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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쌀 Dec 09. 2021

문을 열면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창문을 열어 산이 보이는 사람은 산을 노래하고 강이 보이는 사람은 강을 노래한다. 옛집에서는 강이 보여서 비가 내리는 날은 왠지 우울하였다. 절이나 교회가 보이면 매일 기도 하는 마음일까.

지금 우리 집에서는 산과 커다란 굴뚝이 보인다. 부쩍 날씨가 추워진 탓인지 굴뚝의 연기가 유독 따스하게 느껴진다.  

오늘 하루의 문을 어떻게 열었습니까.



문을 열면


박명의 찬 공기


산 봉우리를 오르는 구름


아침을 깨우는 새들


온열의 굴뚝 연기


오늘 나를 맞이할 풍경이


욕망을 숨기지 않고


다가온다.



나와 동행하는


심경이 슬픔이면 그 슬픔대로,


기쁨이면 그 기쁨대로,


아침은 흘러가고 있다


힘들다고 탄식하지 않는다.




어제와 다른 아침이 온다


닫힌문을 열어보듯,


문을 열면.






비슷한 감정의 다른 시, 수평선 이란 제목의 시이다.

제주도 서귀포에서 출생하여 제주도에서 미술을 지도하며 지낸 시인의 눈이 데리고 온 수평선이 재미있다. 그는 눈을 뜨면 돌담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 살았나 보다. 결국 바다가 수평선 하나로 남아 있는 광경이 시 속에서 굵직한 실선 하나로 펼쳐진다.

누구의 마음에나 수평선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분지에서 태어났다. 그래도 바다를 떠올리면 고요한 수평선이 먼저 떠오른다. 출렁이는 것은 고요함을 따라잡지 못하는 가보다.



수평선 ㅡ한기팔(심상등단)



서귀포에서는 어디서나


수평선이 보인다


솔동산 오르막길을 가노라면


수평선이 따라와 내 어깨를 툭 친다.


돌아보니 섭섬과 문섬


범섬과 새섬 사이


지는 해의 온기로 남아 있는


우성과 소암


광협과 성찬


그들이 두고 간 수평선과


정축년 류하 지귀로 와서 보리누름 속에서


'고을나의 딸'* 과 술래잡기 하던 미당**과


육이오 때 피난 오면서 황소 한 마리 몰고 와


알자리 동산에서 코뚜레를 풀던 중섭***과


1974년 여름


세미나에서 돌아와 밤바다에 배를 대고


'밤구름'을 낚던 목월****이


데리고 온 수평선



서귀포에서는


어디를 가나 바다는 없고


돌담 너머로 아득히


수평선만 걸린다.



*신라

** 서정주

*** 이중섭

**** 박목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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