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
비판과 비난이 난무하는 시대에, 믿거나 말거나, 나도 예전엔 독설을 뿜어내는 무서운 언니였다. 회사를 다닐 때 친한 동생들도 많았지만 유독 나를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나는 무서운 언니였다.
최근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과거 속 내 모습 '무서운 언니'를 믿으려나? 은연중에 풍겨지는 느낌으로 경계심을 가졌던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 같다. 내가 한참 '무서운 언니'로 활약할 당시에 나의 주특기는 상사든 동료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살고 있지만, 그 당시의 나를 보면 스스로를 당당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근데 그때의 내가 당당한 것이었는지 이기적이었는지는 잘 모를 일이다.
다행히 요즘은 인고의 세월을 거쳐 특정 상황에서 느낀 것을 바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측면이 더 강하다. 다른 사람이 한 일이나 상황에 대해 비판하거나 비난하려고 하지 않고 한 템포 쉬며 상대를 이해하려고 한다. 과거 속 내 지인들은 모두 놀랍겝지만 어쩔 땐 나도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살기 위해 가장 집중이 되는 훈련은 상대의 결점이 보일 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편이 벗어놓은 뒤집어진 양말이나 시어머님이 오셨다 가시면 주방 그릇들의 위치가 바뀌는 등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타인이 살아가는 모든 삶의 방식들을 대할 때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맘속으로 외친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 습관을 오랫동안 수행하듯 해오니 요즘은 정말 내 성격이나 성향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나도 모르게 내 입밖을 빠져나오는 누군가를 향한 독설들은 나의 근본적인 문제로 남아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가끔은 '그럴 수도 있지'라는 태도도 비난의 대상이 될 때가 있다. 결국, '그럴 수도 있지'가 참여의식이 결여된 무관심이나 세상에 무덤덤한 사람쯤으로 보이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 나는 비판이나 비난보다 '그럴 수도 있지'가 내 감정에 대한, 혹은 판단에 대한 옳은 선택이라는 것은 확신하고 있다.
누군가 위험한 선택을 하려고 하거나 어떤 행동을 통해서 옳지 못한 길로 가게 되는 걸 목격할 땐 나도 그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있겠지만, 사람들은 상대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를 먼저 생각해 보았을까?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학습된 도덕적 의식을 기반으로 보이는 현상을 무조건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해 보일 때가 있다.
모든 국민이 격노한 참사현장에 방문한 장관의 의전을 맡은 한 공무원이 웃었다고 해서 우리는 그를 비난할 권리가 있는가? 은연중에 나와버린 웃음은 그가 공무원으로 살아오면서 윗사람을 대하는 습관과 같은 태도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끔 슬퍼도 웃고 누군가를 위로할 때도 웃음으로 감정의 위안을 전달할 때가 많은데, 그는 윗사람을 오랫동안 모셔온 한 충실한 공무원으로서 웃음을 보인 것이 비난의 대상일 것인가?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상대의 과거 혹은 삶 전체를 통찰하듯 감쌀 수는 없는 것일까?
이제 겨우 40대 초반의 나이이긴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 오면서 느낀 건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를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유독 말이 없어서 답답한 누군가는 언젠가 한 번 말을 통해서 상처를 받았었거나 말을 하지 않아도 상황과 상대에 대한 이해함이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굳이 겉으로 감사하다고 하지 않아도 마음 깊이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상황일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그리고 유독 말이 많은 사람은 그 공간을 말로 채우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있어어 일지도 모르고 자신이 말로써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상대의 공허감을 채워줬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경우는 도덕적인 일과 돈을 연관 지어 일을 하면 사람들 험담에 오르내리기 쉬운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느냐는 둥, 도대체 얼마나 벌었냐는 둥 의미 없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가치가 돈으로 책정되는 게 중요할 수도 있고 혹은 돈 속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그 행동을 비판하거나 비난할 수 있을까.
글을 쓰다 보니 나 또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삶 자체를 평가하는 비판과 비난은 손쉽게 꺼내 들어선 안 되는 방법이다. 도덕적인 사건 자체로서의 문제, 무자비한 폭력, 범죄 등 비난받아 마땅한 것들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 또한 다른 이해적 접근이 필요할 때도 있다.
도덕적으로 큰 무리가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었다면 사람들끼리의 험담과 비판은 사라졌으면 한다. 나의 삶이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고 너의 삶이 무조건 잘못된 것도 아니니 말이다.
무서운 언니가 교화되는 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