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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봄 Dec 15. 2022

누군가 멈춤 버튼을 눌렀다

오늘도 잘 쓰겠습니다

 나는 좀 피곤하게 사는 듯하다. 못마땅한 습관 목록에 또 하나를 보태면서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예전과 달리 이건 아닌데 하며 갑갑해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못마땅함이 무엇인지 하나씩 가려낼 수 있게 된 건 시간을 갖고 스스로를 지켜본 나름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단점이라고만 생각하면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숨기고 싶지만, 그것을 말하거나 문장으로 쓰면 내 본모습을 붙잡았다는 통쾌함마저 느낀다.

 

 피곤하게 산다는 말이 튀어나온 건 가을 무렵이었다. 명퇴를 한 지도 이 년이 지나 하루하루 루틴에 익숙해져가던 즈음, 눈 건조증이 심해져 평소 다니던 동네 안과 처방으로는 부족한가 싶어 시내 안과로 갔더니, 정밀 검사 후에 ‘황반의 낭’이라며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라 했다. 시력이 나빠진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정기적으로 안과 검진을 받지 않은 자신을 탓했다가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생기냐며 하늘을 탓했다가 하는 동안 수술 날짜가 다가왔다. 생소한 진단명이 무시무시하기도 했고 생애 첫 수술을 받으려니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그보다 더 걱정되었던 것은 안정된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견뎌야 할 ‘시간’이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경과도 좋았다. 하지만 당분간 회복에 집중해야 했고 그 방법은 눈을 쉬게 하는 것뿐이었다. 독서모임과 글쓰기 모임, 드로잉 수업 모두 쉬어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잠들기 전 폰을 보던 습관도 마침내 중단했다. 텔레비전이 소리상자로, 달리기가 걷기로 바뀌었다. 이 년 전 퇴직으로 큰 엔진을 껐다면 이제는 전원 스위치가 내려진 느낌이었다. 밥 먹고 산책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 편하고도 무의미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즐겨찾기 해놓은 팟캐스트 방송만이 하루 종일 활발하게 공간을 채웠다. 

 

 빨리 복귀하고 싶은 ‘안정된 일상’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건 겉모습뿐이었다. 하루하루 루틴이 안정적이었다 해도 마음까지 그랬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읽고 싶은 책이 계속 생기고, 같이 읽고 쓰며 이야기 나눌 사람들을 새로 만나는 것도 즐거웠지만 머릿속 한편으로 윙윙 거리는 소음이 분명히 있었다. 지난 이십 년의 소음, ‘잘하고 싶다. 지고 싶지 않다’와 오버랩 되며 신경을 잡아당기는 소리는 ‘이대로 살아도 되나. 나에게 맞는 역할이 있을까’였다. 

 

 조직의 부품이 아니라면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 웅웅거리는 그 소음이 재촉이 되었던 걸까. 퇴직한 다음 해에 이어 올해도 써놓았던 글을 모아 독립출판물을 만들었다. 잘 쉬는 방법을 찾기보다 여전히 할 일이 있는 내가 익숙했다. 우연히 알게 된 워크숍에서 편집, 표지 디자인까지 복습하며 결과물을 만들었고 플랫폼에 입고해 판매도 했다. 또다시 창작자도 되었다가 편집자도 되었다가 판매자까지 되고 보니, 글도 결국에는 책이 되어 팔려야 미래와 의미 있게 연결될 수 있다고 새삼 느꼈다. 그렇게 생각이 앞서 달리는 동안 마음은 지쳤고 한동안 글쓰기에서 멀어졌다. 책 만드는 방법은 배웠는데 글 쓰고 싶은 의지는 사라졌다. 일상의 평온함이 당연함과 지루함으로 뒤바뀌면서 감사함과 소중함을 몰아내고 있었다. 그 정도가 한참 고조되고 있을 때 알 수 없는 우주의 시나리오가 작동되었던 걸까. 기능은커녕 하던 것마저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은 왜일까. 

 그렇게 멈춤 버튼이 눌러진 사이 이 년 전을 떠올렸다. 나를 쉬게 해주고 싶었고 글을 쓰고 싶었고 천천히 말하고 싶었던 순간이 생각났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다고 또 우선순위가 바뀌어 예전처럼 속도를 내려했던 것이다. 나 참 피곤하게 산다. 제대로 쉬려면 일단 제대로 멈추어야 했다. 몸과 마음을 여기 이곳에 머무르게 하면서. 그러니 지금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딱 필요한 시간, 그 때의 마음으로 되돌려야 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서서히 회복되었다. 이주일이 흘러 머리를 감았고 한 달이 지나자 안대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 안약도 세 종류에서 한 종류로 줄어들었다. 두 달이 넘자 충혈되었던 부분이 하얗게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고, 석 달이 넘은 지금은 달리기도, 모임도 다시 시작되었다. 미리 걱정했던 그 ‘시간’은 그렇게 건너뜀 없이 차례차례 지나갔다.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회복도 변화도 있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의지나 욕망보다 시간을 버티는 힘이 중요한 때가 있다는 것도. 

 

 새로 맞춘 안경을 써본다. 선명하게 잘 보이지만 아직은 어색하다. 렌즈에 적응하는 시간이 또 필요하겠지. 바뀌고 적응하고 견디면서 시간은 흐른다. 건너 뛸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시간이 이번엔 어떤 버튼을 준비하고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시간을 통과하는 것. 통과하고 나서야 이름 붙여 보는 것. 그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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