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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자몽에이드 Mar 29. 2023

사람을 마음없이 대할 수 있을까.

- 소설 '나주에 대하여'

'사람을 대할 때 마음 없이 대하라. 

마음 없이 대하면 상대가 그지없이 편안하다.

마음 없이 대할 때 상대와 하나가 된다.

상대와 하나가 되면

상대가 나의 마음 없는 말을 듣는다.


사랑, 자비, 인은 가짐이어서 

상대의 마음을 구속시키다.

이것이 좋지 않은 것은

그 마음을 낳게 하는 업을 쌓기 때문이다.'

 

- <사람을 대하는 방법> 중에서-


2016. 3. 11. 내 카카오톡 배경사진으로 썼던 글귀를 오랜만에 발견했는데, 지금에야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요즘, 독서모임 지정도서여서 소설 '나주에 대하여'를 읽게 되었다.


소설 '나주에 대하여'는 사람이 사람에 대해 가지는 마음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주에 대하여'도 8개의 단편 중 하나이다.


첫번 째 단편, <새 이야기>를 다 읽고 나는 활짝 웃었다.


 '새 이야기'에서는 대학교 내 호수에 살던 오리가 호숫가에서 늘 보던 대학생을 사모하여 각고의 노력끝에 사람이 되어 그 학생앞에 나타나 파 화분을 건네고 사라졌는데, 그 파가 그 학생에게 사실은 그 남자가 오리였다는 이야기, 그 오리는 너를 찾아 인간이 되었다가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는 대학원 시절 교내 호수에 있었던 엄마오리와 아기오리들이 생각나서 웃었다. 하늘을 날던 엄마 오리가 돌아오면 아기 오리들이 물위를 뛰듯이 달려가던 모습이 생각났고, 오리가 하늘을 난다며 무슨 오리인지 검색해본바 원앙만이 하늘을 날 수 있는 오리라 해서 쟤네는 원앙인가보다 생각했고, 너무 귀여운 아기오리들을 보러 점심시간내내 호숫가를 돌았던 게 생각났다. 그런데 갑자기 호수바닥 청소를 한다며 호수의 물을 빼버리는 바람에 아기오리들이 사라졌고, 아직 이소를 할 수 없는 상태의 아기오리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매우 걱정했던 게 생각났다. 내가 그 오리들을 보러 나갔을 때 그 아기오리들도 나를 봤을테니 그렇다면 아기 오리들 중 한마리가 이 소설처럼 사람이 되어 찾아올수도 있나싶어 웃음이 났고, 그 발상이 재밌어서 웃었다. 어찌보면 황당한 설정이지만 마음이 간절하면 뭐라도 되는구나 싶어 웃었다.


두번쨰 단편, <나주에 대하여>를 다 읽고 나는 화자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주는 황당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화자는 처음부터 '나주'를 알고 있었고, 온라인에서 '나주'를 관찰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나주'가 화자의 회사에 입사지원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나주'와 관계를 맺고 실제적으로 관찰한다.  


화자가 '나주'를 관찰하는 이유는 관심이 있어서이다. 화자가 나주에게 관심이 있는 이유는 나주가 화자의 남자친구가 만났던 전 여친이기 때문이고, 그 남자친구가 자기 자신과 비슷했던 전 여친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했기 때문이며, 현재 그 남자친구는 사고로 갑자기 죽어버린 상태인데 나주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고 화자는 '여친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는 '나주'와 그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일면 이해가지만, 화자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순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별로였다. 화자가 나주에게 관심을 가진데에는 목적도 있었고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화자도 그 목적과 의도때문에 나주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지만,  나주는 화자의 암시로부터 그 남자가 죽었다는 사실, 화자가 그 남자의 죽기 전 여친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아니 그보다 화자가 '나주 본인이 그 남자의 전 여친이었다는 사실'을 이미 다 알고서 접근했다는 사실을 알고 화자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 현실적인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번쨰, 네번째 단편인 꿈과요리, 근육의 모양을 읽을때는 지루하고 재미없고 불편했다.


나는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 아니다. 타인의 생각을 짐작해보려고 애쓰는 편도 아니다.

나에게도 타인의 속마음을 궁금해하던 때가 있었지만 내가 도달한 결론은 속담 그대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짐작해도 그건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내 스스로 내 마음조차 잘 모르는데, 타인의 마음까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으랴 하는 것이 내 결론이다. 타인의 마음을 짐작하고 생각하는데 에너지를 쏟는 것은 무용한 것이어서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타인은 내가 아니지만 그래도 감정적으로 예민한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을 타인에게 하지 않고, 내가 느끼고 싶은 감정을 되도록 타인에게 선물하고, 공감해보는 정도이다. 그래도 타인은 내가 아니라서 진정 타인의 마음과 감정에 닿을 수 없다고 보지만, 그래도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타인의 감정을 헤아려보려하는 태도는 무용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그럭저럭 해올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소설의 단편들에서 화자는 지속적으로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읽으려 하고 궁금해하고 타인의 행동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적나라하게 펼쳐놓는다. 그게 나는 피곤하고 불편했다. 


