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발가벗을 수 있어야 하건만.

글쓰기 70일을 지날 무렵

by 힘날세상

“내일까지 최고 33도 내외 무더위가 지속되오니 외출 및 야외 작업을 자제하여 주시고, 충분한 휴식과 폭염 안전수칙(물, 그늘, 휴식 준수 등) 안전관리에 유의 바랍니다.”

안전에 유의하라는 문자가 계속 전화기를 울린다. 문자가 오지 않아도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이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는가. 나가지 말라는 데도 나갔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도로로 나갔는데, 꼭 모닥불 옆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매일 한 편의 글을 블로그에 올리겠다고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스스로 글빚의 아가리에 머리를 통째로 밀어 넣었다. 차라리 사채에 몰리는 게 낫지, 글빚은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70일을 버텼는데 정말 ‘쎄 빠지’게 힘들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고통은 겪어봐야 한다. 더구나 나같이 글을 만들어가는 힘이 부족하고, 얼개를 짜 맞추는 솜씨가 모자란 사람은 그 강도가 훨씬 더한 것이다.

어쩌다 장미숙 작가의 수필집 『고추밭 연가』를 읽었다. 『고추밭 연가』에 실려 있는 ‘고추밭 연가’의 첫 줄을 읽는 순간 삽시간에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머니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친정엄마에 대한 애틋한 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수필인데 짧은 글이지만 작가님이 살아온 삶의 뼈대를 다 들여다볼 수 있었다. 글을 읽는 동안 ‘그래, 그래’, ‘우리 어머니 이야기로군’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감동에 눈시울을 적셨다.

‘맞아,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냐.’

장미숙 작가의 글은 풋풋하게 살아 있었다. 책갈피에 흐르는 세상은 상당한 보편성을 탑재하고 있었으며, 지금 당장 꺼내 놓아도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에 그대로 들어맞는 이야기였다. 두 번째 작품집 『의자, 이야기를 품다』가 출간되자마자 단숨에 읽었는데 결이 다른 듯, 같은 결인 듯한 감동이 넘실거렸다.

나는 ‘장미숙’이라는 사람에 대해 상당 부분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장미숙 작가와 일면식도 없다. 오직 그의 책 두 권을 읽었을 뿐이다. 장미숙 작가는 책을 쓰면서 자신을 온새미로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독자들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아야 독자들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영혼을 담은 진솔한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은 선한 영향력을 풍겨내는 훌륭한 작가이다.

글을 쓰려면 발가벗을 수 있는 용가가 필요하다. 나를 제대로 드러내야 한다. 솔직히 그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발가벗고 나서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70일을 매일 글을 썼다. 그러나 정말 내 영혼이 담길만한 글은 단 한 편도 없다. 그냥 자판을 두드려 길이만 채웠을 뿐이다. 당연히 글은 살아 있지 못했다. 햇볕에 내팽개쳐진 뿌리 뽑힌 잡초처럼 시들어 빠져 있었다. 나는 염치없게도 들숨날숨의 목줄을 옭아 쥐고 있는 폭염을 핑계로 삼았다.


“다 더위 때문이야. 숨쉬기도 힘든 이 더위에 매일 글을 쓸 수 있다고?”

내가 생각해도 추하다. 어떻게 그런 핑계를 댈 수가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겨울을 비유하여 ‘동장군(冬將軍)’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름은 ‘염제(炎帝)’라고 부른다. 더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더위는 사람의 기운을 뺏는 것으로 약탈을 시작한다. 입맛을 지우고, 졸음을 가득 쌓아 놓는다. 호흡이 힘들어질 때까지 목을 졸라 온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죽음의 세상으로 서서히 빠져든다.

그렇다고 글을 못쓰겠다고? 이런 말은 소도 웃어넘긴다. 내가 며칠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한 것은 더위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지 못했기 때문이다. 발가벗지 못하니 감추어야 할 것들이 많았고, 그 많은 것들은 글로 환생하지 못했다.

장미숙 작가의 글을 보면 정말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사소한 내용이다. 그러나 그 사소한 내용에 생명을 불어넣어 뭇사람들에게 맛깔나게 내놓는다. 그게 작가의 힘이다. 작가의 능력이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면 캔버스 위에 붓을 그냥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훌륭한 작품을 그려낸다. 그러나 그 붓끝에는 화가의 피와 눈물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이다. 장미숙 작가도 그랬을 것이다. 그의 수필에는 글자 한 자 한 자마다, 행간 사이마다 그의 부끄러운 삶과, 그 삶에서 캐낸 진주들이 한가득 담겨 있는 것이다. 한 줄의 글을 내놓기 위해 그는 밤을 밝혔을 것이고, 그만큼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나는 단 한 번이나 그래 봤는가. 창작을 위한 고뇌 속으로 내 몸을 던져봤는가. 아니다. 나는 늘 편안함을 찾았고, 자극적인 시간만 챙겨 왔었다. 그리고는 더위를 핑계로 내세웠다. 그러니 글이 써지기는 개뿔!

다시 몸부림쳐야겠다. 폭염 경보가 내려도 가차 없이 나를 드러내어야겠다. 그렇게라도 글 쓰는 흉내라도 낼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