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는 법 | 『스토리의 과학』킨드라 홀
학창 시절 시험공부를 할 때 머리에 넣어야 하는 공부량이 많다 보니 목차를 만들고, 줄글로 정리된 내용을 목차에 추가하면서 암기 노트를 만들곤 했습니다. 이런 노트는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만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 디자이너로서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보드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내 디자인을 SNS에 올릴 때 암기노트를 만들듯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담으려고 욕심을 부려왔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내용은 좋은데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받아왔습니다. 그저 욕심을 덜어내는 것 만으로는 답답하던 차에 '팔리는 브랜드에는 공식이 있다'는 부제인『스토리의 과학』을 추천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뇌는 '시스템 1'의 뇌와 '시스템 2' 뇌로 나뉘어 있다고 합니다. 시스템 1 뇌는 파충류의 뇌로도 알려져 있는 본능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영역입니다. '예쁘다', '위험하다', '궁금하다', '지루하다'등의 감각적인 판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각종 광고제에서 상을 휩쓸고 자주 회자되고, 공유되는 광고들을 떠올려봅시다. 스티브잡스의 아이폰 첫 프레젠테이션 정도의 혁신적인 제품이 아닌 이상 기능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모두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끝까지 집중하고 마침내 홀린 듯이 결제를 누르게 되는 데에는 스토리가 큰 역할을 합니다. 복잡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만큼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구매, 채용, 구독 등 귀중한 돈과 시간을 나에게 써 달라는 상황에서 시스템 2 뇌를 쓸 만큼 인내심이 많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고민과 기술을 담은 결과물이어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나열하면 이미 나에게 큰 애정을 가진 사람이어도 끝까지 집중해서 듣거나 읽는 것을 힘들어할 것입니다. 저자는 아이나 반려동물에게 약을 먹일 때처럼 좋아하는 음식에 숨겨서 먹이듯 시스템 2와 같이 복잡한 정보는 더욱 직관적이고 매력적인 스토리 안에 조금만 숨겨두라고 할 정도입니다.
저자 킨드라 홀의 책도 매력적인 이야기를 스토리의 법칙을 설명하는 앞 뒤에 배치해 편안한 흐름으로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매력적인 이야기는 '시의적절한 이야기'를 뜻합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대부분인 비즈니스 환경에서 유용한 이야기를 네 가지로 분류합니다. 1. 가치 스토리 2. 창업자 스토리 3. 목적 스토리 4. 고객 스토리 가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는 냉담한 반응을 얻고, 투자를 유치하는 자리에서는 효과적인 경우가 있듯 빛을 발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가장 첫 단계는 나와 환경을 정확하게 아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책을 읽으며 나의 업은 어느 단계에 있는지, 내가 홍보해야 하는 대상은 누구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스토리의 핵심 요소인 A. 분명한 캐릭터 B. 진실한 감정 C. 중요한 순간 D. 구체적인 디테일에 대해서 저자는 자세히 설명하고 스토리의 유형에 따라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 주의해야 할 점은 어떤 것인지 지루하지 않게 알려줍니다. 스토리의 핵심 요소를 읽으며 그동안 제가 놓쳤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돼 다소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력서를 쓸 때가 아니어도 저는 이야기에 몰입감을 높여주는 디테일들을 빼고, 무미건조한 팩트만 주로 담아왔던 것입니다.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닌데 보험 약관을 쓰듯 세세한 팩트로 지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읽는 사람들에게 시스템 2를 '소환'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간을 디자인할 때는 형태나 빛을 통해 행동과 감정을 유도하면 기능적이나 감성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바를 전달할 수 있어 편안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공간을 소개하는 자리에서는 왠지 모르게 글을 끼얹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어서 스토리가 아닌 기술적인 내용을 스트레스받으며 채워 넣었던 것 같습니다. 킨드라 홀의 『스토리의 과학』을 편안하게 읽은 뒤 이야기를 고르고 풀어가는 기술을 배울 수 있어 기쁩니다. 개인적으로 2022년 하반기에 읽은 책 중 저에게 가장 유익했던 책으로 꼽고 있습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Unsplash의 Thought Cat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