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내리는 겨울비는 밤하늘 가득 군대처럼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습니다. 비는 세차게 내려야 제맛이라고는 하지만 쌩뚱맞게 쏟아지는 겨울비이고 보면 그만 걸음을 멈추었으면 좋겠습니다.
발코니 창문을 타고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벌써 50년 전 고등학교 하굣길이 서서히 드러나 보입니다. 30분 이상을 걸어서 기차를 타고 50분, 다시 30여 분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급하게 밥을 먹고, 두 시간이 넘게 고생을 하며 학교에 도착하면 1교시도 끝나기 전에 배가 고팠습니다. 짧은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시큼한 김치 냄새를 풍겨대며 도시락을 먹었고. 또 그랬다고 선생님한테 꿀밤을 맞거나 손바닥을 맞곤 했습니다.
그날은 정말 배가 고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통학 열차는 늘 그렇듯 연착하였습니다. 기차역 플랫폼에 쌓아 놓은 고구마도 그날은 없었습니다. 비는 정말 지독하게 내리고 배는 속이 쓰릴 정도로 고팠습니다. 기차 속에서 이것저것 사 먹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주린 배를 움켜쥐고 침만 삼킬 뿐이었습니다.
기차는 제시간보다 훨씬 늦게 시골 역에 도착하였고, 빗줄기는 더욱 굵어져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퍼부었습니다. 기차역에 내렸을 때 친구들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우산을 가지고 마중을 나오셨는데 어디를 봐도 우리 어머니는 안 계셨습니다. 괜히 화가 나서 친구가 같이 받고 가자는 우산을 뿌리치고 질퍽거리는 흙길을 무작정 밟아가며 뭐 잘났다고 무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혼자서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반절쯤 왔을 때 어머니가 허겁지겁 달려오시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보자 더욱 화가 났습니다.
"아이고 야, 쪼매만 지달리지 그냥 오냐? 저녁밥 때문에 쪼매 늦었구먼"
하시면서 들고 계시던 우산을 내려놓고 곱게 들고 오신 우산을 펴 주셨습니다.
나는 정말 무정하게, 마치 원수를 대하는 것보다도 더 지독하게 어머니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어머니는 내내 뒤를 따라오시면서 우산을 받으라고 종용하셨지만, 집에까지 한마디 말도 없이 비를 맞고 왔습니다. 속으로 어머니가 야속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중・고등학교 6년 동안 한 번도 늦지 않게 밥을 지어주시고 조금만 날씨가 안 좋아도 역까지 제 가방을 들어다 주셨던 어머니를 왜 그렇게 뿌리쳤는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나중에 교사가 되어 ‘이청준’님의 단편소설 『눈길』을 가르칠 때마다 참으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어머니’는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을 때 상주인 아들이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도록 방 한 칸을 더 들이려는 어머니를 ‘나’는 매정하게 뿌리칩니다. 어머니의 속마음을 알지 못한 어리석은 자식의 마음이 그날의 나의 좁은 마음과 똑같다는 생각을 학생들에게 꼭 말해주었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집으로 들어서는 나를 할머니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맞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심한 질책을 받았습니다. 늦게 마중을 나가서 손자에게 비를 맞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 꾸중을 다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수건으로 나를 닦아주려고 했습니다. 나는 그것도 뿌리쳤습니다. 내가 잘했다는 생각이 있을 뿐 어디에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저녁상을 들고 들어오셨습니다. 한 그릇 가득 담은 제 밥과 시커멓게 긁어 담은 어머니의 밥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눈물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식구들 저녁밥을 해드리고 당신은 식사를 할 사이도 없이, 곧장 내게로 달려오신 것입니다. 온종일 몸을 던져 일하시고 온몸을 짓누르는 피로를 풀 여유도 없이 저녁밥 지어서 식구들 밥상을 들여놓고 그제야 허겁지겁 달려서 역으로 달려가셨던 것입니다.
나중에 옆집 아저씨에게 들은 말입니다. 우리 동네 어떤 어른은 우리 어머니가 바람이 났다고 생각하였답니다. 새벽마다 동네 밖에서 집으로 돌아오시는 것을 보고, 밤에 나가 그제야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큰아들 학교 가는 길에 가방이 무거울까 봐 기차역까지 들어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는 것을 알 리 없었던 동네 어른의 잘못된 판단이었던 것입니다.
그 아저씨가 아침에 학교 가는 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 주신 말입니다.
"니 어무이 생각혀서 핵교 공부 잘혀라. 부모의 은혜는 머리카락을 뽑아서 신을 삼아드려도 못 갚는 거여. 알았지?"
그런 어머니는 지금 하늘나라에 계십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염하는 순간에 나에게 보여주신 어머니는 정말 천사의 얼굴 그 자체였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이 그렇게 뽀얗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띠고 계신 줄은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같이 본 아내는 어머님의 얼굴이 이렇게 고운 것을 보면 틀림없이 천국으로 가셨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날의 비 오는 하굣길에 늘 사로잡혀 있는 나는 아내에게 내 마음을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습니다
빗줄기가 흘러내리는 창문에 느닷없이 어머니의 얼굴이 어려있습니다. 자식을 잃은 ‘정지용’ 시인이 『유리창』이라는 시에서 슬픔을 참아가며 노래한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는 말의 깊은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어머니가 안 계셔서 외롭지만, 지금 빗줄기 사이로 어머니의 얼굴을 뵐 수 있으니 황홀합니다. 어머니는 지금 그 옛날 그 비 오던 날을 아마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저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비 오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항상 조심혀. 아들이 편안하면 나는 그게 전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