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fa Oct 27. 2022

이야기를 피해 다니는 과몰입러

소설, 드라마, 영화를 멀리했던 이유

MBTI에서 E와 I의 비중이 비등비등하고 J와 P가 바뀌긴 하지만 내가 F임은 분명하다. 나를 움직이는 건 감정이다. 초등학교 땐 툭하면 울어서 어른들에게 많이 혼나기도 했다. 편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큰 소리로 웃기도 한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대상에겐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그렇지만 유독 드라마와 소설, 영화를 피한다. 문을 열면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할 일을 제쳐두고 정주행을 하게 되고, 이야기가 끝나고 난 후에도 숙취처럼 여운을 진하게 묻히고 다닌다.


며칠 전 김초엽 작가님은 강연에서 학창 시절에 썼던 소설이 사랑을 비효율적으로 여기는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압박, 감정 과잉의 상태에선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혼자만의 착각을 들킨 것 같았다. 누르고, 피하고. 실은 누구보다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걱정에 비해 마음이 날뛰어도 마감 앞에선 이성의 끈을 잘 부여잡는 편이다. 의미 없는 압박감과 착각이다. 심리학에서 회피형 인간에 대해 설명할 때 늘 내 이야기 같았다. 이제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어느 정도 잠잠해졌으니 피하지 않고 마주 봐야겠다.


의식적으로 쉬는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계속할 일을 연달아 처리하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그럴 땐 시원하게 쉬자는 마음으로 이야기들을 가까이해야겠다. 김초엽 작가님은 강연에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된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다고 했다. 나는 감정적으로 타인과 가까워지는 것을 꺼려한다. 그래서 실리적으로 타인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테리어를 업으로 한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내 디자인은 실용적인 해법을 주는데 더 적합하다. 소설, 영화, 드라마가 그려내는 프레임 안의 세계로 도망가보자. 이야기를 따라가면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반사된 내 모습을 발견한다. 심장이 뛰기도 하고 내려앉기도 하고 차갑게 식기도 한다. 마음껏 F답게 작가들이 공들여 만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시간을 조금 가져보자.

작가의 이전글 나라는 파이를 어떻게 나눌지 모르겠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