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제목을 쓰기 위해 운전면허증 발급일자를 확인해보니 나는 2012년에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집안의 대리기사가 되어가는 혈육을 보며 끝까지 면허를 따지 않으려고 했지만 호주에 가면 국제 운전면허증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 하여 속성으로 취득했다. (막상 호주에서 국제 운전면허증은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운전면허에 최종 합격을 한 다음날 엄마는 운전의 감을 익혀야 한다며 나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여주에 갔다. 그다음 날은 춘천까지 갔다 왔다. 차선 변경하기가 무서워서 하이패스도 못 가고 거북이 주행으로 덜덜 떨면서 다녀왔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핸들을 하도 꽉 쥐어서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조수석에 앉아있던 엄마가 제일 무서웠을 것 같지만...
하여튼 그렇게 면허를 따자마자 운전하는 맛을 알아버린 나는 신나게 쏘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아빠가 우리 집 바로 앞에 카센터 겸 세차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빠는 '차는 얼마든지 고장 나도 좋다. 살아서만 돌아와라'라고 실제로 말했었고 그래서 더욱 부담 없이 차를 끌고 여기저기 놀러 다녔다.
나는 차를 관리할 필요가 없었다. 주차는 아빠 가게 널찍한 곳에 대면됐고, 아침에 시동을 켜면 차는 늘 쾌적하게 세차가 되어있었으며 기름도 가득 채워져 있었다. 주유, 세차, 관리에 필요한 신경은 쓰지 않고 그냥 오로지 운전만 하는 삶이 나에겐 아주 익숙해진 것이다.
그러다 몇 년 뒤 아빠가 가게를 정리했고 나도 직장을 지하철로 다니게 되면서 차에 대한 필요성이 없어졌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다가 가끔 마트 갈 때 엄마 차를 쓰는 정도?
남편과 연애할 때는 남편 차이니 나는 탑승만 했었고 결혼을 하면서 나도 보험을 추가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게 되었다. 남편은 차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주기적으로 달력에 체크해가며 차의 부품을 교체하고 세차하며 관리를 한다. 자연히 주유도 남편의 몫이었다.
내가 하도 주유를 하지 않고 살다 보니 이제서는 경유/휘발유 구분하며 넣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우리 차는 경유를 넣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내가 휘발유를 넣어서 차가 폭발이라도 할까 봐 지레 겁먹어서 주유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남편도 딱히 별말을 하지 않고 알아서 차에 기름을 넣고 와서 내가 별로 신경 쓸 것이 없었다.
그렇게 평화롭게 살다가...
이번 구정 명절 전 날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명절 연휴 동안 입원 예정이었고 나와 아이만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만 있을 예정이었다. 남편의 입원을 위해 병원으로 향하던 중 남편이 차량을 체크하더니 현재 차량의 주행 가능 거리가 약 200km인데 충분하냐고 물었다.
친정에 갈 예정은 없지만.. 만약 가더라도 왕복 100km이니 충분하지 않을까? 하니 아이랑 답답하니 어디 드라이브라도 다녀온다면 기름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말에
"기름 없으면 차 안 쓰면 되지 뭐"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 말에 남편이 발끈했다.
"기름이 없으면 넣으면 되지 왜 있는 차를 안타??"
"기름 넣기 무서워........ 그냥 차 안 탈래............"라는 대답에 남편은 바로 병원 근처 셀프주유소로 들어갔다. 이곳이 기름값은 비싸지만 그래도 나에게 기름을 넣는 방법은 알려주고 입원을 해야겠다며.
덜덜덜
주유소에서는 늘 차 안에 있었는데 이 날 처음으로 내렸다.
정전기패드에 손을 대고 화면을 어떻게 눌러야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얼떨결에 '기름 넣기 교육'을 받게 되었다.
나는 이 총?을 계속 들고 서있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안에 있는 걸쇠를 채워서 주유하는 동안 두 손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왜 주유하면 카드에 15만 원이 결제되었다가 마이너스가 뜨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마지막 한 방울을 위해 총을 빼기 전에 탈탈탈 털어야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주유소는 다른 주유소에 비해서 훨씬 비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이 날 이후 아직 혼자 가서 주유해본 적은 없다. 일부러 안 한 것은 아니고 '할 기회가 없었다'라고 해두자. 그래도 한 번 해봤으니 유사시에는 넣을 수 있겠지.
이렇게 한 단계 더 성장한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