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ra yoon Jul 17. 2022

아파트 그리고, 미니멀리스트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며....

집 사이즈를 줄이기 시작하니 저절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첫 신혼집은 13평의 단독주택 1층이었다. 주인집과 같은 층이지만, 대문을 따로 쓰는 독립된 공간의 이 집은 햇볕이 들지 않아 늘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그래도 방 두 칸에 거실 겸 주방, 욕실이 있는 구조로 첫째가 태어나서 걸음마를 떼기까지 살았다. 전세금 1,800만 원으로 시작된 결혼생활이었다. 욕심도 불평도 없던 시절, 좁디좁은 공간에 테트리스 게임을 하듯 짐을 끼워 넣고 살았다.  살림살이도 단출해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었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짐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공간에 대한 압박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 더 넓은 곳으로 비상하고픈 욕망이 자라기 시작했다.


나의 욕망은 신속하게 실행으로 이어졌고, 전세금에 해당되는 계약금으로 신축 분양 아파트를 계약해버렸다. 남편은 대책 없이 일을 저질렀다며 한숨을 쉬었고, 나는 감당할 수 있는 사고를 쳤다 생각했다. 2004년 입주를 앞둔 신축 아파트 현장은 나의 꿈이 자라는 곳이었다. 도시계획지구에 새롭게 형성되는 아파트 단지였고, 생애 첫 아파트 생활을 앞두고 있었기에 설렘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매주 아파트 현장을 둘러보러 갔다.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한층 한층 올라가는 아파트를 볼 때마다 나의 꿈도 익어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가지는 내 집이었고 비록 은행 지분이 더 컸지만, 새 집에서 산다는 기쁨이 모든 암울한 상황을 덮기에 차고 넘쳤다.

12층 꼭대기층에 다락방이 있는 24평 아파트에 입주하는 날, 세상 모든 걸 다 이룬 기분이었다. 여기에서 둘째도 태어나고, 시어머님이 두 딸을 위해 피아노도 선물해 주셨다. 남편은 자전거와 캠핑을 취미로 시작했고 그렇게 우리의 짐들은 아파트를 차곡차곡 채워나가고 있었다. 베란다는 캠핑용품으로 365일 널브러져 있었고, 현관 출입문은 세발자전거부터 어른용 자전거로, 다락방은 갖가지 옷과 책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처음 24평의 아파트는 너무 큰 공간이었다. 13평에 비하면 거의 2배 가까이 늘어난 공간이었지만,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짐들로 점령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버릴 줄은 모르고 사기만 하던 습관 때문에 늘어난 짐들과 그냥 당연하게 살았다.



평생 이 집에서 생을 마무리할 거라 생각했는데, 십여 년을 살다가 첫째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배정받은 학교의 통학거리가 만만치 않았고, 힘들어하는 아이를 위해 아주 짧은 고민 끝에 단호하게 선택을 했다. 학교 옆으로 이사를 단행하기로 말이다. 마침 학교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신축 아파트가 입주를 하고 있었고, 집을 보기 무섭게 바로 계약해버렸다. 그렇게 생애 두 번째 아파트 생활이 시작되었고, 이번에는 34평이었다. 집 사이즈가 늘어나면서 함께 집을 채우는 짐들도 증가되었다. 이사하면서 6인용 식탁과 퀸사이즈 침대, 아이들 각방에 싱글 침대와 책상, 그리고 책장들까지 이번에는 굵직한 가구들이 더 들어차기 시작했다. 친한 후배의 부탁으로 동화책 전집을 책장과 함께 집에 들이기까지 했다. 무거워진 살림살이는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뭔가 정리하고 버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하나도 버릴만한 게 없었다. 어딘가에는 다 쓰임이 있는 물건들이었으니까....



