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산책을 한다는 것
직장에 다니면 기본적으로 업무에는 열심히 임해야 하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틈틈이 휴식을 가지지 않으면 금방 지쳐버린다. 직장에서 공식적으로 휴식을 가질 수 있는 점심 시간, 점심을 먹고 나서 바로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산책하러 근처 공원을 향한다. 카페를 가거나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등 점심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날씨가 추운데도 으슬으슬 떨면서 공원을 한바퀴 산책하는 이유는 산책이 주는 유익함과 재미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원에 도착했더니, 전날에 온 눈이 아직 녹지 않아 공원 이곳 저곳에 눈이 쌓여있다. 새들은 떼를 지어 하늘을 날고 있고,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떨어지다 만 낙엽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공원을 걸으며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아 깨끗한 눈밭에 가장 먼저 발자국을 남겨본다. 그리고 쌓여있는 눈의 뽀득뽀득한 소리와 감촉을 느껴본다. 이 순간만큼은 느긋해서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직장인을 기준으로 하면 햇빛을 볼 수 있는 때는 그나마 해가 긴 여름은 출퇴근 시간이고, 겨울에는 거의 없다. 짧게라도 햇빛을 보기 위해서 직장에서는 주로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을 활용한다. 다행히 점심시간이 1시간 30분인 회사를 다니고 있어 점심을 먹고 나서도 시간이 여유롭다. 그러니 밖에 나가 산책을 하면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산책하는 동안 햇빛을 쬐고, 몸에 신선한 공기를 쐬어주면 오후 업무도 잘 해낼 수 있다. 거기다가 햇빛을 쬐면 몸에서는 비타민D가 합성된다고 한다. 산책을 하지 않고 비타민D를 보충하기 위해 영양제를 따로 챙겨먹는 것과 비교했을 때,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매일같이 산책을 하는 습관은 이미 고등학교 때 가졌던 적이 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는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에 친구들끼리 운동장을 도는 유행이 있었다.(‘회전초밥’이라고 불린 이 단순한 산책은, 나중에 알고보니 전국의 모든 여고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점심시간의 운동장은 쉬는 시간 매점 다음으로 사람이 붐비는 장소였다. 운동장을 돌면서 바깥 공기도 맡고, 수다도 떠는 이 시간은 끝없는 공부와 야간 자율 학습으로 스트레스가 심한 고3 수험기간의 버팀목이 되었다. 실제로 그 시기에 학교에서 학생들의 멘탈 관리 차원에서 진행했던 행복지수 검사에서 100점 만점에 85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장시간 통학을 하느라 산책을 하는 습관은 잠시 내려놓았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다시 산책 습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시 산책을 시작한 것은 환경적인 요인이 컸다. 직장에 처음 출근했을 때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카페에 앉을 수 없던 시기여서,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에 회사 주변을 산책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8시간 동안의 노동 틈에서 얻은 느긋함을 두고두고 누려야겠다는 생각에, 시간이 모자란 게 아니라면 점심을 먹고 나서는 어김없이 산책을 한다.
주말에 쉴 때도 산책은 좋은 휴식 방법이다. 물론 황금같은 주말에 어느 정도 나갈 준비를 해야하는 수고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귀찮은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성격 탓에 주말에 나갈 때마다 고민을 하지만 시장을 간다거나 다른 명분이 있다면 나가는 김에 산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귀찮음을 이겨내고 밖에 나가는 데 성공했다면 산책로나 공원처럼 자연과 가까운 장소로 이동한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산이나 바다도 좋다. 어쨌든 산책할 장소에 도착을 하면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맑은 날이든 흐린 날이든 하늘과 구름의 조화를 살피고 주변 풍경이 주는 분위기를 만끽한다. 중요한 것은 산책을 하면서 일과 관련된 생각이나 잡념은 최대한 비우는 것이다.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면 산책을 하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나를 괴롭히는 여러가지 것들을 벗어나 오로지 지금의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산책을 하면서 주변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면 풍경의 조화로움, 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면, 그래도 내가 이 세상에서 잘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에 또 감사하다. 이 감사가 누군가에게는 아주 소박한 감사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산책을 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