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앞날을 내다보는 축복의 자리에 가까운 가족과 지인들을 초청하는 아름다운 글귀가 새겨진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편지.
내 나이 즈음에는 주마다 받는 청첩장이 책상에 쌓여간다. 어찌나 그렇게 결혼들을 하는지. 그동안 받아왔던 많은 청첩장들에게 나는 아낌없이 축복의 헌사를 건넸을 뿐만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둘의 미래를 위해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주곤 했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청첩장을 받게 되었을 때 참으로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아, 물론 내가 직접 받은 것은 아니었다. 건너 건너 소식도 들을 수 없게끔 멀어진 나와 전 연인의 사이에 이어져있던 것은 메신저를 통해 주고받은 선물들뿐이었다. 아직까지 사용하지 못한, 즉 뜯어보지 못한 채 사용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그 선물들 틈바구니에서 전 연인의 청첩장을 마주한 것이다.
메신저의 선물함에는 보낸 사람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이 조그맣게나마 보이게 설정이 되어 있다. 내가 준 선물에도 그런 보낸 사람의 프로필 사진으로 누군가 내 안부를 확인할 수 있겠지. 여느 때처럼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시스템상의 안내를 받고 선물함에 전 연인이 보낸 선물 쿠폰의 사용기간을 연장하러 들어갔을 때, 어린아이 검지손톱보다도 작은 그 프로필 사진 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청첩장의 글귀처럼 구도를 잡고 있는 글자들은 따분한 사무실에서 지리멸렬한 업무를 보던 내 시선을 확 잡아끌기엔 충분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호기심의 손에 이끌리고 말았다. 그간 차단해 놓았던 전 연인을 메신저 차단 목록에서 해제하고 프로필 사진을 확인했다. 그 전까지 아무 것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놓여있던 프로필 사진에는 내가 느꼈던 예감 그대로 둘 사이의 시작을 알리는 글자들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었다.
솔직히, 기분은 좋지 않았다. 기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 좋지 않다기보다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도 나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너무나도 끝이 힘들었던 우리였고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혹시라도 닮은 모습이라도 스쳐 지나가면 화들짝 놀라서 숨기 바빴던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 연인의 결혼 소식은 새삼 충격적인 것이었다(어쩌면 처음 겪어보는 일인지라 강하게 충격을 받았는지도.).
나를 이제 기억의 저 편으로 밀어 넣고 새로운 사람과의 시작을 알리는 전 연인의 소식을 확인한 후, 다시 연인을 차단목록에 넣고 보이지 않게 감춰 버렸다. 아니, 아예 친구 목록에서 지워 버렸다. 나 역시 지금 내 옆자리를 채우고 있는 연인도 있었거니와, 가끔씩 뜨는 보름달을 보며, 나와의 관계에서 얻은 상처와 눈물을 보상받을 수 있을 만큼 진심으로 전 연인이 행복하길 빌었던 것은 나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하루는 입맛이 돌지 않아서 점심을 같이 먹자는 팀원들의 제안도 거절했고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며 커피만 마시는 둥 청승을 떨다가, 급기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일찍 귀가해 버렸다.
그날 오전 발견한 전 연인의 청첩장은 이제 나에게 나름대로의 경고를 건네고 있었다. 그것은 나 역시 이제 추억의 저편을 정리하고 지금을 마주해야 된다는 현실이었으며, 또 내가 언젠가 이행하여야만 하는 의무이기도 했다. 나 또한 지금 내 옆의 연인을 만난 지도 제법 오래되었고, 함께하는 시간 역시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다(혹은 의무감?). 지금의 연인은 그 이후로도 한두 번의 연애를 더 거치고 만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을 만날 때 즈음엔 나는 그 전보다 ‘어느 정도’는 이성을 대하는 것이 익숙해져 있었고, 이는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 충분히 활용되고 있어 몇 번 정도만 만나 봐도 상대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이 관계가 진척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 탐색하기가 수월해진 상태였다.
그렇지만 전 연인의 위상은 약간 남달랐다. 전 연인은 내가 처음 인연을 맺은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이성을 대할 줄도 모르고 그저 나밖에 몰랐던 나의 철없던 20대 성장기에 물을 주고, 양분을 주고, 햇볕을 내리쬐고,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지금의 이성을 대하는 ‘나’가 만들어지는 데에 50%이상은 기여했던 그런 사람이었으며, 다시금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지(혹은 받을 수 있을지) 마음속에 큰 물음표 하나를 남겼던 사람이었다. 누구나 한번은 겪는 흔히 말하는 첫 사랑. 그래. 그렇게 상징적인 존재가 바로 전 연인이었다.
그렇기에 관계가 정리되고 나서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전 연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 옆자리의 연인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다시 전 연인과 관계 회복을 바랐던 것도 아니다. 단지 아직까지 나의 그 지나간 시간들을 정리할 여력이 없었으며, 그것을 정리한다면 지난날의 나 또한 일부는 사라진다고 느껴져 마냥 덮어두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인연이 정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방과 내 컴퓨터에는 아직도 전 연인과의 함께한 추억들이 가득했다.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담아 적어 준 편지들, 함께했던 추억을 지금도 눈앞에 펼쳐볼 수 있는 사진들, 당시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모든 집기와 비품들. 차일피일 미루고, 귀찮아서 정리하지 않는 것이라고 내 자신에게 핑계만 댔으나 ‘청첩’이라는 것이 전달해 준 엄중한 경고 덕에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마음의 준비가 아직 덜 되었단 변명은 더 이상 먹혀들지 않았다. 상상할 수 없었던, 마치 내 일부를 내버려야 한다는 것처럼 끔찍이 느껴졌던 미련과 집착과의 이별이 비로소 때가 온 것이다.
전 연인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쳤을 거란 생각에 마음은 아파왔지만, 역시나 그때나 지금이나 나보다 더 성숙한 쪽은 역시 그쪽이었다. 언제나 한 발 앞섰고, 앞에서 나를 이끌어주기도 하고 뒤에서 나를 받쳐주기도 했던 그런 사람이기에 아직도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든다.
얼마 전 무진기행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김승옥 작가의 단편집을 읽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소설 ‘서울의 달빛(0장)’의 표현을 빌린다면, 나는 이제 뜯어먹다 남겨진 고기였고 나의 전 연인은 나라는 사람을 가장 많이 물어뜯고 자국을 남긴 가장 거대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배려심 많고 잔인할 땐 잔인한 도깨비였다. 전 연인에게 나의 존재 역시 그랬을까?
아침마다 모카포트를 사용해 에스프레소를 진하게 내려 먹는 것도, 쫙 펴진 수건을 등에 덮어 귀퉁이를 잡고 아래로 내리쓸며 물기를 닦는 것도, 로션을 손가락으로 펴서 얼굴 부분부분에 바르는 것도, 여러 가지 이미지 작업 툴을 사용하는 경험을 하게 해 준 것도 모두 다 첫 사랑이자 전 연인의 모습이 나에게 남겨놓은 깊고 깊은 이빨 자국이었다.
이제 그 청첩을 마주한 것을 끝으로, 나도 과거와의 이별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 전까지 비워두지 못해 버거웠던 내 마음 속이 한결 편해지길 기도하며 전 연인의 앞날에 진심으로 축복이 가득하길 빈다.
(글을 남기는 것이 조금은 구질구질하다고 느껴지지만 역시 첫사랑은 첫사랑인가보다.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