첫째가 아주 편안하게 3분 거리의 고등학교를 다녔고 졸업을 할 무렵, 또 한 번의 움직임이 찾아왔다. 기존 집을 전세 주고, 전세로 옮겼던 탓에 전세금이 한없이 올랐고 대학에 입학한 아이의 통학거리가 또다시 힘들어진 것이다.  기존 집의 매매가 안 되던 상황이라, 또다시 겁 없이 일을 저질렀다. 기존 집은 그대로 둔 채, 살고 있는 전세금을 가지고 영끌 대출로 24평 신축 아파트를 계약했다. 첫째의 대학교 통학이 가까운 곳으로 말이다. 어쩌다 1가구 2 주택자가 되었고, 아파트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막차에 탑승했다.


문제는 이사를 앞두고, 짐을 엄청나게 줄여야 하는 상황에 마주한 것이다. 34평에 꽉 들어찬 짐들을 이번에는 24평에 맞춰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머리가 어질어질 해졌다. 버리고 또 버릴 수밖에 없었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이사 날짜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마음은 더 급해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짐 정리에 총력을 기울였다. 당근 거래로 분주한 나날들과 거대한 가구들은 중고상에 의뢰했고, 피아노까지 처분했다.(피아노 처분으로 남편과 싸웠다. 시어머님이 사주신 거라 가지고 가야 한다는 남편의 입장과 둘 때도 없고 아이들이 사용도 잘 안 하는 피아노를 처분하자는 나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던 것이다) 이것저것 생각하면 줄일 수 있는 짐이 하나도 없이, 다 추억이 있고 애정이 담긴 물건들이다. 하지만 집 사이즈가 줄어들면서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냉정하게 판단하고 실행해야 했다. 이사하는 당일까지 버리고 버려 무사히 24평의 아파트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의 경험이 너무 혹독했었는지, 나는 이 집에 살면서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최소한의 살림을 꾸리는데 열중했다.



여기서 내 생애 이사는 끝일 줄 알았는데, 사람의 앞길은 알 수가 없다. 다행히도 꾸준히 짐을 줄여가고 있는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진땀을 빼지 않을 수 있었다. 둘째의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적한 변방 생활에서 다시 도심의 아파트 생활로 이사를 결심했다. 그사이 남편은 일 때문에 서울 생활을 시작했고, 첫째도 독립한 터라 더 단출한 생활이 가능했다. 도심의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비쌌지만, 눈높이를 낮춰 오래된 아파트를 염두해 두니 해답이 보였다. 그것도 학교와 3분 거리에 위치한 맞춤한 아파트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신축 아파트에만 살아왔던 내가 과연 25년 된 아파트에 살 수 있을까 살짝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이 또한 거침없는 추진력으로 한 달 만에 집을 계약했다. 이번에는 20평 아파트로 이사를 해야 했다.(오래된 구형 아파트라 체감 평수는 더 적었다) 하지만, 이미 퍼펙트 하게 줄여진 짐 덕분에 큰 고생 없이 공간 이동을 마무리했다. 지금도 쓸데없는 물건들은 계속 줄여나가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물건을 집에 들일 때는 적어도 수십 번 고민을 하고 결정한다. 이사를 하면서 짐을 줄이는데 혼쭐이 난 경험의 시간들이 나의 세포까지 각인된 상태라 이런 습관은 꽤 오래 유지될 것 같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던 오래된 아파트 생활이었다. 비밀번호가 없는 오픈된 1층 아파트 입구와 직주가 아닌 주차장, 복도식 구조, 냉난방이 취약한 새시 등 불편한 것 투성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살다 보니 좋은 점들이 마음을 푸근하게 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의 나이테를 머금고 있는 무성한 나무들, 친절한 경비아저씨들, 인심 좋은 이웃들, 시멘트 냄새보다 흙냄새가 더 친숙한 공간들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적은 공간에 맞춰진 나의 단출한 살림들 덕분에 나의 일상은 늘 가볍다. 이 가벼운 마음 덕분에 일상은 또 다른 풍요로움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요리에 더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창문 너머로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음악을 듣는 시간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 더 줄이고 줄이는 삶, 소유하는 물건이 아닌 나를 채우는 감성들로 시선이 옮겨가고 있다.


이젠 어디로든 가볍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여름의 식탁, 그리고 여름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