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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Feb 10. 2023

<책리뷰> 태평양을 막는 제방


본명 : 마르그리트 도나디외 (1914.4.4 ~ 1996.3.3) - 작가의 생몰 날짜가 예사스럽지 않다.


뒤라스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에서 출생,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프랑스어 교사인 어머니를 따라 베트남 곳곳을 전전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41년 『철면피들』 출간을 시작으로 콩쿠르상을 수상한 1984년 작품 『연인』, 1995년 『이게 다예요』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도 집필했고, 영화 제작 및 연출에 참가하기도 했다. 한때 레지스탕스 운동에도 참가한 이력이 있다.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로 일컬어지는 뒤라스의 작품들도 흥미롭지만, 작가의 개인적인 삶 자체도 여느 작품 못지않게 흥미롭다.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나면 어김없이 작가의 삶에 지대한 관심이 생긴다.(남성 작가에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님)


글 쓰는 여자들의 삶이 특별했기 때문일까?

특별한 여자들이 글을 썼기 때문일까?


뒤라스는 죽기 전까지 글을 쓰고,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사랑을 사랑했고, 사랑하기를 사랑했다"


평범치 않은 삶(35살 연하와 사랑에 빠진)은 뭍사람들에게 오르내리기 좋은 가십거리로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작가는 글쓰기와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지독한 가난과 상실(아들과 오빠의 죽음)로 인한 삶의 고통을 겪었던 뒤라스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고,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동시에 본능과 욕망에 대해 솔직했다. 이 모든 삶을 작품을 통해 승화시켜 마침내 삶의 고통을 버티면 언젠가 기쁨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보여준 작가였다.

경주 바닷가에서 만나는 10대의 뒤라스

줄거리


1920년대 식민지 캄 평야 불하지에서 살아가는 쉬잔, 조제프 남매와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으로 제국에서 식민지로 이주하지만 남편과 사별하여 가장이 된 어머니는 10년 동안 오직 모성의 힘으로 일해 모은 돈으로 땅을 불하받는다. 그러나 그 땅은 바닷물이 밀려와 경작이 불가능한 땅이었다. 경작할 수 없는 땅을 불하한 토지국에 부당함을 따졌지만 무용지물. 결국 어머니는 바닷물을 막는 제방을 쌓겠다는 무모한 도전은 막대한 비용과 수백 명 농부들의 노동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렸다. 그러나 모두가 절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희망을 접지 않는다. 태평양을 막겠다는 그 거대한 희망 뒤에는 끝없는 가난의 고통 속에서 절망하는 어린 남매의 눈물이 숨어 있었다.



식민지 졸부의 아들 조씨가 다이아몬드와 함께 이들 가족 앞에 나타났고, 조씨는 쉬잔에게 눈길을 주고, 쉬잔 가족들은 조씨의 다이아몬드에 삶의 희망을 건다. 쉬잔을 향한 조씨의 사랑의 증거로 받아 든 다이아몬드를 팔러 도시로 떠나고, 도시에서 조제프가 또 다른 삶을 향해 떠나고, 희망을 위해 포기할 줄 모르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절망에 빠진 가난과 희망 없는 가난


1950년 발표된 『태평양을 막는 제방』은 뒤라스가 출간한 책 중에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고 꼽았다.


1984년 34년 후 발표한 『연인』과 같은 뿌리를 가진 자전적 작품으로 작가가 유년 시절 겪은 식민지의 현실을 그려내었다.


뒤라스의 초기 작품이지만 이 작품으로 식민지의 실상과 폐해를 알게 해 당시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것만으로도 큰 이의가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쉬잔의 가족은 프랑스 출신의 백인으로 식민지에서 가난해진 가족으로 원주민들의 가난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가난의 고통 속에서도 음악을 듣고, 영화관에 가고, 자동차를 굴리는 등의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절망에 빠진 가난과 하사(쉬잔 가족의 하인)의 희망 없는 가난은 분명 차원이 다르다.


제국주의의 확장으로 전 세계가 식민지화되던 20세기.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당시의 제국주의는 그 땅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을 갈취해 갔다. 제국의 경제력 도모를 위해 희생된 식민지 원주민들의 삶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무력과 억압 그리고 수탈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존엄을 파괴하기에 충분했다.


이 작품에서도 종종 야기되는 원주민들의 삶은 짐승과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너무도 많은 아이들이 죽어 나갔다. 죽어서 이 들판의 진흙 속에 묻힌 아이들이 살아남아 물소에 올라타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보다 훨씬 많았다. 너무 많이 죽는 아이들을 위해서 어른들은 더는 슬퍼하지 않았고, 이미 오래전부터 아이가 죽어도 무덤조차 만들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가 집 앞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죽은 아이를 눕히는 게 전부였다. 아이들은 아무런 절차 없이, 언덕 위에 자라는 야생 망고가 그렇고 냇가 초입에 사는 새끼 원숭이들이 그러듯이 그저 흙으로 돌아갔다.(120쪽)


평온한 시절에도 인간의 삶은 탐욕과 욕망이 산재한다. 더 누리고 싶고, 더 편하고 싶고, 더 관심받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다만, 그런 욕망이 다른 이의 삶과 희망을 밟고 일어서면 안 될 뿐.


쉬잔 어머니의 욕망이, 탐욕이 아닌 세상과의 고군분투로 보이는 것은 자식들의 미래, 삶의 근간을 이룰 땅에 대한 갈망이었기 때문이었다. 거듭된 실패로 인해 뻔뻔스러워지기도 했지만, 쉬잔 어머니의 인생이 한없이 애처로운 점은 비록 자식들에게는 거친 표현과 서슬 퍼런 통제로 억압했지만, 원주민들의 가난한 삶과 나약한 이들을 보듬었던 삶의 태도를 통해 세상과 맞서 싸우느라 깊이 감춰진 인간애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식민 사회에서의 탐욕과 욕망은 한계와 경계가 없었을 것이다. 그 엄혹하고 모순적인 세상을 기회로 삼는다면 그 어느 때보다 빨리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테고, 그 세상에 저항하고 대항한다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조씨의 아버지는 식민지에서 땅투기로 인해 일확천금을 벌고, 원주민용 주택을 지어 대박을 치고, 후에 고무 농장을 사고팔면서 원주민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승승장구한다. 작가의 어머니는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자 원주민들과 연대해 제방을 쌓는다. 그러나 이미 승부가 결정된 싸움,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는 없다. 어머니의 억척스러움만으로 태평양을 이길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 단편 『모래톱 이야기』는 1966년 발표된 김정한의 작품으로 『태평양을 막는 제방』과 어딘가 다른 듯 닮아 있다.


낙동강 근처의 조마이섬,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일제 식민지 시대에는 일본인에게, 광복 후에는 국회의원에게 그리고 다시 유력자에게. 힘없는 이들의 삶의 터전은 시대에 따라 이리저리 빼앗기고 만다.


홍수가 나자 둑을 무너뜨려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했던 농민들에게 깡패들을 동원해서 제압하려던 유력자는 삶의 터전에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소유와 가치로 땅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 갈밭새 할아버지는 깡패를 물속에 던져 버렸고 결국 살인자가 되어 투옥되고 만다. "언젠가는 이 땅의 주인인 너희들이 것이 될 거야"라는 말을 남겼지만, 현실의 모순에 저항하는 주인공은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태평양을 막는 제방을 쌓는 일, 조마이섬의 둑을 무너뜨리는 일 그것은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한 이들의 절규였다.


모순적이고 폭력적인 시대에 저항하는 이들의 희망이 거셀수록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절망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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