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은 12와 1/2바퀴」 김기태 단편소설
아픔을 동반하지 않은 교훈은 의미가 없다. 사람은 무언가를 희생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으므로. (痛みを伴わない教訓には意義がない. 人は何かの犠牲なしに何も得ることはできないのだから) 강철의 연금술사 1화 프롤로그
프롤로그
동해안 양양을 떠올리게 하는 한적한 바닷가, 주인공은 딸 이름을 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이다. 여관을 리모델링한 후 한 때는 손님이 북적일 때도 있었지만 어떻게 잘 되겠지 막연한 낙관만 주워섬기며 버티다 손님이 끊긴 지 오래다. 서울에서 취업한 딸이 오랜만에 고향을 찾기 하루 전, 사마귀처럼 길쭉하게 생긴 낯선 늙은 사내가 찾아온다. 그는 20년 전 이곳이 여관일 때 204호에 머물렀다고 하며 동일한 방을 요구한다. 사내는 수건이나 일회용품도 요구하지 않고 쥐 죽은 듯 있다가 자정 무렵 러닝셔츠와 팬티차림으로 로비의 오래된 괘종시계를 보며 주인공의 딸이 자신에게 건넨 말을 떠올린다.
다음날 짤막한 인사만 남기며 홀연히 떠난 사내. 주인공은 빈 방을 정리하다가 테이블에 꽁꽁 묶인 검은 비닐봉지를 발견한다. 주인공은 그것을 반드시 돌려주어야 할 것 같아서 슬리퍼를 신은 채 눈길을 헤치고 사내를 따라갔다. 사내는 받으려 하지 않는다. 소설 속 검은 비닐봉지는 스릴러 영화의 연출 기법인 '맥거핀(Macguffin)' 처럼 등장해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키지만 정작 그와 사내의 진실에는 접근하지 못한다. 비닐봉지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라고 한다. 그 후회의 대부분은 실행에 옮기지 못한 아쉬운 순간들의 기록이다. 괘종시계의 태엽도 자주 감아주지 않으면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완전히 멈춘 시계는 태엽을 12바퀴 돌리고 나서 다시 반 바퀴 정도 더 돌려야 태엽이 멎는다.
“돌아가면 오른쪽 태엽을 감아보고 싶었다. 열두 바퀴든 열두 바퀴 반이든. 그때 잘못 셌거나 지금 잘못 셌거나. 아니면 그때는 열두 바퀴였는데 이제는 열두 바퀴 반이거나. 시계판 뒤에 무슨 장난과 음모가 있든 살아야 할 시간이 많았다. 어쩌면 서핑을 배울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이 있을지도 몰랐다. 왜 시도도 안 해봤을까. 나도 파도를 탈 수 있지. 그래, 나는 파도를 탈 수도 있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 순간들을 후회하는 것은 바보다. 소설 끝에서 근육질과 곱슬머리 서핑 2인조는 참 단순하게 반응한다. 거친 겨울 바다의 파도를 타기 위해 근육질은 기도를, 곱슬머리는 스트레칭을 한다.
“내가 파도에 휩쓸리면 네가 그분의 힘으로 날 구해. 만약 네가 위험해지면 내가 스트레칭의 힘으로 널 구할게.”
꼭 그래야 할 일도 없지만 꼭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없다. 누군가는 망설일 때 누군가는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근육질과 곱슬머리가 멀리 길가에 검은 봉지를 들고 아무것도 못한 채 서 있는 노인을 향해 말했듯 누군가 우리에게 똑같이 다그칠지 모르겠다.
“그런데 저 사람 뭐 하냐?”
