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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민 Jul 31. 2020

'성숙'과 '익숙'의 차이

[벤처기업 인턴] 4주 차 배움 일기

<성숙함과 익숙함의 차이>

내가 훈련소에 있을 당시에 내게 깊은 인상을 준 정훈 조교가 있었다. 이 조교는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입대했기 때문에 나이가 30이 넘었다. 그 당시에 일병이었기 때문에 자신보다 7~10살 낮은 선임들의 말을 잘 따라야 했고 실제로 일도 가장 많이 했다. 이 상태로 한 기수 훈련병들을 내보내면 대부분의 포상은 이 조교한테 주어질 정도로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한 것 같다. 내가 신교대에 있는 동안 이 조교는 훈련병들에게 진심으로 뭐라고 화낸 적이 없었는데 딱 한 번 정말 진지하게 훈련병들을 혼낸 적이 있다. 수료가 다가오자 군기가 빠지기 시작한 훈련병들에게 한 소리를 했는데 나에게는 정말 인상 깊게 들렸다. 이 조교는 훈련병들에게 ‘성숙’과 ‘익숙’의 차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며 운을 뗐다. 성숙과 익숙은 말 그대로 정말 한 글자 차이다. 두 단어 모두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의 단어라고 볼 수 있지만, 이 조교는 성숙함과 익숙함에 대해 전혀 다르게 설명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하기 때문에 성숙해지고, 미련한 자는 주변 환경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현재에 안주하기 쉽다며 둘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훈련소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의 행동들을 모두 나열하며 훈련병들을 따끔하게 혼냈다. 대부분의 훈련병들은 조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이었지만 나는 뒤통수를 정말 쌔게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조교의 충고를 듣고 이 사람이 살아온 세월과 프로다움을 느꼈다. 그는 사회에 있을 때 가지고 있던 지위에 비해 비교적 낮은 지위를 갖는 집단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에 익숙해지지 않고 스스로를 계속 일깨우며 발전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이 프로다움을 배우고 싶었지만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인턴 생활 4주 차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나는 이 조교가 훈련병들에게 해줬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레 지난 한 달을 되돌아봤고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성숙해진 것인지, 익숙해진 것인지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회사에 익숙해지지 않았다고 말하면 이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의 상사분들이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서로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인턴에게 주어지는 업무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숙달돼서 일을 진행할 때 전혀 부담되지 않는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지만 2개월짜리 인턴에게 중요한 일이 주어지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든 상항이다. 앞으로 남은 3주를 성숙하게 보낼 것인지 익숙하게 보낼 것인지는 오로지 나의 선택이지만 틀림없는 것은 성숙해지는 것은 어렵지만 익숙해지는 것은 매우 쉽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조금은 성숙해지기 위해서 주어진 업무를 더 깊게 파고들려고 노력했고 동시에 익숙함을 느낀 나 자신을 반성하고 떨쳐내려고 노력하는 4주 차였다. 나중에 기업가가 되어서도 무엇이든 간에 익숙함을 느끼는 것은 좋지 않다. 현재에 안주하고 그 상황이 편안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성장을 가로막는 적신호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성가신 작업인 서류 스캔/정리> 

자사(PG사)와 가맹점이 맺은 계약서를 스캔할 일이 생겼다. 덕분에 나는 스캔도 마스터하였고 심심함을 달랠 수 있었다. 스캔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꽤 많은 양이었고 단순 반복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실수하기 쉬운 작업이었다. 서류 정리도 마찬가지였다. 스캔한 서류들을 업체별로 나누어 파일철에 넣은 후 분류하면 됐다. 별 것이 아닌 잡일이지만 이 단순한 작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그 사람의 ‘태도’이다. 아무리 하찮은 일을 맡겨도 소중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이와 같이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면 그 결과물도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서류를 스캔할 때 규격을 약간 벗어나서 스캔할 수도 있고, 서류 파일철을 정리해서 상사에게 제출할 때 순서를 다르게 해서 제출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일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 있으며 이 미묘한 차이에서 상사는 신입의 책임감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일에 대한 사소한 차이에 대해 일본 한큐 철도의 창시자 ‘고바야시 이치조’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당신에게 신발을 정리하고 지키는 일이 주어졌다면, 그 일로 나라 전체에서 최고가 되어보라. 그러면 당신을 그 자리에 계속 두지는 않을 것이다.” 고바야시 이치조가 남긴 명언을 통해 우리는 정말 많을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상사도 처음 일하는 사람에게 절대 큰 일을 맡기지 않는다. 그저 중요한 일을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인내하고 작은 일에 집중하며 상사에게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작은 일이 주어져도 그 일을 최고의 것으로 만드는 자는 긴 세월 동안 자신이 취한 태도를 통해 큰 일을 맡아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소한 차이에서 사람은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지면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배려,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  

저번 주에 내가 제출한 ‘핀테크/간편 결제’ 관련 기사들을 대리님께서 보시더니 불필요한 부분들은 제거하고 이사님께서 보시기에 편하도록 수정해달라고 요청하셨다. 대리님께 수정안을 요청받고 나서 내가 제출했던 엑셀 파일을 다시 들여다봤다. 내가 왜 이렇게 제출했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이 회사에 익숙해졌다는 명백한 사례이다. ‘어차피 다시 수정해야 할 텐데 이 정도면 됐으니 제출해보자’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인간은 왜 이렇게 나약할까. 첫 주차 까지만 해도 이 회사의 모든 시스템을 배우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채 편안한 것에 안주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익숙함’을 철저히 경계하며 내가 만든 엑셀 파일을 다시 수정했다. 추가적으로 기사의 주요 내용을 압축해 경쟁기업의 강점이 될 만한 사항들을 추가적으로 삽입하였다. 상대방이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만든 파일처럼 느낄 수 있도록 파일을 재검토하고 다시 대리님께 제출했다. 결국 최종 컨펌을 받았고 이사님께도 제출할 수 있었다. 항상 잊지 말자. 현재에 안주하는 것과 익숙해지는 것만큼 조심해야 할 것은 없다. 


<당연시되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기> 

대리님께서는 내게 또 다른 일을 주셨다. 뭔가 믿음을 드린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대리님께서는 이사님과 네이버 지식인 마케팅에 대해 논의를 해봤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네이버 지식인 마케팅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한 번 알아봐 달라고 하셨다. 마침 내가 타 대외활동을 하면서 네이버 지식인 마케팅을 진행해봤던 경험이 떠올랐다. 하지만 인사이트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마케팅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오랜만에 지식인 마케팅에 대해 접했고, 대리님께서 처음 지식인 마케팅을 제안하실 때 솔직히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식인 마케팅에 대해 알아보면서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저비용 고효율로 가장 쉽게 성과를 낼 수 있는 마케팅 중 하나가 네이버 지식인 마케팅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사 웹사이트로 가장 많이 유입되는 검색 키워드를 추출해 이와 관련된 지식인 작업을 진행했다. 진행 초기 단계여서 아직 뚜렷한 성과를 알 수 없지만 진행하지 않았다면 경쟁기업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번 경험해봤다는 오만함으로 인해 나는 이와 같은 효율적인 홍보 방법을 놓칠 뻔했다. ‘익숙함’은 이렇듯 몸에서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습관’과도 같은 것이다. 장기간 동안 가지고 있던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항상 의식하고 주위 환경을 바꾸려는 노력을 통해 ‘익숙함’을 경계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조금씩 지속적으로 의식하려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익숙함’이 ‘성숙함’으로 돌아서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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