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와 친해질 수 있을까?
그날 밤의 악몽을 잊을 수가 없다
깊은 잠에 빠져 마치 꿈결 같기도 한데, 누군가가 내 목덜미를 쓰다듬는 스산한 느낌에 눈을 떴고, 바로 비명을 질러댔다. 침대 위에 올라와 내 목을 더듬는 널 본 순간 꺄... 악.. 그 새벽에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고, 베개로 널 밀치며, ' 저리 가~저리 가라고~~ 악...'
다시 잠들 수 없을 정도로 흥분했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씩씩거렸다.
다음날 아침
"엄마, 새벽에 왜 그렇게 소리 지르셨어요?"
"바비가 침대 위로 올라와서, 엄마 목을 쓰다듬었어~ 근데, 넌 엄마가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는데 나와보지도 않냐?"
"너무 무서워서요..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그러니까, 그 해 겨울 나의 동의 없이 김 씨 부녀들의 일방적 결정으로 우리 집으로 오게 된 바비를 처음 본 순간 난 냉랭했다. 어릴 적부터 동물에 대한 애착관계없이 자라서인지, 아님 동물과 사람이 사는 공간은 결코 같은 곳일 수 없다는 확고한 생각 탓인지 어떻게 하면 이 아이를 내보낼 수 있을까 그 궁리만 한채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시간이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데, 난 아직도 이 아이와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처음 제일 스트레스받았던 부분은 털, 집에 오자마자 바닥에 솜뭉치처럼 나뒹구는 털을 치우는 게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하는 일이었다. (하필 털이 많이 빠지는 종을 데려왔어.. 한숨을 푹푹 쉬면서 내뱉는 푸념이 일상이었다)
미관을 해치는 배변패드며 사료 냄새는 왜 이렇게
고약한지 불만투성이로 투덜대기 일쑤인 나에게
아이들은 엄마 때문에 바비가 스트레스받아서 털이 더 빠진다고 한다
'스트레스받는 건 나야! 나라고~~'
특유의 강아지 냄새와 공중에도 털이 날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에 괴로웠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바비를 쓰다듬거나 안아준 적이 없다. 아니 그나마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가까이에 있는 건 참을 수 있으나 처음에는 가까이 오는 것도 소름 돋게 싫었다.
지금은 체념 단계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로 생각하며 무덤덤해졌으나, 여기까지 오기가
정말 인내의 시간들이었다.
그에 반해 아이들은 침대 위에서 함께 뒹굴고, 같이 잠 도자고, 친자매인 양 너무나 끔찍하게 바비를 아낀다. 게다가 자기들 용돈으로 바비의 생필품을 사고 챙긴다.
'저렇게 좋을까?'
내 평생에 강아지와 한집에 살 꺼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저 남의 일이겠거니, 아휴 어떻게
강아지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 마당 있는 집에서 키우는 거라면 몰라도~ 이런 확고한 생각을 접을 수 없는 게 나였다
한 번씩 욕실 바닥에 용변을 보거나, 베란다에 있는 쓰레기봉투를 헤집어 놓거나하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러대니, 바비도 나를 슬슬 겁내기 시작하다가도, 주방에서 과일 써는 소리가 나면 기가 막히게 쪼르르 달려와서 다소곳이 이렇게 앉아있기도 한다
한 조각 주려나 기대의 눈빛을 던지며 자리를 뜨지 않는데, 어림도 없다. 유독 바비한테는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언제쯤 나는 너를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얼마 전, 매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세분의 손님이 함께 식사를 하다가, 한분이 급하게 식사를 마치고 먼저 나가시는 거였다. 그러고는 한참 뒤 계산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신다.
'혹시 강아지 안고 식사할 수 있어요? 요렇게
얌전히 안고 있을 건데요..'
그러니까 한분은 차 안에 혼자 있는 강아지 때문에 급하게 식사를 하고 나가셨던 게다.
참 난감했으나, 다른 고객들의 이해를 구하기가
힘들다는 이유를 안타깝게 말씀드렸다.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지위가 격상한 강아지들을 이제는 다른 시선으로 받아들여야 할 시대가 온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여전히 힘이 든다. 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서현이가 어느 날 "엄마~ 저 8월에 유기견보호센터에 봉사활동 가는데 거기서 강아지 데려와도 돼요?"
"뭐? 데려오긴 뭘 데려온다는 거야? 그러기만 해봐~ 엄마가 집 나가 버릴 거니까~"
아이들의 동물사랑은 끝이 없는데, 턱없이 메마른 엄마의 감성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