1995년 개봉한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세븐>은 섬뜩한 결말로 유명하다. 영화는 두 형사가 성서가 경고한 7가지 죄악(교만, 탐욕, 질투, 분노, 욕정, 식탐, 나태)을 따라 발생하는 일곱 개의 치밀한 연쇄살인의 범인을 쫓는 이야기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정의감이 넘치는 신참내기 형사 밀스(브래드피트)는 아내의 머리가 담긴 상자를 택배로 받고 분노가 극치에 이른 상태에서 범인 존도우를 살해한다. 악에 맞서는 도덕성과 정의란 있는가? 인간다움이란 어디까지인가? 거대악은 또 다른 거악이 되지 않고서는 해소될 수 없는 것인가? <세븐>은 주도면밀한 악에게 완벽할 정도로 농락당하는 영화다. 상실과 두려움을 넘어 무력감을 남긴 채 영화는 끝이 난다. 더 섬뜩한 것은 영화에서는 그저 피 묻은 택배 상자만 보였을 뿐인데 영화를 보고 나면 밀스의 아내, 트레이시(기네스 팰트로)의 잘린 머리를 계속 상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생애 두 번째로 연출한 영화에서 이미 걸작을 만들어 버렸다. 당시 신인 감독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한 기획의 영화다. 종교를 기반으로 한 7번의 살인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두 형사의 이야기에는 더 나은 세상을 남겨두기 위해 발버둥 치는 어른들의 고민이 담겨 있다. 이 영화가 <조디악>을 만들기 위한 시작이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보면 엔딩의 우울함은 더욱 배가된다. 거친 세상에 할 말이 많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던 목소리만 낼 수 있는 어떤 '순수'의 절정. <씨네21 김현수기자 영화평>
김기태의 「태엽은 12와 1/2바퀴」에는 머리에 대한 오마주가 계속 등장한다. 소설 초반 근육질과 곱슬머리의 대화에 나오는 통감자. 차 지붕 위에 실수로 올려둔 통감자가 차가 출발하자 관성의 법칙에 의해 통통 튀다가 뒤차에 부딪쳐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상상. 게스트하우스 1층 구석에 서 있는 괘종시계는 둥글고 묵직한 시계추가 좌우로 오간다. 머리를 매달아 놓은 것 같은 착시가 생긴다.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온 사내는 또 어떤가? 그는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어서 사마귀를 연상시켰다. 내가 본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사마귀는 짝짓기 후 암컷이 수컷의 머리를 먹는다. 주인공 그는 딸을 위해 닭요리를 준비한다. 그리고 생닭에 칼을 찔러 넣으며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다.
“그는 누군가를 먹이려면 피를 봐야 한다는 사실을 도마 앞에 서서 뒤늦게 배워갔지만 기분이 싫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지냈던 포구를 떠올리면 비릿한 피 냄새. 해진 운동화 밑에서 미끌거리던 생선 내장. 줄지어 앉아 묵직한 칼로 생선을 내리치던 어른들. 그 많은 생선 대가리는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머리에 대한 불길한 예감은 사내가 남겨놓은 께름칙한 검은 비밀봉지에서 극에 달한다. 축구공 만한 크기, 보기보다 묵직했고 물기가 있는 듯 아래가 살짝 출렁거리는 느낌. 그는 손에 검은 봉지를 들고 사내를 쫓아가다가 사내에게서 이상한 대답을 듣는다. 필경사 바틀비의 화법을 떠오르게 한다.
“만약에 말입니다. 제가 정말 가져갈 생각이 없다면, 그래서 받아 들지 않는다면, 그걸 어떻게 제게 주시겠습니까?”
그는 사내의 갯바위처럼 썩어 있는 이와, 삐뚤삐뚤한 치열, 깊은 주름을 마주하는 순간 눈에 묻혀있는 벽돌로 사내의 뒤통수를 내리쳐 눈밭에 피를 튀기고 싶다는 살의(殺意)를 느낀다. 마침내 그는 살인대신 딸을 위해 준비할 닭을 희생양으로 떠올렸다. 먹기 좋은 크기로 닭을 썰어야 한다. 머리속을 채우는 선명한 이미지의 대조. ‘하늘이 맑았다, 눈밭은 하얗고 바다는 파랬다.’
아래 글은 소설의 숨겨진 내용을 상상해서 쓴 것입니다. 쓰고 보니 호러 미스터리가 되었네요.
사내는 20년 전, 게스트하우스가 있기 전 ‘은혜장’ 여관을 방문했었다. 아내와 함께한 신혼여행이었다.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어느 날 우발적으로 아내를 죽였다. 아내가 교미를 끝내고 자신을 목을 삼키려고 하는 암컷 사마귀의 표정을 지은 것이 화근이었다.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했다. 사내는 이 모든 비극이 어디에서 시작한 것인지 알았다. 은혜장여관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20년 전 아내와 함께 들어선 여관 1층 구석에 커다란 괘종시계가 있었다. ‘축결혼’이라고 반짝이는 글자가 쓰여있는 시계였다. 괜한 기분에 시계를 보고 있는데 여관집 주인의 딸이 아저씨라고 부르며 다가왔다. 마침 자정이어서 시침과 분침, 초침이 한자리에 모이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이가 말했다. “아저씨, 그 시계 안 맞아요!!”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 아내와 나는 다시 각자의 속도와 거리로 멀어지는 시곗바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이게 우연 같지 않았지요. 잘될 것 같았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초침처럼 한 칸 한 칸. 시계추처럼 침착하게 살 거라고요.”
