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드라마, 영화를 멀리했던 이유
MBTI에서 E와 I의 비중이 비등비등하고 J와 P가 바뀌긴 하지만 내가 F임은 분명하다. 나를 움직이는 건 감정이다. 초등학교 땐 툭하면 울어서 어른들에게 많이 혼나기도 했다. 편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큰 소리로 웃기도 한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대상에겐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그렇지만 유독 드라마와 소설, 영화를 피한다. 문을 열면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할 일을 제쳐두고 정주행을 하게 되고, 이야기가 끝나고 난 후에도 숙취처럼 여운을 진하게 묻히고 다닌다.
며칠 전 김초엽 작가님은 강연에서 학창 시절에 썼던 소설이 사랑을 비효율적으로 여기는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압박, 감정 과잉의 상태에선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혼자만의 착각을 들킨 것 같았다. 누르고, 피하고. 실은 누구보다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걱정에 비해 마음이 날뛰어도 마감 앞에선 이성의 끈을 잘 부여잡는 편이다. 의미 없는 압박감과 착각이다. 심리학에서 회피형 인간에 대해 설명할 때 늘 내 이야기 같았다. 이제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어느 정도 잠잠해졌으니 피하지 않고 마주 봐야겠다.
의식적으로 쉬는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계속할 일을 연달아 처리하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그럴 땐 시원하게 쉬자는 마음으로 이야기들을 가까이해야겠다. 김초엽 작가님은 강연에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된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다고 했다. 나는 감정적으로 타인과 가까워지는 것을 꺼려한다. 그래서 실리적으로 타인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테리어를 업으로 한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내 디자인은 실용적인 해법을 주는데 더 적합하다. 소설, 영화, 드라마가 그려내는 프레임 안의 세계로 도망가보자. 이야기를 따라가면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반사된 내 모습을 발견한다. 심장이 뛰기도 하고 내려앉기도 하고 차갑게 식기도 한다. 마음껏 F답게 작가들이 공들여 만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시간을 조금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