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 방 있는 여자라고

뎀프시와 피르포 - 조지 벨로스, 1924년

by 루시

예전에는 권투의 인기가 대단했다. 어쩌면 그것은 국가의 경제 성장과 가느다란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야구나 골프처럼 별도의 장비가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몸을 잘 단련하면 '누구라도'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는 희망이 존재하는 한, 권투라는 스포츠는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권투 중계도 많이 해줬고 그럴 때마다 ‘나도 한 때는 권투 선수가 꿈이었다.’는 아버지의 말을 들었다. 어린 나의 눈에도 아버지는 항상 마른 체형으로 플라이급이나 슈퍼 플라이급에서 순위를 다툴 수 있는 정도였는데 평소에는 조용하고 말수도 없던 아버지가 권투에 열중하며 아쉽게 '쯧' 혀를 차는 소리를 듣는 것은 또 그것 나름대로 묘한 경험이었다.

다양한 체급의 세계 챔피언이 우리나라 선수였던 적도 있고 홍수완 선수의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말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올림픽에서도 상당히 선전을 했던 것으로 알지만 이제는 더 이상 우리나라가 잘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가끔 운동을 위해서 복싱을 한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대부분의 스포츠를 좋아하는 나지만 권투의 매력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단순한 룰이지만 고도의 두뇌 싸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 걸린 시간이 길었다고 보면 된다. 3분이라는 긴 시간(이게 다른 일을 하기에는 짧은 시간인데 운동의 3분은 엄청나게 길다……), 별도의 보호 장구 없이 맨 주먹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상대의 펀치는 절묘하게 피해야 하는 몸놀림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잽만 날리다가 한방에 훅 가는 수도 있다. 도박사들이 열광하는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세기의 대결은 쇼의 여흥과 스포츠의 짜릿함이 뒤범벅이 되어 그야말로 권투는 올림픽이 아니라 어른들의 놀이동산인 라스베가스에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다가 알리의 경기를 봤는데 그 스탭의 가벼움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저 거구에 저런 스탭이? 믿을 수 없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그의 말이 바로 허세가 아니었음을 확인시켜주는 화면이었다. 세기의 대결이 열리기 전이면 두 선수가 공개석상에서 몸무게를 재고(체급이 있는 스포츠니까) 기자들 앞에서 상대를 자극하는 언사를 늘어놓고 신경전으로 팽팽해진 얼굴로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는 듯한 포즈를 취한다. 사진 기자들의 플래시로 미디어 데이는 연극 무대를 방불케 한다. 이런 쇼적인 부분이 나는 진정 좋다. 아, 라스베가스에 가고 싶군요……

알리의 준수한 얼굴과 조각 같은 몸, 화려한 언변을 보면서 그가 그 시대를 풍미했음을 절감했다. 물론 말년에는 파킨슨병으로 고통을 받았으나 전성기의 그를 보고 있으면 노년의 그가 이런 병마에 시달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탄탄한 근육, 잘 단련된 신체가 주는 경쾌함, 상대의 수를 읽고 그에 따라 전략적으로 날리는 펀치와 움직임. 진정 스포츠는 예술이다.

특히 나는 허리가 약해지고 나서 ‘근육’에 대한 열망이 상당히 높아졌다. 그리스 조각과 같은 근육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두툼한 근육을 얻기 위해서 나름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주변인들이, 혹은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결국 근육은 ‘식이’로 완성된다는 말을 할 때마다 절망감이 일긴 하지만 스스로 ‘조각가’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조각을 하긴 하는 거야?”

언젠가 조각가의 마음으로 운동을 한다고 했더니 지인이 비웃음을 날렸다. 아, 그러게 말입니다. 이게 마음만 피디아스예요…… 헤헤. 무안을 농담으로 버무리긴 했으나 역시, 식이가 병행되지 않으니 선수들과 같은 근육은 상당히 소원한 일인 모양이다. 닭을 안 먹으니 닭가슴살을 대체할 음식도 없다. 삶은 달걀과 최대한 육식을 먹어본다! 정도의 태도로는 그리스 조각은커녕 알통 하나 만들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트라이셉스 익스텐션을 하면서 근사한 팔근육을 생각해본다.

