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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S 오픈 플레이스 Mar 25. 2020

서바이빙 코로나 in 잉글랜드  

1) 너무 쿨한 영국 사회, 그리고 쇼퍼홀릭

영국의 일상에,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다. 아이의 학교에서는 "자주 아이들 손을 씻게한다는 등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와, 누구라도 아프면 14일간 격리하라는 메세지를 매일 그 날의 상황 업데이트와 함께 보낸다. 요즘 환절기라, 코로나감염이 아니어도 기침하는 아이들이 학교에 온다는데, 어떤 가이드라인, 혹은 대책이 있어야 하지않을까, 학교 사무실에 메일을 보내자 바로 답이 왔다. "학교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각 가정에서 상태를 판단하고 옳은 결정을 하도록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즉, 기침을 해도 각 가정에서 "이정도는 괜찮은것 같다고 판단하면 학교에 보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학교에 확진자가 있나요?" 역시 바로 답이 왔다. "아직 확진자는 없습니다. 자가격리자는 있어요. 얼마나, 왜 아픈지 알 수 없습니다." "남편이 일하는 대학에서도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다고 한다. "블라블라..긴 내용이지만 해석하자면 한 줄이야. 우리는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으니 알아서 잘하시오."


'우리 의료시스템에서 일일히 해결하기 어려운게 사실이니, 약한 증상이면 굳이 전화하지 마라'라는 담담하고 쿨한 안내를 볼 때 두렵게 들리지만, 영국 사회안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그리 충격적이 아니라 어느 정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것은 '자포자기' 라기 보다는, 사회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들어갈 수 없는 갭이 있으며, 각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물론 사회, 기업적인 차원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의 이웃을 돕기 위한 노력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9시 각 슈퍼마켓 체인은 문을 열기전 1시간 동안 의료진과 어르신들만 쇼핑할 수 있게해, 약자를 도우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지역사회에서도 모임을 만들어 주변의 어르신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대리쇼핑해주는 모임도 생겨난다. 


그렇다고, 영국 사회가 여유롭고 낙천적인 상태라는 뜻은 아니다. 영국인들은 한번도 완전히 침략당한 적 없는 섬나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한 민족 중 하나이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모드에 돌입하는데, 그 전략 중 하나는 사재기를 '시전'하는 것이다. 10년전 런던 테러때도 갑자기 사재기 붐이 불어, 테러와 통조림이 무슨 관련이 있나 당황하기도 했었는데, 이번에도, 슈퍼에 물건이 동이나기 시작했다. 그중 제일 먼저 자취를 감춘 것은 휴지. 주요 수퍼마켓의 휴지, 티슈, 키친타올 코너는 말그대로 '텅 비어있다' "도대체 다들 휴지를 가지고 뭐하는거야?" 한 친구는 불평하며, 이런 만담을 신문에서 봤다고 했다. 한 소녀와 엄마가 식탁에 마주 앉아있는데, 소녀가 묻는다. "엄마, 코로나 사태는 언제 끝나나요?" 엄마는 차갑게 대답한다. "입다물고 어서 휴지나 먹어." 테이블 위 그릇에는 휴지가 잔뜩 쌓여있다.


처음에는 웃었지만, 아마존에서 구하던 쌀 가격은 평소의  세 배가 넘어가고, 배송까지 한달이 걸린다는 메세지가 뜨니,나는 점점 불안하다. 주로 사용하던 오카도ocado라는 온라인 슈퍼마켓에 접속하자, "지금 가상의 줄에 서 있습니다.You are in the virtual queue' 라는 메세지와 함께 현재 19234명중 19234번째라는 글이 뜬다. 장 보는 페이지로 들어가는데만 2시간 넘게 걸린다고 한다.



