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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Jul 08. 2022

새벽에 걸려오는 순수한 악의(惡意)


“밥이나 먹자? 어디니?”


모처럼 휴가를 내고 친구가 일하고 있는 지방에 방문했다. 그냥 콧바람이나 쐴 겸 월요일 연차를 내고 달려간 곳은 충북의 작은 도시. 겸사겸사 드라이브를 즐기기엔 딱 적당한 거리의 목적지였으며, 그 곳에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가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콘텐츠가 너무 빈약하면 안 되니까 경치도 보고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까지 계획에 넣은 당일치기 여정이었다. 친구는 지방에서 ‘내셔널 페이(?)’를 받는 나랏님이었기에 점심시간에 밥이나 먹여서 들여보낼 생각으로 목적지에 거의 다다라서 전화를 걸었다.


“나…. 어휴. 몇 시야? 깜빡 잤네.”


오전 열한 시 즈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잠에서 막 깬 듯한 몽롱한 목소리였다.


“오늘 출근 안 하셨나요? 어디야? 점심시간 맞춰서 밥이나 먹으려 했더니?” 내가 물었다.


“나 어제 숙직했어…. 한숨도 못 자고 집 와서 한 시간쯤 잤나…. 왜 깨워!” 앙칼진 목소리로 친구가 대답했다.


“밥이나 먹자. 나와.”


“갑자기? 한 30분 걸려…. 집 앞으로 와 있어. 주소 쏴 줄게.”


친구의 대답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만나기로 한 곳은 친구네 집 앞 부대찌개 집. 지방에 내려왔으니 나름 여행이라고 생각해 맛집을 갈 수도 있었지만 식도락이 여행 콘셉트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저 끼니나 때우고 가려던 참이었기에 단순하게 식당을 정했다. 친구가 나타난 것은 전화를 받은 지 30분이 채 안 된, 12시 10분 전이었다.


“왜 밤을 새 그러게.” 눌러 쓴 모자로 가리려 했으나 가려지지 않은, 피곤에 찌들어 꺼칠해 진 친구 얼굴을 보고 큭큭거리며 내가 말했다.


“말도 마라, 이놈의 숙직은 왜 이렇게 자주 돌아오는지. 어떨 때는 한 달에 두세 번도 한다니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친구와 함께 식당 테이블에 앉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다시 이야기꽃을 피워나갔다.


“아니, 그래도 숙직실에서 잠도 좀 잘 수 있잖아? 왜 안자고 날밤을 샜대?”


“어제…. 모기가 하도 많아서 못 잤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친구가 얘기했다.


“숙직하시라고 불러놨더니 감히 잠을 자! 어! 피같은 △△시 세금!” 내가 흘겨보며 물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근데 저희가 무슨 119 상황출동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무슨 일 있을 때 상시 대응할 수 있는 비상인력 같은 거거든요? 그러니 잠깐잠깐 졸든, 자든 아무 일이 없으면 문제없지 않습니까?” 친구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잠이나 자지. 이 시골에 무슨 일이 있다고 밤을 새.” 음식이 나온 후,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리며 내가 말했다.


“그러게. 근데 꼭 밤에 숙직하면 이상한 전화가 와.” 친구가 말했다.


“무슨 전환데?”


“너, 정말 사람이 순수하게 악의(惡意)를 품은 걸 느껴본 적이 있니?” 친구가 내게 물었다.


“글쎄…. 나를 보는 네놈들의 눈빛 같은 거?”


“그 정도면 애정 어린 눈빛이고…. 내가 숙직을 하면 꼭, 새벽 2시나 3시 즈음, ‘이제 숙직하는 공무원이 잠들었겠다.’ 싶을 즈음 시간에 전화를 하는 사람이 있어.” 친구가 피곤에 젖은 눈을 번뜩거리며 말했다.


“급한 일이 있대? 왜 그 시간에 전화를 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에 내가 되물었다.


“그냥. 그 시간. 그 시간대에 혹시라도 잠을 자고 있는 공무원을 깨우기 위해서 하는 전화처럼 느껴져 나는.”


“내용이 뭔데? 전화해서 뭔가 하는 말이 있을 거 아냐?” 넘치려는 찌개 국물에 불을 줄이며 내가 물었다.


“진짜 별 내용도 아니야. 어디 조직에 부서원이 몇 명이냐, △△시 인구가 총 몇 명이냐, △△시 연간 강수량이 얼마가 되냐. 이런 걸 새벽 3시에 물어봐. 전화로.” 친구가 접시에 라면사리를 덜며 말했다.


