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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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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Feb 26. 2024

서른 되어 본가에 눌러앉다니

7년의 독립 생활을 끝내다

 7년간 떠나 있던 본가에 돌아왔다. 정신없이 이사를 마치고 전입신고도 하니 이제야 터를 옮긴 것 실감 난다. '내 방'도 오랜만에 부활했다. 내가 예전에 사용하던 방은 아버지의 개인 방 되어 버려 다른 빈 방을 사용하기로 했다. 지금은 독립한 형이 쓰던 방이다.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와 새로운 나의 방을 가지니 감회가 새롭다. 마치 독립을 처음 했을 때처럼 미묘한 설렘이 있다.




 벽지는 빛바래 예스럽고 바닥은 노란 장판이다. 유행 지난 붙박이장 벽면을 채우고 수납장들에는 내가 모르는 물건들이 많다. 정겨움과 새로움 섞여 다가온다. 요 며칠 어머니께서는 새로 들이게 된 내 짐들을 이렇게도 배치해 보고 저렇게도 배치해 보셨다. 피곤하다며 투정하시면서도 내심 즐거워 보인다. 부모님께서 나의 본가 복귀 계획을 처음 들었을 때는 '한참을 떨어져 살다 다시 합치면 생활 리듬이 달라 힘들지 않겠냐'며 걱정을 하셨다. 지금은 작은 아들 더 커버리기 전에 같이 살게 되어 좋다며 되레 신을 내신다.


 어제는 내 방에서 저녁 독서를 하는 중 거실에서 대화하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도란도란 들렸다.

 "여보, 민수가 집으로 복귀했는데 생활비를 낫게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어머니의 장난스런 물음에 아버지는 허허 웃고 마신다.


 "아니야, 민수가 커피도 가르쳐 주고 비싼 원두도 사다 주었으니 우리가 돈을 내야겠지요?"

 엄마 목소리 다시 들린다. 아마도 방에 있는 내게 좀 전의 이야기가 들렸을 것이라 여기셨는지. 혹여나 아들 부담 가질까 목소리를 키워 다시 말씀하신다. 아버지는 아마 또 웃고 마셨던 것 같다. 거실의 작은 복작임에 행복해진다.


 

 집에 들어와 지내는 가족이 한 명 더 늘어난 김에 낡은 가구 몇 가지를 버렸다. 책상, 의자, 협탁 같은 것들을 새로 주문해야 했다. 엄마는 인터넷 쇼핑에 익숙한 젊은이 있음에 잘됐다는 듯 내게 '예쁜 거 찾아 주문 한 번 해보라'며 재촉하셨다.

 오래 사용할 것들 아니라서 저렴한 물건을 찾아 주문했다. 부모님께 구입한 물건들을 보고드렸더니 싸고 예쁜 가구들을 잘 찾았다며 칭찬해 주셨다. 돈은 천천히 주마라며 웃으며 말하셨다. 아마도 주실 생각은 없었을 거다. 그 장면 우스워 다 같이 웃었다.

 "막무가내로 눌러앉은 내가 사야지." 말하고 말았다. 엄마의 승리다.


 아빠도 아들이 내심 반가우셨던 걸까. 요즘에는 점심을 먹고 나서 산책 나갈 때마다 내 차를 타고 나가자 하신다. 내가 대구에 오니 차량 기사 생겨 좋으시다며 회장님 자리에 턱 앉으신다. 그러고 보니 여태 아버지께서 참 많이도 태워주셨다. 철이 없어서 운전이 고된 일인 줄도 몰라 '여기 가자, 저기 가자' 주문도 막무가내로 했을 거다. 매일같이 가족 세 명을 태워 다니시던 아버지의 어깨가 이제 조금은 가벼워지셨을지. 혹시 교사를 그만두리란 작은 아들의 폭탄선언으로 더 무거워 지신 건 아닐지. 마땅한 효도 많이 못하며 살았다. 이제 내가 운전이라도 대신해드려야지, 마음먹는다. 나이 조금 들고 보니 나는 아빠 성격을 많이도 닮아있었다.




 아직도 새로운 터에 적응을 못했는지 이따금 교통카드 없음을 잊고 지하철역엘 가곤 한다. 미루고 미루다 발급한 교통카드가 아마 내일쯤 집으로 도착할 것 같다. 그와 함께 이곳에의 재적응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었으면.

 이제 정말 이사를 마쳤다. 아마도 여러 의미의 이사를. 오랜만에 돌아와 포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혀 새롭게 다가온 우리 집. 첫인상이 경쾌하다. 나의 새 출발이 빚어낼 걸음들에도 경쾌함이 가득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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