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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Aug 09. 2023

<책리뷰>고독은 연결된다 - 김성민

한때 나의 호사스럽고 소심한 가출은 서점에 가는 일이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대형서점을 반드시 혼자서 가야만 온전한 가출로 스스로 인정했었다.

대형서점에 도착하면 이 책 저 책을 들춰보면서 서가를 정처 없이 헤매는 책 순례를 하다가 서가에 꽂힌 책등을 어루만졌다. 눈으로는 책 제목을 읽고, 손가락으로는 책등을 쓰다듬는 일이 왠지 목마른 내 마음의 허기에 시럽을 부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눈길과 손길을 잡아 붙드는 책 한 권을 골라 사 들고 돌아오곤 했다.


일이 바빠진 후에는 서점으로 가출하는 대신 인터넷 서점을 서성대곤 했다. 책등에 마음을 부벼댈 수는 없었지만, 인터넷 서점을 방황하는 그것만으로도 위안을 받곤 했다.


어느 날, 인터넷 서점을 기웃거리다 만난 책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를 주문했다. 그런데 여러 날이 지나도 주문한 책이 도착하지 않았다. 호기롭게 고객센터에 문의한 결과, 내가 주문한 것은 종이책이 아니라 전자책이었다. 그리하여, 나의 처음이자 유일한 전자책으로 남아 있는 책은 김성민 작가의 첫 책이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도 없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없고, 그 특유의 향도 없는 낯설기만 한 전자책이었지만, 나는 책과 호흡하고, 책을 사랑하는 작가와 그녀의 책 사랑 글에 흠뻑 반하고 말았다.


그리고 22년 1월 작가와 함께 하는 북클럽에 가입하고, 지금까지 일 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마치 계획된 우연처럼 그렇게.


2주에 한번 금요일 밤에 네모난 창으로 모이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인다. 이 모임을 고요한 열정으로 이끄는 리더 김성민 작가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작가가 책에 대한 애정 고백서라고 밝힌 것처럼 책 읽기에 순정한 마음을 지닌 독서가가 책과의 사귐을 통해 책이라는 세계 안에서 품위 있게 보낸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나와 잘 지내는 시간 시리즈에 걸맞게 작가는 책을 읽다가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만나 책을 덮는 순간, 그 문장들이 주는 정신적 타격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을 거쳐 읽고 싶은 책과 읽을 수 있는 책의 격차를 좁혀가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책의 존재가 자신을 사랑하게 해 준다고 말한다.(33쪽~34쪽)


책 읽기에 진심인 사람들에게만 발굴이 허락된 책 속의 보석과 보물을 캐내는 아름다운 과정을 고백한다.


작가가 읽은 29권의 책을 통해 작가의 시선이 가닿는 세상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작가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소통하며 정리해 둔 사유를 힘들이지 않고 고스란히 공유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또한, 이 책이 더욱 반가운 것은 책 읽기라는 자발적 외로움을 자처한 이들이 함께 읽기라는 고독 공동체를 이루어 마침내 연결됨을 목격했고, 책 속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클럽 멤버들의 다채롭고, 열정적인 책 읽기에 살짝 묻어가기 바쁘지만, 책 읽기를 애정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랜선 책 여행은 일상이 문학과 중탕되는 시간이었다.


영화, 미술, 음악, 낭독, 필사, 와인, 지도, 그리고 리뷰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적극적 읽기는 읽기의 외로움을 넘어 각자의 세계에 초대되는 느낌이다.


각자의 고독한 읽기의 시간이 모였을 때 공감과 지지와 응원이 부록처럼 따라온다.


작가는 삶을 되풀이할 수 없고, 사랑했던 과거도 되풀이할 수 없지만

책은 몇 번이고 거듭 읽을 수 있어 독자로서 즐겁다고 말하며, 읽을 때마다 또 다른 의미와 해석으로 다가온다는 점을 주목한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인생,

다시 되풀이될 수 없는 인생,

책을 통해 지난날을 반성하고 수정하고 앞날을 계획한다.


책장을 펼칠수록, 책 속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우리는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

내 안의 생각, 상처, 추억, 문제를 다른 눈으로 들여다보게 되고, 또 다른 마음으로 두드려보게 된다.

나 역시 책에서 위안을 얻고, 책에 기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 뒤라스와 더 리더의 주인공 한나, 필립 로스의 작품 휴먼 스테인 이러한 작가와 작품과 주인공이 내 마음에 살아 있다는 것은 나와 어느 부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비록 어느 부분이 대부분 상처와 아픔이라 하더라도. 책을 읽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발견하고 차차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독자가 있어야 책의 의미가 완성된다고 말하는 작가의 겸손함이 문장 곳곳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과 함께 하는 삶,

삶에 저항하며 읽는 책

그 사이에 삶은 점점 성장한다.


나와 더 친해지고 싶다면

책 읽기를 시작하고,

나를 더 알아보고 싶다면

함께 책 읽기를 시작하라.

더는 외롭지 않고

더는 고독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책 읽는 기쁨과 행복, 이 책과 작가가 방증하고도 남음이다.




이 세상 모든 책이
그대를 행복하게 해주진 않아
허나 몰래 알려주지
그대 자신 속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그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거기에 있지
해와 달과 별
그대가 찾던 빛이
그대 자신 속에 있기 때문이지

오랫동안 책에서 구하던 지혜
이제 펼치는 책장마다
환히 빛나리
이제 그대의 것이니까

헤르만 헤세 "책이라는 세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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