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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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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Jan 09. 2024

같이 좀 걸으세요 엄마 아빠

 존경해 마지않는 나의 부모님. 두 분은 여태 부부싸움 한 번 하신 적이 없다. 배려할 줄 하는 온화한 성품 두 분께 어릴 적부터 참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사랑 가득한 가정으로 나를 보내주심에 문득 얼마나 감사한지.


 아버지는 '온화한' 경상도 남자다. 따뜻한 성품과는 별개로 표현이 풍부하지 않다. 표현하기 괜스레 민망하거나 좋은 말을 할 수 없다면 말씀을 아끼시곤 한다. 감사나 걱정의 표현도 말보다는 행동으로 하신다. 당신의 가진 바라던가 베푼 은혜에 대해 생색내지 않으심을 나는 동경하고 따라 하려 노력한다.

  어머니는 소녀다. 농촌에서 나고 자라며 참 순수한 내면을 가지셨다. 말씀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낯선 이와도 따뜻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능력을 가지셨다. 배우고 싶은 멋진 능력이다. 진실된 공감을 통해 깊은 속마음을 이끌어 내실 줄 아는 분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참 많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을 관찰해 보노라면 가끔 우스운 장면들이 발견된다. 그중 하나가 부모님의 산책 형태이다. 산책을 참 즐기시는 분들인데, 두 분의 하루 일정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산책하실 때도 있고 따로 산책하실 때도 있다. 따로 산책할 때야 각자 발길 닿는 대로 가면 되니 이상할 것이 없지만 함께 산책하실 때 그 우스운 장면들이 포착된다.


 생각나는 몇 가지가  있는데, 먼저는 거리를 상당히 두고 걸으신다는 거다. 몇십 년의 결혼 생활을 겪으며 이제 더 이상 손을 잡는다거나 팔짱을 끼지 않음이 자연스러운 일이란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같이 걸으러 나갔으면 '일행처럼'은 보여야 할 것 아닌가. 아버지가 당신의 페이스로 걸어가면 어머니는 굳이 따라잡거나 좀 천천히 가자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냥 그러면 그런대로 걸으신다. 일 미터 이 미터 점점 멀어지더니 몇 분이 지나자 십 미터 이상 앞뒤로 떨어져서 걷는 기이한 모습이 발견된다.

 "같이 좀 걸으세요 엄마 아빠"

 두 분은 그저 '허허' 하신다.


 두 번째로는 산책 코스이다. 공원에 같이 가서 걸을 때면 아버지는 나무 그늘이 많은 곳에서 작게 도시고 어머니는 산책로가 시원스레 펼쳐진 곳에서 크게 도신다. 인도변을 걸을 때도 어머니는 대로변에 조성된 산책로를 걷는가 하면 아버지는 아파트 단지 내로 통하는 길을 통해 같은 코스를 통과하신다. '아빠는 왜 저기로 가느냐'는 나의 질문에 어머니는 '아빠는 저 길을 좋아한다'하시고 만다.


 세 번째는 화장실에 갈 때인데, 두 분 중 한 분이 화장실에 들어가면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가버린다. 이 매정한 광경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빠, 엄마 안 기다려요?"

 "가다 보면 만난다."

 아버지가 화장실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본인의 산책을 계속하신다.


 생각나는 장면은 휴식 시간이다. 한 시간 여를 걷고 나면 벤치에 앉아서 잠시 휴식하신다. 벤치 두 개 나란히 있는 나무 그늘에서 쉬시곤 하는데, 한 벤치에 두 분이 같이 앉는 게 아니라 한 벤치에 한 명씩 각자 앉는다. 여러분이 떠올리시는 그 긴 공원 벤치가 맞다. 이 기상천외한 모습을 보고서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잘 놀라지 않는 나조차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산책을 마무리하는 귀가 시간에도 재미있는 점이 있다. 두 분이서 자동차를 타고 함께 공원에 가신 경우, 각자 걷다가도 어느 시간이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주차장으로 오신다. 두 분 모두 핸드폰을 안 가지고 계셨는데 신기하기도 하다.




 이 우스운 일련의 산책 과정을 관찰하며 오히려 색다른 인상을 받았다. '따뜻하다'는 느낌. 서로가 좋아하는 길과 속도를 알고 그러려니 하는 모습. 흩어져도 다시 만나게 됨을 아는 일종의 믿음. 상대방의 사색을 방해 않는 배려. 각자의 세계가 있더라도 그 시작과 끝을 당연스레 함께하는 동반자 의식.


 부모님의 모습이 이상적인 부부의 형태라 확언할 수 없다. 하지만 두 분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볼 때면 남에서 가족이 된다는 것에 대해 깊이 고찰할 기회를 얻게 된다.  상대방의 평안이 당신의 평안이 된다는 사실. 한 마디 않더라도 느껴지는 절대적 '나의 편'.

 아직 미숙함이라는 호수를 헤엄치는 내 곁에 사랑하는 부모님 오래간 계시기를. 소중한 사랑의 선배들께 더 많은 따뜻함을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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