휴지를 찾아서

곰곰히 생각했다. 만약 이런 상황이 한동안 지속된다면, 우리가 자가격리를 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 가족에게 가장 긴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안되겠어." 비장하게 남편에게 말했다. "용기를 내서 휴지를 사러 가야겠어!" 친구는 "어느 잡화점에 가면 아직 있더라구. 내가 어제 샀어" 그 말을 듣고 다음날 얼른 가보았지만, 이미 휴지는 자취를 감추고 텅텅 비어있다. 온라인 포럼에는 '어느 상점은 오전 11시에 물품을 전시하는 시간이라 그때 가면 있다' 던지, '어느 상점에 가면 줄은 길지만 아직 재고가 많다'는 정보도 올라왔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가면 항상 휴지도, 사람들도 자취를 감췄다. "아직도 못샀어요? 지금 몇개나 있어요?" 친구가 다급하게 물었다. 휴지 네 롤만을 보유한 나는 유모차를 끌고, 휴지의 흔적을 찾아 꼬리잡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도랑치고 가재를 잡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아마존 Amazon 시스템은 개별 상인들이 있는 재고를 그때 그때 올려두므로, 내게도 승산이 있다. 하루에 열번씩 숨죽여 검색하다가 어느날 10개짜리 롤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성공 체험에 용기를 얻어, 또 뭘 사두면 좋을까? 쌀은 좀처럼 사기 어렵고, 값도 비싸므로, 쌀의 대체식품을 조금 더 사두는게 좋겠지, 마음 먹었다. 쌀을 대체할 식품으로 빵, 파스타, 국수정도를 떠올리며, "토마토, 크림파스타를 번갈아서 몇끼까지 먹을 수 있어?" 큰 아이는 "나는 계속 먹을 수 있어" 했지만,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득 친정 엄마가 들려주던 어린시절 이야기에, "큰 솥에 쌀 속에 감자를 섞어서 쪄먹으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몰라" 하시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왜 이런걸 넣어 먹었어?"  "쌀이 귀하니깐. 귀한 철에는 여러 뿌리 채소와 콩 시레기 이런걸 섞어 밥을 지은 거지." 영감을 얻어, 나도 감자와 고구마, 콩으로 결정했다. 쌀을 조금 씻고, 그 안에 잡곡과 감자를 넣어 늘려먹기로 하고 의기양양해졌다. 언젠가 우리도, 이 밥그릇을 맛있고 재미있었던 추억으로 기억하게 될까?


뒤이어 찾아간 슈퍼마켓에서, 드디어 영국의 일상에 퍼져있는 '쇼크'의 실체를 만났다. 채소 칸이 거의 비어있다. 밀가루, 계란도 없다. 사람들은 분주히 빠른 템포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카트에 넣고 있다. 순간 불안감이 몰려오면서, 뭐라도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평소에 먹지 않던  자색양파 두개가 굴러다니는 것을 얼른 담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바구니에 티라미스 케이크를 여섯개 넣는 사람에게,  직원이 '한 품목당 두개 이상은 사실 수 없다'고 정중하게 안내한다. 나 역시 내가 필요한 품목을 찾아갈 때마다 텅 비어있으니, 그럼 있는거 아무거라도 살까, 생각에 빠지게 되고, 슬쩍, 저 사람은 무얼 샀나 다른 카트를 바라본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쇼핑을 하다 보니, 몇몇 사람들의 카트 안에 꽃다발이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꽃은 왜, 저걸 어디에 쓰나, 생각하며 꽃 코너에 꽃다발들이 나와있는 것을 보았다. 노랑색 연보라색 튤립도 눈부시게 가득 꽃혀있다. 이틀 전부터 휴교하고 함께 있는 두 아이들이 생각나, 나도 초록색 화분 두개를 담았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이 현상. 거기에 더해, 우리 생활에 너무 당연했던 물건을 살 수 없다는 현실. 고작 일주일을 겪었지만 소화하기 힘들었던 같다. 다른 사람처럼, 그럴수도 있지 씩씩하게 적응해가며, 스스로의 힘으로 구하고, 찾아나서야 한다고 억눌렀지만, 사실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마도 나만이 아니라, 담담한 얼굴을 한 주변의 사람들도 실은 그런 심정일 수 있겠다, 생각도 그때서야 들었다. 그러보면, 어쩌면 꽤 오래 걸어가야하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건강한 마음을 지키는 것 외에 더 사야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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