사내는 아내의 시신을 토막 내어 매장하고 머리를 따로 밀봉하여 검은 봉지에 넣었다. 검은 비밀봉지는 투박한 가방에 넣었다. 학생들이 멜 법한 책가방으로 늙은이에겐 어울리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가방이 어깨를 짓눌렀다. 이 머리를 그 여관에 남겨두고 싶었다. 우리가 묵었던 신혼 방에. 그러면 무엇인가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여관은 게스트하우스로 상호만 바뀌었을 뿐 그 자리에 있었다. 주인도 그대로였다. 심지어 괘종시계까지. 신혼여행 때 묵었던 방으로 들어갔다. 잘 되었다 싶었다. 과거로 돌아온 듯 설렜다. 내일 아침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떠나면 되는 거야 속으로 다짐했다.
머리를 넣은 검은 비닐봉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여보 여기에 있어, 행복하게, 그러면 나는 자유를 얻을 수 있어. 검은 비닐봉지를 들었더니 어디에서 빠져나왔는지 무게가 느껴지는 액체가 흘러나와 젤리처럼 물컹했다. 피일까? 아니면 아내의 눈물일까? 다행히 냄새는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자지도 않았다. 난방도 하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듯 침대에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쥐 죽은 듯 소리 없이 밤을 보내다 악몽을 서너 번 꾸었다. 목 없는 아내의 환영이 혼몽한 가운데 손짓을 하며 머리를 찾는 꿈이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아내의 머리를 남겨두고 서둘러 게스트하우스를 떠났다. 그런데 숙소사장인 그가 아내의 머리가 든 검은 비밀 봉지를 들고 눈 속을 헤치며 따라올 줄은 몰랐다. 아니 아내의 머리가 차 지붕 위의 통감자처럼 튕겨서 그를 내게로 이끌었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 거야? 내게서 멀어지지 마. 비닐봉지가 웅웅거렸다. 그는 슬리퍼를 신고 있어서 양말이 이미 눈에 다 젖어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눈길을 슬리퍼로 뛰어오다니. 처음 그를 볼 때부터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눈빛에서 죽음이 느껴졌다. 관에 누워 잠든 사람의 눈빛이었다.
"너도 네 아내를 죽였니? 네 아내는 63빌딩을 기도하는 손 같다고 했지. 평범한 사람은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 그녀는 늘 죽음을 떠올렸을지도 몰라. 너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그는 아내와 사별한 후 20여 년을 혼자서 이 남루한 숙소를 지키기 있었다. 그러면 검은 봉지를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면 금방 소문이 날게 뻔하다. 아마 자신의 범죄도 밝혀지겠지. 어쩌면 괘종시계 속에서 아내의 시체가 나올지 몰라. 그래서 태엽이 돌지 않는 거야. 아니면 포우의 소설처럼 아내의 시신을 여관을 리모델링하면서 벽에 넣고 미장을 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런 후미지고 올드한 게스트하우스는 소문이 난 날로부터 당장 영업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그도 그것을 알고 있으니 쉽게 처신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에겐 서로 지켜줘야 할 비밀이란 게 있으니까. 신고하면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되고 그의 딸은 돌아올 곳이 없어지며 다시는 딸을 위해 닭요리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칼끝의 살의를 닭에다 풀 수도 없으니 또 살인을 해야 할지 몰라. 우린 서로 통하는 데가 있으니 그건 서로 를 위해 입을 다물자고.
검은 비닐봉지를 내미는 그에게 사내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가져가지 않을 겁니다. 깜빡한 거라고 쳐주십시오.”
그는 나를 죽일 듯 쳐다보았다. 눈 바닥 속에 박힌 보도블록을 들어 내 머리라도 내리 칠 기세였다. 그는 봉지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 분명 아는 것 같았다. 그의 손끝에서 봉지가 나직한 바람에 파르르 떨렸고 축구공 모양의 머리가 그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돌아서는 내 등에 그의 시선이 꽂혔다. 내가 한참을 걷고 돌아봤을 때 그는 다리가 얼어붙은 듯 여전히 바닷가에 혼자 서 있었다. 멀리서 서핑을 나온 두 명의 청년이 그를 쳐다보고 뭐라 하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