“그걸? 그 시간에 물어본다고?”


“그래. 그것도 아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쾌활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친구가 말했다.


“그런 전화까지 꼭 받아야 하니?”


“아니, 그런 전화인 줄 모르고 받는 거지. 조금 졸다가 그 전화 받는 순간에는 진짜 뭐 심각한 건줄 알고 기겁을 해서 막 검색하고 찾아본다니까? 그러다보면 그쪽에서는 막 웃다가 그냥 뚝 끊어버려. 대답도 안 듣고.” 덜 익은 라면을 입에 가져가다 말고 친구가 열변을 토했다.


“그거 상위 기관 같은 데서 자는지 테스트 하는 거 아니야?”


“해서 뭐 하게. 내가 봤을 땐 그냥 시민인데 공무원들한테 악의를 가지고 일부러 그 시간에 그러는 것 같아. 한두 번이 아니야. 두 번 숙직하면 한 번은 꼭 그런 전화가 와. 세 시든 네 시든.” 친구가 대답했다.


“번호를 적어놔 멍청아! 그럼 걸러낼 수 있잖아?” 듣다 못한 내가 핀잔을 주었다.


“그랬다가 다른 급한 일이었으면 어쩌게? 그래서 받아야 하는 거야 숙직실 전화는.”


늦은 나이에 입사해 나랏밥을 먹은 지도 얼마 안 된 녀석이 하는 표현은 제법 공무원 간부(?) 못지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악의가 우리한테 전화 한 통으로 그나마 사그라진다면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어.” 찌개를 덜며 친구가 덧붙였다.


“만약에 그게 정말 순수한 악의였고, 남에게 뭔가 해를 가하려는 뜻이 담겨있었다면 그걸 내가 받는 전화 한 통으로 잠재울 수 있다면 나름 괜찮잖아? 조는 공무원 깨워서 풀리는 정도의 악의였으면 그냥 맘속에 품어두지 말고 언제든 그렇게 전화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방법이란 말이야. 그 악의가 점점 더 진하고 커져서 사회의 약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게.” 친구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본인의 직업관을 풀어냈다.


“역사에서는 그걸 ‘공노비’ 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너 같은 분을 보고요. 조직에 아주 푹 젖었구나.” 내가 빈정댔다.


"하여튼… 그런 전화 받고 나면 놀라서 잠이 달아나가지고 졸리지도 않아. 어제도 그렇게 날밤 샌 거야."


"그렇게 밤새면 돈은 주니? 돈 안 주지 않아?" 내가 물었다.


“주든 안 주든 어쩌겠냐. 능력이 없어서 이 짓 하는 것을…. 친구 불쌍한데 밥은 사 주고 갈 거지? 입이 깔깔해서 얼마 넘어가지도 않는다.” 친구는 그릇을 싹싹 비워가면서도 능글맞은 표정으로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을 했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아직까지도 ‘숙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어느덧 공무원이라는 본인의 직업관에 투철해진 성숙한 친구의 모습이었다. (나에게 '숙직'이라는 것은 정말 90년대에나 하던 구시대의 산물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단순히 숙직이 건물 방범 목적이라고 생각했으며, 요즘은 그 일만 전담하는 보안업체가 있으니까 '직원이 숙직을 할 일이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언론매체에서 다루는 공무원의 모습과 여론에서 질타하는 공무원의 모습, 그리고 나 또한 업무를 보며 겪었던 공무원의 모습들은 솔직히 긍정적이진 않았다. 누구네 아빠가 공무원이다, 누구 친구가 공무원이 됐다고 하면 제일 먼저 머릿속에는 ‘철밥통’ 이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떠올랐다. 그 이면에는 숨겨진 노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까운 친구가 공무원이 되며 나는 그나마 간접적으로 전해듣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약 그의 말대로 새벽에 걸려오는 그 전화가 정말 ‘순수한 악의’가 담긴 전화였다면, 그런 것들까지 상대하며 돈을 벌어야 하는 친구의 직업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러나 내 친구는 오히려 그런 단점을 본인이 가진 직업의 특수성을 통해 이해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공무원 직업의 인기가 점점 떨어져간다고 연일 언론에서 보도하고, 평생 직장은 없고 평생 직장을 다니고 싶지도 않은 요즘 같은 사회에서 내 친구같은 직업관을 가지고 본인의 직업을 대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금액이 얼마가 되었든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지불받는 프로의 길은 상당히 멀다.’ 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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