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 속에서 마주한 익숙함
아직 대학교를 다니고 있던 어느 날, 유독 바다가 가고 싶었다. 고학년이라 학교 수업이 적고 할 일도 얼마 없었지만, 되돌아보면 그 때의 나는 알게 모르게 지쳐있었다.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전환이 될 만한 사건을 필요했다. 그 때 문득 생각난 것이 바다였다. 파란 하늘에 어울리는 푸른 바다. 철썩철썩 치는 파도의 움직임과 소리. 그 위를 자유롭게 나는 갈매기. 반짝이는 모래사장.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와닿아, 이 곳에 가면 새로운 일들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만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가면 좋아하실 것 같아 바로 바다에 가자고 이야기했고, 며칠 뒤 우리는 집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한 해수욕장으로 떠났다.
도착해보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바다에 왔으니 모래사장을 한 번 돌아볼까. 바다는 다행히도 내가 생각해준 모습 그대로 있었다. 가을 치고는 쌀쌀했지만 말이다. 문득 나에게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오늘이 추억으로 남았으면 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먼저 할머니가 내가 나온 사진을 찍어주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였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나 카메라 쪽이 아니라 다른 쪽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한 번만 봐달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그 때 뿐이고, 조금씩 시선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보고 한 마디를 남겼다.
"부끄러워서 그래. 참나, 뭐가 부끄러운지 모르겠다니까."
하긴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손을 잡으려고 하면 기겁을 하면서 피하셨지만, 언젠가 할머니가 '오늘은 너랑 같이 자고 싶다'고 내 방으로 왔을 때 할머니가 한밤중에 사라진 줄 알고 온 집안을 헤집으면서 찾으셨다지. 할머니가 제기한 '할아버지의 부끄러움' 설에 나는 동의의 웃음을 보냈다.
어느덧 출출해진 12시, 이왕 바다에 왔으니 점심은 조개구이다. 물론 조개구이를 먹은 다음에는 바지락칼국수도 먹어줘야 한다. 이 곳 해수욕장에 올 때마다 가는 조개구이집으로 곧장 향했다. 가는 길에 수많은 호객행위들을 뿌리치느라 애를 먹어지만 말이다. 일단 첫 주문은 늘 먹던 조개구이 중으로 하나. 잠시 바깥 구경을 하면서 기다리니 조개들이 양동이에 담아져서 나왔다. 조개들을 불판에 올려놓으면 조개가 입을 벌릴 때까지 또 다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단언컨대, 조개구이는 기다림의 음식이 틀림없다. 조개구이도 조개구이지만 나는 조개구이와 함께 사이드로 나오는 치즈 떡볶이를 사랑한다. 초장을 넣었는지 새콤한 맛을 지닌 이 치즈 떡볶이는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별미다. (이건 비밀인데, 치즈 떡볶이 소스에 조개살을 찍어먹으면 그야말로 최고다.) 다 만들어진 조개구이와 치즈 떡볶이, 그리고 후식(?)으로 바지락 칼국수까지 먹으면서, 좋아하는 음식과 좋아하는 풍경,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함께하는 이 순간이 행복이고 제대로 된 휴식이라고 느꼈다.
바지락 칼국수 말고, 진짜 후식을 위해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서 주문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는데, 한 친구의 스토리에 바다 사진이 있었다. 그래, 너도 바다에 갔구나. 그런데 풍경이 어디서 많이 보던 느낌인데? 저기 친구야, 혹시 너도 이 곳에..? 설마 하는 마음에 DM을 남겼고,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신기해 하면서 잠깐 친구에게 인사하러 갔다. 그 친구는 내가 있는 카페에서 3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또 다른 친구와 점심을 먹고 있던 참이었다. 만나서 바지락 칼국수를 한 젓가락 얻어먹고 그 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라 더 오래 얘기하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어 짧게 마무리하고 헤어졌다. 어떻게 우리는 같은 날 바다에 오고 싶어 했을까. 100% 우연으로 일어난 일이라 더 신기했고, 그 친구가 더 반갑게 느껴졌다. 무언가가 통했다는 느낌도 함께.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가만히 생각했다. 바다에 가면 새로운 풍경, 새로운 일이 생겨서 좋을 줄 알았는데, 정작 내가 마음으로 편안하다 느꼈던 건 익숙한 사람, 익숙한 것들이 주는 익숙한 면모였다. 나에게 바다라는 곳은 새로운 장소지만 그렇게 상황이 바뀌어도 나와 함께하는 것들은 여전했다. 그리고 그것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새로움에서 오는 익숙함은 마음에 행복을 가져다준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질 때가 온다면, 일단은 떠나자. 그리고 새로운 장소에서 나만이 추구할 수 있는 익숙한 것들을 만들자. 그것이 아직 어렵다면, 익숙한 사람과 함께 떠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우리만의 익숙함을 찾아나서자.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종종 그때의 설렘을 떠올리자. 일단 나는 앞으로도 바다로 떠날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익숙함,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그 날 바다에서 돌아오기 직전에 양껏 샀던 왕새우튀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