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나가는 '공과금'에 내가 머무는 집에 대한 ’ 빌린 금액‘을 갚기에도 허덕였고, 아이들 '뒷바라지'까지 맡아서 하다 보니 정작 ’ 나는 언제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을까?‘ 계획이 서질 않았다.
그 무렵 시부모님이 전화가 왔다.
내용은 거두절미하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 “였다.
이제껏 ’ 시부모님‘이지만 ’ 부모님‘같이 모셨고, 이혼하는 마당에 어찌 말씀 한 번을 제대로 못 드린 것 같아 죄송한 마음에 만나기로 했다.
만나자마자 ’ 자기 아들‘ 험담을 늘어놓으시길래 ’ 올 타구나‘ 맞장구를 쳐주면서 이야기가 흘러갔는데, 그러던 중 ...
“네가 재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면, 아빠 회사 옆에 있는 30평 빌라, 그거 니 명의로 줄게”
"그리고 내 회사 옆에서 있으면 아이들 케어도 나랑 너희 엄마가 해줄 수 있고..."
집한칸 없이 낑낑 대고 있는 나는 “이 무슨 소리지?” 싶었다.
또한 '재산분할' 한 푼 못 받고 나온 나는 ‘본전 욕심’도 훅 올라왔다.
‘그런데 저 조건은 뭐지????‘
이야기 인 즉슨 나를 ‘자기 딸’로 생각한다고...'여자 혼자' 사는 게 얼마나 힘들겠냐면서 아이들을 먼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순간 망설여졌다...
집이 생기면 지금 당장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을 테고,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아이들 양육비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생활을 보장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났다.
더군다나 나는 ‘결혼제도’라는 것이 지긋지긋해서 누구를 만나게 되더라도(만날 생각도 없다.) 결혼은 안 하겠다는 “절대적 비혼 주의자”였기 때문에 이 조건이 나쁠 일 없었다. (또한 누구 만날 시간적 마음적 여유도 없다.)
그러나
“사양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생각을 바꿔보니 내가 딸이면 저렇게 말할 일 없다. 아무리 44세에 뱃살 늘어진 아줌마로 늙어가더라도 딸이라면 ‘새 인생’ 살아보라고 권할법한데 나에게 재혼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니...(재혼만 안 하면 연애는 해도 돼요?라고 물을 뻔했다.)
그리고 시부모님 회사 바로 옆 빌라에 나와 아이들을 두고 보겠다는 그 이야기는 ‘이혼녀인 며느리’를 감시하고 있겠다는 말로 들렸다.
또한 재혼하지 않고 ‘전남편이 돌아오면 언제든 받아들일 준비’ 하고 있으라는 말처럼 들렸는데 시부모님은 자기 아들 늙어 병수발 할 ‘요양보호사’와 집안일할 ‘가정부’가 필요했나 보다.
'이혼소송’ 준비로 법 공부를 ‘고시 치듯’ 했던 나는 알았다. 그런 조건으로 제공받은 재산은 조건을 이행할 필요도 없고, 이행하지 않았다고 재산을 돌려줘야 할 법적 근거가 없음을,..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에 속한다.)
그렇다고 이런 것을 이용하여 아이들의 할아버지를 ‘기만’하고 싶진 않았다.
‘빌라는 사양하겠습니다. 제 힘으로 모아서 아이들 있을 공간을 마련하는 떳떳한 엄마가 되겠습니다. 정히 저와 아이 들을 생각하신다면 아이 아빠가 지금 모른 척하는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세요 “
라고 말했다.
시부모님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면서 서너 번 더 나를 설득했다.
”그 집이 곧 재개발이 될 것 같은데, 내일이라도 당장 너 명의로 해 줄게. 이사는 천천히 해도 된다. “
”아니요 그 재산은 아버님 것이지 않습니까? ’ 재산분할‘이든 ’ 양육비‘이든 받더라도 아이 아빠가 정신 차리고 다시 일을 하고 돈을 모으면 그때 받겠습니다. “
결론으로 아이들 용돈 25만 원을 아이들 통장으로 넣어주는 것과, 스쿨뱅킹 이체금액과 통학비 조로 20만 원을 내 통장으로 매월 이체해 주겠고 하였다.
매달 나가는 아이들 양육비가 꽤 큰데, 이것만으로도 도움이 조금은 된다 싶어서, 연신 "믿어주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혜는 나중에 애들 잘 크는 모습으로 갚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내 생각은 재혼 안 하겠다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아이들에게 좀 더 빠르고 좀 더 안락한 삶을 제공한다고 해도, 그것은 내가 외친 독립의 정당함과 당당함을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고, 이런 엄마의 모습이 당장의 생활안정보다 아이들의 정서에 더 큰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사실 그 빌라에 대한 미련이 가끔 올라온다. 빚 갚을 때 허덕 되거나 일하면서 허리에 염증이 생겨 병가를 내야 할 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