물론 나의 포커스는 팔보다는 허리 근육, 그러니까 코어에 더 관심이 있기는 하다. 작년에 2번이나 염좌로 고생했기 때문이다. 누워있어도 자세에 따라서는 아프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눈물 나게 힘들다. 30분 이상 앉아있기도 힘들다. 그래서 결국 힘들게 시작한 골프도 바로 접었다. 단톡방에서 모두 나와버렸다. 골프가 좋기는 하지만 아픔을 참으면서까지 할 수는 없다. 나에게는 직립 보행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번에 요추 염좌로 고생하면서 결심한 것이 있다면 보다 코어 근육 단련에 힘을 쏟아야겠다는 것이었다. 팔근육과 코어의 비중을 5:5로 했다면 이제는 코어의 비중을 더 높일 생각이다. 그리고 몸이 좀 괜찮아지면 필라테스를 시작할 생각이다. 필라테스를 한 사람 치고 불만족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칭송해 마지않는 그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끊었던 요가도 다시 한번 해봐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직 정작 운동은 끊지 않았다는 것은 안 비밀.

스포츠를 보는 즐거움에는 극본 없는 드라마가 주는 의외성과 짜릿함도 있지만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육체의 아름다움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수영이나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출발 선상에 섰을 때의 tension으로 날 선 근육을 보는 것은, 그 어떤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보다 나에게 더한 감동을 준다. 잘 단련되었다는 것, 수많은 시간을 투자한 노력의 결실이라는 것, 그 묵직함과 단단함이 주는 인상은 상당히 아름답다. 미술 작품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다.

조지벨로스-덤시와 피르포,동아닷컴.jpg [from 동아닷컴]

그래서 조지 벨로스의 뎀프시와 피르포를 봤을 때 홀딱 반해버렸다. 유화로 그려진 이 그림은 160.6x129.5cm 인 상당한 대작이다. 휘트니미술관에 있다는데 내가 갔을 때는 아쉽게도 이 그림은 전시 중이 아니었다. 우수에 젖은 얼굴의 보라색 팬츠 피르포가 뎀프시를 링 밖으로 KO 시키는 장면의 드라마가 담겨 있다. 마치 거인처럼 흔들리지 않는 코어 근육을 가진 피르포가 무덤덤하게 뎀프시를 한방 먹였고 그 강력한 임팩트로 뎀프시는 링 안도 아닌 링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오 마이 갓, 이라는 탄성이 곳곳에서 들리는 것 같다. 손을 들고 흥분하는 사람은 뎀프시에게 돈을 건 도박사들일지도 모르겠다. 주식시장에서 내가 가진 종목이 폭락할 때 올라오는 댓글들을 보면 이 정도는 아마 양반이겠지요? 링 밖으로 밀려난 뎀프시가 바닥에 떨어질 새라 손으로 그의 등을 받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마이너스 투자자의 안타까운 심정이 묻어난다.(는 건 역시 제가 감정이입을 한 결과입니다.)

놀라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이 경기는 뭔가 의외의 결과였나 싶었는데 결국 경기는 뎀프시가 이겼다고 하네요. 한번 KO를 당하고 나서 뎀프시가 이를 악물었나 보군요. 피르포의 표정이 흥미롭다. ‘짜식, 거들먹거리더니 이 정도였냐?’이런 느낌과 허무감이 동시에 그의 얼굴에 묻어나는 것 같다. 입매가 시옷자로 늘어진 것 같지 않나요? ‘내 주먹맛을 보니 어떠냐, 아직도 거들먹거릴 것이 남았냐? 난 이런 사람이야. 이 정도의 임팩트를 가진 사람. 알아서 기어. 어디서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놈이 깝죽거리고 난리야.’ 이런 생각이 찰나에 피르포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승리의 기쁨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이 한 방에 그는 모든 것을 날려 보낸 후인지도 모른다. 얼마나 속은 시원했을까.

약한 허리에 회사에는 핵펀치를 날리고 싶은 인간과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 나도 어서 맷집을 키워서 한 방을 속시원히 날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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