먹으러 가자”

라는 문자를 받고 답장을 드렸다.     


“아버님, 손자에게 베풀어주시는 크신 도움은 정말로 유용하고 소중하게 잘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더 이상 아버지의 며느리는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손자들의 엄마로만 대해주신다면, 도와주신 은혜에 아버님 손자 잘 키우는 것으로 보답을 드리겠습니다. 아버지 생신은 아드님과 손자들에게 축하받으시면서 보내시길 바랍니다.”     


  


ps. "재혼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30평 빌라를 줄게 "라는 글을 다시 찬찬히 읽어 보았다.

그때의 다짐들을 다시 되새기면서, 비록 모양새는 남들이 말하는 '비정상 가족'이라 할 지라도

엄마의 역할에서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부끄럽지 않았노라고 말하고 싶다.

https://brunch.co.kr/@young2is/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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