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은 시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수 Feb 13. 2024

얘들아, 선생님도 졸업이야!

 비록 작년 한 해 담임을 맡지는 않았지만 며칠 전 치러진 졸업식은 내게도 각별했다. 이번에 졸업하는 아이들이 4학년이던 시절 내가 그들의 담임이기도 했기 때문이며, 이후에도 5학년과 6학년을 연달아 체육 교과 전담으로 수업했기 때문이다. 3년 간 나의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에게 그간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나 보다. 요즘 보기 드문 참 바르고 선한 아이들이었다.


 교과 전담 교사는 종업식 날 할 일이 그다지 없기 때문에 보통 행사 도우미 역할을 한다. 이번에도 졸업식 진행에 따른 동선이나 기구 및 조명 세팅, 상장 수여 보조같이 잡다한 일들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지막 졸업식이라 조금은 감성에 젖어보고도 싶었는데 생각보다 마음이 분주했다.

 그래도 졸업장을 받으러 무대에 올라오는 아이들의 모습은 새삼 예뻤다. 대장 학년이 되어 졸업하는 순간까지도 단상 위로 올라오는 일은 퍽 긴장되는가 보다. 졸업식 예행연습을 했는데도 허둥지둥, '교장선생님과 악수하고 내려가야 돼'라며 아이들에게 몇 번이나 속닥였다.


 학생과 선생님들이 정성스레 만든 졸업 영상을 재미나게 감상한 뒤에는 각자 본인의 교실로 흩어진다. 일 년 간 생활한 교실에서 부모님과 함께 졸업식을 마무리할 것이다. 주인 없어진 강당의 의자를 정리한다. 사실 의자를 펼치고 정리하는 게 행사에서 가장 고된 일이다. 그 많던 의자를 치우고 나니 현수막과 풍선들로 꾸며진 강당 무대가 되레 조용하니 휑하다. '나도 졸업이구나'하는 마음에 아쉬워진다. 만 오 년을 지나 6년째 일하다 떠나니 정말로 졸업하는 아이들만큼이나 이 학교에 다녔다. 졸업을 기념하고 싶어 아이들을 위한 현수막 앞에 서서 사진 한 장 촬영해 본다. 혼자서도 촬영해 보고 함께 뒷정리하던 다른 선생님들과도 촬영한다. 조금 민망하지만 즐겁다.

 "선생님도 졸업이네요." 

 농담도 주고받는다.



 

 정리할 것이 많다. 연중 수업하며 어지른 체육 물품들을 모두 제자리로 가져다 놓아야 한다. 여기저기로 흩어진 용구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니 고되지만 마음이 좋다. 무언갈 정리하는 일은 기분 좋은 성취감을 준다. 먼지 쌓인 곳을 닦기도 하고 필요 없어진 용품들을 버리기도 한다. 새로 산 물건들은 선반에 가지런히 진열해 놓는다. 정리가 주는 해소감에 취하다 문득 사색에 잠긴다. 진작부터 정리하는 버릇을 들였더라면 더 좋았을까. 그때마다 제자리를 찾아 주었다면 물건들을 더 소중히 다룰 수 있지 않았을까. 물건뿐 아니라 사람을 대할 때도 크고 작은 오해들 미루어두지 않고 제때에 정리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칭찬과 사과, 용서에 인색하지 말아야지.


 체육 창고 다음은 내 자리다. 2년 간 사용한 책상과 캐비닛에는 잡다한 물건들 많이 쌓여 있었다. 이젠 교직을 완전히 떠나기 때문에 챙길 것이 별로 없다. 손에 익은 교구들 대부분을 버리니 홀가분하다. 지난 흔적을 정리하는 일이 조금은 섭섭했지만 당장 더 다가온 심정은 '홀가분하다'는 것이었다. 20대의 나를 즐겁게 보내줘야지. 교사로서의 시간 아름답게 기억해야지. 혹여 남은 응어리 있다면 이 더미에 섞여 버려져 다오, 바랐다.



 "선생님은 어디로 가세요?"

 짐 정리를 하던 나를 복도에서 마주치니 이렇게 질문하는 졸업생들 몇 있다.

 "비밀. 아주 멀리 가."

 명쾌하지 않은 대답에 아이들은 '에이-'하며 실망한다.


 그날 내가 저들과 함께 졸업했다는 사실을 훗날에라도 알게 될는지. 졸업식 날 인사 나눈 한 학부모님은 아이가 나 때문에 교사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며 감사하다 하셨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은 떠날 때 까지도 어렵고 부담임을. 기왕이면 내게 영향받은 선택의 결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교사를 그만두는 기로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복잡 미묘했다.


 초등학생은 아직 어리다. 혹시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일했더라면 아이들에게 웃으며 말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졸업하는 이 친구들이나 퇴사하는 나나, 이제부터 치열하게 꿈꾸며 살아야 할 것은 분명하리라.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에 뒤지지 않도록 나는 나대로의 열정을 마음껏 펼쳐보아야지. 후회없이 도전하며 살아야지.


 기쁘게 졸업을 맞이한 모두가 새로운 시작 앞에서 용기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에게 마지막까지 못 꺼낸 말을 한 발 늦었지만 이제서라도 홀가분히 외쳐본다.


"얘들아, 선생님도 졸업이야!"


 아이들도 꼭 내 졸업을 축하해 줬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를 앞두며 마지막 회식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