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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봄 Dec 17. 2022

에스타로부터

(리뷰) 소설 작은 것들의 신

 사랑의 법칙을 아시나요? 말라얄람어를 쓰는 케랄라 주, 제가 태어났던 1960년대 그곳에서는 그런 법칙이 있었다고 해요. 누가 사랑받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사랑받아야 하는지 정해놓은 법. 버스에서 라헬과 저를 낳을 뻔한(그러나 결국 평생 무료로 버스를 탈 기회를 놓쳤던) 암무와, 필라이 부인, 에아펜 부인, 라자고팔란 부인을 깍듯이 대접해 주었던 벨루타는 스물일곱과 스물넷이었던 1969년 12월 그 법칙을 깼다고 합니다. 사랑했지만 법칙에는 어긋난 사랑으로.


 참, 저 에스타와 라헬은 이란성 쌍둥이에요. 끝이란 게 없어 모든 것이 영원하던 어린 시절에 우리는 서로를 합쳐 ‘나’로, 따로 떨어져 각자로서는 ‘우리’로 생각했어요. 그런 저와 라헬은 일곱 살 때 헤어져 서른하나에 다시 만났습니다. 서른하나, 늙지도 않고 젊지도 않은, 살아도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 바바와 헤어지고 우리를 두 배로 사랑해주었던, 그 사건에서 지켜주고 싶었던 암무가 죽은 나이에, 우리는 ‘정적’과 ‘공허’로 만나 서로를 안았습니다. 아예메넴에서 23년 전 암무가 어겼던 그 사랑의 법칙을 이번엔 우리가 어기고 말았습니다. 암무와 벨루타, 라헬과 저는 분류표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되었죠. 그럼 우리는 또 한 번 ‘삶의 대가’를 받아야 할까요?


  공허가 정적을 안았을 때 무언가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았어요. 아무리 정돈해도 깨끗해 보이지 않았던 제 방처럼, 머리와 가슴이 답답해져왔거든요. 그래서 소피 몰은 제가 떠올릴 수 있는 첫 인물이 되었습니다. 소피 몰을 만나기 하루 전. 아브힐라시 탈키스 극장. 영화를 보며 노래를 따라 불렀던 나. 그 남자. 토하고 싶었던 나.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준비해두는 게 상책이다, 작은 배’가 연속해서 떠오르네요. 그리고 그 날. 두 배로 우리를 사랑하던 암무가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는 내 목에 매달린 맷돌이야. 가버려.’라고 갇힌 방 안에서 소리쳤죠. 일곱 살은 스물일곱의 진심을 구분하기 어려웠어요. 그리고 스물넷을 지켜주는 것도요. 우리가 사랑했던 벨루타가 아니라 우룸반이었던(이어야했던) 그 스물넷 남자를요. 기차역. 또 토하고 싶었어요. 마드라스 우편 열차. 결코가 기필코로 바뀌어 버린 그 곳. 눅눅한 샌드위치를 먹어야 했던, 기억나지 않은 바바가 있는 곳으로 향하던. 


  아예메넴으로 돌아온 라헬을 보았을 때 저는 그녀를 지나쳤어요. 우리는 더 이상 ‘작은 엘비스 골반’과 ‘도쿄의 사랑’은 아니었으니까요. 가장자리, 경계선, 끄트머리 그리고 한계 같은 것들이 각자의 지평선에 나타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암무의 지혜 연습장을 발견하고 카타칼리를 다시 보면서, 삶이 시작되기 전부터 서로를 알았던 ‘우리’를 깨달았어요. 그리고 내 가장자리의 인물들과 라헬의 그들이 같다는 것도요. 


  누구를 먼저 이야기할까요? 오렌지드링크 레몬드링크맨? 필라이 동지? 맘마치? 차코 삼촌과 마거릿 코참마? 벨리아 파펜? 토머스 매슈 경위? 음, 베.이.비. 코참마는 어때요? 아니면 사랑의 법칙을 어겼던 다른 이들은요?


 모두 우리에게는 작지 않았어요. 크고도 달랐죠. 그 때는 몰랐습니다. 용돈 받는 아이가 얼마나 거슬려 보일 수 있는지, 피클 공장을 가진 자본가가 혁명 세력(허울뿐이라 해도) 눈에 얼마나 싫게 보이는지, 남편에게 맞는 것보다 파라반을 사랑하는게 얼마나 역하게 느껴지는지, 자식을 잃은 자에겐 살아있는 아이가 죄가 되는지, 스스로 굴복한 자나 스스로 집행하는 자가 얼마나 바뀌기 어려운지 알지 못했습니다. 


 암무가 우리에게 말했었죠. 사람들은 늘 동질감을 느끼는 대상을 가장 좋아한다구요. 베이비 코참마는 아무에게서도 동질감을 느낀 적이 없을 겁니다. 느끼려 하지 않았죠. 자신은 법칙을 어기지 않았으니까요. 좋아했던 멀리건 신부는 죽어서야 다시 만났고 노트 위에서만 열정의 대상이었죠. 그 어떤 종류의 사랑도 그녀의 삶에 들어와 본적이 없습니다. 그녀의 세계에는 위성TV와 죽은 맘마치가 남긴 보석과 모든 창문이 닫힌 아예메넴 집과 시간을 거슬러 살고 있는 그녀 자신뿐입니다. 자신이 한 일 조차 모르겠죠. 서로 위안이 되어준다는 것만으로 저와 라헬을 싫어했으면서 경찰서에선 우리가 소피 몰을 얼마나 질투했는지 모르냐고 다그쳤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말은 왜 그녀에겐 적용되지 않을까요? 그녀는 스스로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법칙을 어기지 않았던 큰 세계에서. 거미도 광기도 헤어짐도 없는. 사랑은 더더구나. 


 지금 거기는 어떤가요? 그곳에 벨루타는 행복한가요? 씩씩하고 총명하고 일곱 살과도 잘 놀아주는 사랑스런 벨루타. 작은 것들의 신을 상실하고 삶을 상실했던 저와 라헬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우리의 내일에 있는 당신, 당신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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