그래서 더 읽지말까, 계속 이런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완독을 해보니, 척출기부터는 일종의 사랑이야기가 전개됐다. 사랑이야기는 또 읽을만 했다. 그건 왜일까. 타인의 생각을 짐작할 생각 없는 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읽어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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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언젠가 한 번은 남의 마음이 궁금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아주 어릴 때는 엄마나 오빠나 누나나 형의 마음이 궁금했고, 10대에는 엄마아빠형제의 마음에는 별 관심이 없고 친구의 속마음이 궁금했을 가능성이 크다. 20대에는 이성의 마음이 궁금했고 30대에는 학교와 회사를 버무린 대학원이나 회사 등에서 스쳐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하곤 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나면 배우자 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과 행동을 할까 궁금해지고 나이드는 부모님과 시부모 또는 처부모를 보며 무슨생각이실까 싶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타인의 마음이 궁금해서 알고 싶어하고, 어떤 사람은 타인의 마음은 도무지 알 길이 없으므로 추측조차 하지 않으리 생각하고 왜 저러지 정도에서 멈출 수 있지만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접촉을 하고 있는 한 서로의 마음이 궁금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사람은 물론이고,  ('새 이야기'에서처럼) 동물조차도 마음을 가지고 대하고 파 조차도 마음을 가지고 대한다. 또 우리 사회가 요즘 열광하는 게 '스토리'아닌가. 스토리라는 것 자체가, 그게 러브스토리이든 스릴러든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그 관계에 대한 스토리가 전개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생명체가 생명체를 마음없이 대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사람이 사람을 마음없이 대할 수 있을까.


최근 나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이전까지 나에게 일어났던 힘든 일은 대부분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의 게으름, 나의 나태함, 나의 안일함, 나의 회피, 나의 부족함, 나의 의존적 태도, 나의 판단미스..그로인한 정직한(?)결과였다고 할까.


하지만 이번에 일어났던 일은 예측하기 어려웠고 크게봐서  나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의 피해의식과 열등감, 졸렬함과 치졸함 때문이었고 나는 그로인해 한 생명을 잃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별 마음이 없었지만, 그래도 좋은 마음을 가지고 대하려고 노력했었다.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행패를 부렸을 때, 나는 상대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까진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그런데 뒤이어 일어난 일이 있었다.

그 일에서는 달랐다. 

나는 마음 아주 깊숙한 곳을 아주 깊숙히 찔린 듯한 상처를 입었다고 느낀다.

모든 것에 진심인 것 같았던 사람이 사실은 전혀 진심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을때

나는 그사람을 너무나 좋게 평가하고 있었기에 그 상처는 너무도 컸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진심인 척 하며 모두를 속일 수 있을까

모두가 그렇게 믿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그 사람을 알게 된 첫 순간부터 관계를 끝내던 그 순간까지  진심으로 대했는데

어떻게 그 진심을 배신할 수 있을까, 모두가 믿는 그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 볼 수록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자기기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는 걸.

이미 단서가 있었는데 나는 내가 가진 시선으로, 그의 자기기만을 합리화해주었다.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던 것인데, 내가 보고싶은대로 보고 거기에 진심을 쏟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이 나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과연 장점인지에 의문이 생겼다.

내가 가진 마음에 따라 색안경을 쓰고 그에다 진심을 쏟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가.


사람을 마음없이 대하면 상처받을 일도 잆겠지만 그게 무슨 사람과의 관계인가 생각했는데

어떤식으로든 내가 가진 의도와 생각과 관점으로 상대를 대하는게

과연 상대에게는 바람직한가, 나 혼자 좋다고 마음을 갖고 대하거나 나혼자 싫다고 또 그러한 마음을 갖고 대하면 어느것이든 상대에게는 그것이 부담일 수 있지도 않을까, 


소설 <나주에 대하여>를 읽고서 -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피로감은 사람을 대할 때 마음없이 대해야 상대가 그지 없이 편안하고, 내 방식대로 내 주관대로의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업을 쌓는 것이라는 저 글귀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게 해주었다. 또 집요하게 타인의 마음을 분석하고 생각하는 것이나 장황하게 내 감정을 늘어놓는 것이 얼마나 자신과 타인을 피곤하게 하는 것인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느끼는 것이 나의 성향이구나 하는 것 또한 알게되었다.

나 자신을 알아보는데 도움이 된 소설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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