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서 든든한 길
"부부이신가요?"
"애인관계이신가요?"
그렇다.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이 동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세간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동업계약서 하나 없이 동업관계를 잘 지켜나가고 있는 건, 서로의 신념이 같고 가고자 하는 방향이 일치하기 때문이리라.
5년 전 같은 직장에서 10년 동안 호흡을 맞추던 남자 사람 김 과장과 여자 사람 윤 과장은 동시에 사표를 던지고 창업의 세계에 호기롭게 뛰어들었다.
사실, 지금에서야 털어놓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우린 딴짓을 했다. 1년 동안이나 준비작업을 했던 것이다. (독립해서 회사를 차리고자)
퇴근 후, 주말 할 것 없이 레시피 개발과 브랜드 론칭 준비로 두 다리 뻗고 쉬는 것은 잠시 접어 두기로 한 시간들이었다.
김 대표의 경우 항상 미래에 대한 불안과 준비로 새로운 사업에 대한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있었던 반면,
나의 경우는 까마득한 입사 대선배로 이미 한 직장에서 20년간 근무하고 있었던 화석 같은 존재였다.
누구나 그렇듯 직장생활에서의 스트레스는 늘 존재해왔지만, 그렇다고 배신하지 않고 따박따박 제날짜에 들어오는 월급의 중독에서 벗어날 용기도 없었던 나에게 한방의 사건이 찾아왔으니.. 그건 권고사직의 바람이었다. 사실 호호 할머니 될 때까지 회사에 뼈를 묻으리라, 막연한 자만심과 대책 없음이 불러온 예견된 막막함이었다. 당장은 나를 피해 갔지만, 언제 나의 순번이 될지 모르는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자니,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늦게 말이다..)
남편의 경우, 나의 권유로 시작한 식당이 투자 금액을 다 날려먹고 빈털터리로 집에 들어앉기 시초를 다투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야말로 이것이 진정한
진퇴양난이구나 몸으로 익히는 날들이었다
한평생 보고, 배운 게 식당 밖에 없으니 달리 다른 대안은 찾아볼 용기도 생각도 없었다. 김 대표와 둘이서 퇴직금으로도 턱없이 부족한 자금을 영혼까지 끌어모았다. 1년을 공들여 온 자리에 식당 창업을 준비하며 20년도 넘는 세월 동안 나름 이 바닥 전문가라고 고개 뻣뻣하게 들고 다녔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수많은 스트레스 상황과 마주하기도 했다.
제일 두려웠던 건,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는 것이었다. 장사가 잘 될 것인가? 손님들은 우리의 음식을 맛있어할 것인가? 이러다 투자금(아니 전재산)을 다 날리는 건 아닌가? 그야말로 원샷원킬, 이것이 성공 못한다면 그 이후의 시간은 상상조차 하기 두려웠다 아니 무서웠다
절대 미각의 소유자 취사병 출신의 김 대표는 주방을, 회사에서 CS 업무를 담당했었던 나는 홀 업무를 담당하며 최적의 감각으로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고, 그 세월이 벌써 햇수로 5년째를 이어가고 있다
섬세한 김 대표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나의 기질이 서로 보완되고, 때로는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무엇보다 동업자로서 서로가 지켜야 할 태도들에 항상 마음을 쓰고 있다.
동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그것도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사업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 사회의 인식과 맞서야 하는 것이기에 더욱 사명감이 크다고 해야 할까? 올바른 기준과 원칙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외로 주변에 동업관계를 성실하게 모범적으로 잘 이어가는 사례들이 많다.
모든 업무를 시스템화하고 단순화시켜 한식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우리들처럼 막막한 퇴직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든든한 브랜드가 되고자 하는 것이 사업 시작의 첫 마음이었다. 우리의 브랜드를 세계 최고의 한식 브랜드로 성장시키자는 거창한 포부보다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 곁의 모든 가장들에게 함께 하는 든든한 파트너가 되고 싶었다. 그들이 가족과 행복한 시간들을 그려나가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작은 식당이 하나의 브랜드로 태어나,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켜나가는 과정은 인고와 인내의 시간들이다.
제일 중요한 건 함께하는 파트너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 마음들이 하나로 일치될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식당 하나 운영하는데 무슨 거창하게 철학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수없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일관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자기 신념과 철학이 중요하다. 세상의 모든 유혹과 맞서 싸워야 하는 순간순간이 많다. 원가를 줄이기 위해 이익을 취하기 위해 한순간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게 모든 업의 어려움이 아닐까?
존재의 이유를,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함께하는 파트너들의 얼굴이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처음에는 막다른 절벽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사업이, 이제는 내가 겪었던 절박함의 순간을 맞이한 모든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변했다는 건 엄청난 변화라고 생각한다. 혼자라면 감당할 수 없었던, 어쩌면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함께이기 때문에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고, 더디지만 꾸준하게 서로를 다독이며 성장할 수 있는 힘이 길러졌으리라 믿는다.
"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인디언 속담처럼 함께 걸어가는 멀고 먼 저너머의 길이 외롭지 않아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