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하르먼스 판 레인 렘브란트, 1632
내 지인들 중 여자들은 몸에 이상이 생겨서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남자는 그런 경우를 보지는 못했다. 물론 세상에는 당연히 몸이 아파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남자의 비율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단지 내 주변에는 건강한 남자들이 즐비하거나 아파도 그만둘 수 없는 속사정이 있는 남자들이 다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통은 40대에 그런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호르몬도 변하고 생애전환기를 맞이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노화가 가속화되는 시기라 그런 것은 아닐까. 극렬한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를 쳐내다가 결국 잇몸이 가라앉고 이가 흔들리기 시작해서 회사를 그만둔 사람도 있고 장시간 앉아 있는 정신노동으로 허리가 견딜 수 없이 아파,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그만둔 이도 있다. 공복혈당이 높아지고 당화혈색소가 12를 넘어 긴급 입원까지 한 사람은 결국 ‘현타’ 와서 미련 없이 퇴사했다. 그녀는 어차피 퇴직할 생각이었는데 몸이 때맞춰 신호를 보내온 것이다. 때맞췄다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는 말을 건네 들은 내 마음 역시 안 좋았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말은 경험적으로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정신은 어느 정도의 내구성(?)을 가지고 스트레스를 버텨준다. 직장 내의 잡다구리 한 신경전, 윗사람의 조급증,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일하기 등 직장인의 스트레스는 끝이 없다. 그냥 직장을 들어가는 순간, 스트레스의 시작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밥벌이의 숭고함으로 우리는 ‘존버’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아직 이 지긋지긋한 직장을 떠날 준비가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으니까 눈물은 나지만, 화도 나지만 오늘도 꾹 참고 회사 출입카드를 찍고 출근한다.
하지만 한계점은 분명 존재한다. 밤잠을 설치고, 뒤숭숭한 꿈에 시달리다가 팽팽하게 당겨졌던 신경 줄이 ‘딱’ 하고 끊어지는 순간이 오면, 바로 몸의 증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힘들어요.’, ‘우울해요.’, ‘견디기 어려워요.’,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요.’ 등등의 느낌이 아니라 신체의 한 곳이 비로소 신호를 보낸다. 몸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나기도 하고 머리의 반쪽이 날아가는 것 같은 편두통의 아픔을 느끼는 사람도 있으며 정상 범위를 벗어난 놀랄만한 수치로 우리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몸의 이상반응을 경험한 사람들은 비로소 몸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가. 무엇이 원인이 되어 이렇게 아픈 것인가. 치료법은 뭐가 있는가. 식생활의 변화를 줘야 하나. 운동은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병원은 물론이고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카페를 들락거리며 대량의 정보를 수집하고 축적한다. 그리고 그녀들은 모두 ‘박사’로 거듭난다. 더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에 감사하며 몸을 관찰하고 관심을 기울인다. 신기하게도 몸이라고 하는 메커니즘은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어 알면 알수록 사람을 매혹시키는 구석도 있어 보인다. 어느 것 하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기관도 없으며 서로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나는 인간이 ‘유기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통감한다.
렘브란트의 이 그림을 보면서 나는 몸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오랫동안 인간을 매혹시켜 왔는지를 떠올렸다. 화면의 정중앙, 방부처리가 되었을 시신은 밀랍처럼 하얗다. 당연한 말이지만 핏기 하나 없다. 그의 왼손이 해부되고 있는 참이다. 하얀 피부와 대조적으로 검붉은 근육 조직은 그도 한 때 피가 돌고 심장이 팔딱거렸던, 우리와 다름없었던 인간이었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왼팔에 가위를 대고 있는 사람이 니콜라스 튈프 박사다. 눈을 크게 뜨고 시신을 주목하고 있는 학생들과 달리 그는 여유가 있어 보인다. 박사는 이미 수십 번의 해부학 강의를 했을지도 모른다. 검은색 모자를 쓰고 무영등도 없는 해부학 강의실에서 촛불에 의지해 그는 모여든 사람들에게 강의를 한다. 그의 시선은 왜 시신이 아닌 왼쪽 앞을 보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처럼 거기에 스크린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혹시, 있었나? 모여든 사람들이 우측 하단에 펼쳐진 책을 주시하는 것처럼 튈프 박사도 큰 종이에 그려진 인체 해부도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튈프 박사의 평온한 표정과 달리 학생들은 놀라움과 경악과 알고자 하는 지적 욕구가 뒤범벅이 된 표정이다. 교재와 실제 인체의 구조는 일치하는지, 다른지 그들은 숨죽이고 미간에 주름을 모으고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그야말로 집중의 초절정 상태다. 들리는 거라고는 박사의 강의 목소리와 학생들의 숨소리뿐일 것이다.
얼마나 신기할까? 분명히 흔치 않은 기회일 것이다. 실제 인간의 몸을 해부한다는 것은. 그리고 난생처음 보는 인간 몸의 안쪽은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연속이지 않을까. 어떤 이에게는 기절초풍할 일일 수도 있겠으나 이렇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수조 개의 세포가 맡은 역할을 하며 돌아가는 ‘속살’을 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breathtaking, 그 자체일 것이다. 나도 음, 청심환을 한 알 먹고 한 번 보고 싶은 호기심은 있다.
렘브란트는 여기서도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시체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콘트라스트. 시체에 떨어진 밝은 빛과 그 시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밝은 빛이 깃들어 있다. 눈을 크게 뜨고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제자들의 결의가 느껴지는 듯하다. 뭔가를 알고 싶다는 것, 호기심, 이런 것이야 말로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게 추동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그림이 좋다.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가 좋다. 나 역시 400년을 훌쩍 뛰어넘어 그들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튈프 박사의 강의를 듣고 싶다. 그들과 함께 나의 지적 호기심도 같이 꽉 채우고 싶다. (도대체 온몸이 왜 이렇게 아픈지 알고 싶단 말이다!)
이 그림은 외과의사 조합의 공개 해부학 강의였다고 한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조합이 발달한 네덜란드에서 있음 직한 일이다. 이러한 조합이 근대의 기초가 되었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여러 가지 인습을 타파하고 부조리한 관습을 철폐하는 토대가 되었겠지. 밝은 빛이 떨어지는 그곳, 진리의 빛이 가리키는 그곳, 더운 여름 자칫 모든 것을 팽개치고 싶은 날에 기분 좋은 tension을 선사하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