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목욕탕을 좋아한다. 숨이 막힐듯한 뜨거운 열기 속에 나를 가두고 온몸의 땀을 짜내는 그 순간을 즐긴다. 사우나 애호가로서 코로나는 좋아하는 취향마저도 앗아가 버렸다. 나의 이런 안타까움을 아는 가까운 지인은 정말 대박 아이템이라면서 1인용 욕조를 소개해 주었다. 홈쇼핑에서 봤는데, 한번 써보라는 것이었다. 부담스러운 가격도 아니고 구매해서 사용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폐기 처분하리라 가벼운 마음으로 클릭을 했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일단 일반 욕조보다 온수가 오래 유지된다. 접었다 폈다 사용 후의 정리가 약간 불편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하고 사용할 만큼 매력 있다. 목욕탕 사우나만큼 땀이 잘난다.
코로나 이전, 아이들과 주말마다 목욕탕 가는 게 일상의 힐링 코스였다. 아이들 몸의 때를 밀어주며 성장해 가는 속도를 인지할 수 있었다. 어느새 이만큼 컸구나. 몸으로 익히는 시간이었다.
최근 1년 만에 목욕탕을 용기 내서 다녀왔다. 사람들이 적을 때 가자 싶어 최대한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탕 안에서도 거의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모두가 나름 코로나도 뚫지 못하는 목욕탕 마니아들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따라나선 목욕탕에서 신이 나있다. 첫째는 매점에서 사이다랑 구운 달걀도 산다. 워낙 어릴 때부터 데리고 다녀서인지 나만큼 좋아한다. 어느새 둘째의 몸에 2차 성징이 나타나 있어, 내심 놀랬다. 아직 꼬맹이로만 생각했는데, 이제 점점 성숙해 가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동안 그렇게 자기 방 걸어 잠그고 방에서 나오지 않아 실랑이하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춘기였구나, 너의 몸이 변하는 것도 모르고 엄마는 고래고래 소리만 질러댔구나. 어쩜 그동안 이렇게 서로의 살갗을 맞대며 부대끼는 시간을 상실한 채, 우리의 다정했던 시간들을 잃어버리며 산 걸까?
지독히도 잘 씻지 않던 너를 나무라며 한숨만 푹푹 쉬었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정답을 찾지 못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자기 아들도 물 부족 국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안 씻는다며 공통의 근심거리에 맞장구를 쳤다.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트렌드인가 하며 내 아이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위로를 받았었다
어릴 때 그러니까 80년대 국민학교 시절을 보낸 나의 기억에 딸 셋을 데리고 매주 목욕탕을 가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대단했다. 자신의 몸과 딸 셋의 몸을 씻겨 줄 정도로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였다. 그때만 해도 온수가 팡팡 나오던 욕실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매일 샤워하는 건 상상도 못 했고, 연탄보일러 위에서 데워진 온수를 통에 받아와 냉수와 반반 잘 섞어 머리를 감고 세수를 겨우 했었다. 그것도 추운 날이면 정말 씻기 싫어서 게으름을 피우다 엄마에게 등짝을 맞던 시간들이 있었다. 목욕탕을 가던 일요일은 오래간만에 온몸에 물을 묻히는 날이었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목욕탕 안에서 자리 확보는 정말 치열했었다. 개운하게 씻고 나오는 날은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또 다른 노동에 힘들어했지만 말이다
잘 안 씻는 둘째에게 늘 하는 레퍼토리 잔소리가 있다. " 따뜻한 욕실이 없니~ 온수가 안 나오니~ 도대체 왜 안 씻는 거야?" 모든 게 풍족한 시대지만, 얼마나 좋은지 잘 모른다.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우리가 누리는 것들의 소중함을 잊고 산다. 목욕탕 시설도 날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되어, 사우나실만 건식, 습식 종류별로 골라서 이용할 수 있다. 온탕도 온도별, 기능별로 나누어져 있고, 월풀 스파를 즐길 수도 있다. 최신 시설의 목욕탕을 찾아서 가는 수고스러움도 기꺼이 할 수 있다. 맛집을 찾아다니듯 말이다
냉탕과 온탕, 사우나를 왔다 갔다 하는 걸 즐긴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내 기분은 좋아진다. 목욕탕은 그렇게 나에게 개운한 기분을 충전해 준다.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일주일을 또 살아낼 기운을 얻는다. 나에게 목욕탕은 에너지 충전소이다.
아이들과 목욕탕을 나와서 바나나우유를 한 개씩 먹고, 브런치로 순두부찌개를 먹으러 간다. 마음 놓고 목욕탕을 갈 수 있는 날을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