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12월 앞에서

by 힘날세상

바람이 분다. 그 뒤를 말간 햇볕이 따른다. 바람이 앞서가는 까닭에 햇볕은 나뭇가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따뜻해진 시간이 창가에 매어 달린다. 창을 통해 나는 물리적으로 따뜻한 시간을 보듬는다. 평안하다.


어딘가에는 지금 내가 받아 들고 있는 것과 같은 또 하나의 따뜻한 시간이 흐르고 있을까? 그렇겠지. 말할 수도 없을 만큼의 거대한 분량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덥혀주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안다. 정말 잠시 후에는 이 따뜻함도 다 식어버린다는 것을. 어둠이 내리기도 전에 햇볕은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퇴직을 하고나서는 연초부터 계획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까닭에 황혼의 붉은빛이 물들고 있는 12월이 되어도 무엇을 돌아다볼 게 없다. 은퇴하고 나서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고 되는 대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한 달을 보냈고, 한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안했다.


꽃이 피는 봄날에는 걸음에 닿는 대로 꽃밭을 돌아다녔고, 밤이면 노트북을 열어 글을 썼다. 100일 동안을 작정하고 매일 한 편씩,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중간에 되돌아 퇴고를 하지 않고,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A4 용지 2~3쪽의 글을 썼다. 봄은 글빚에 몰린 채로 흘러갔다.



45일 동안 매일 한 편씩 글을 쓰고 있다. 밤을 밝히기만 하면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잘못이다. 매일매일 마음이 아팠다. 어깨를 짓누르는 글빚은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이었다. 글은 무너지고 있었다. 주제를 제대로 내세우지도 못했고, 구성 또한 엉성한 글을 썼다.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는데 의의가 있다는 알량한 변명으로 한 달 보름을 버텨왔다. 머리나 가슴이 아닌 엉덩이로 쓴다는 생각으로 날을 이어보았다.


글은 쉽게 써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온몸을 뒤틀어오는 고통과 견딜 수 없는 가슴 저림을 이겨내지 못하면 글의 매듭을 짓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에 품은 소재를 궁굴리고 다져가며 충분히 익히지 못하면 그야말로 헛발질만 일삼는 것이다.


한 달 보름 동안 무너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버텨왔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주제와 글의 방향을 좀 더 분명히 하고 자판을 두드려야겠다. 걷는 걸음의 방향을 정해 놓아야 흐트러진 걸음을 걷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한 편의 글을 끌어내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다.


알고 있다. 글을 쓰려면 내 마음을 제대로 뒤집어 보여야 한다는 것 말이다. 발가벗지 못하면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알면서도 나는 몸을 가려왔다. 마음을 열지 못하는 까닭이다. 벗어야 한다. 한 오라기의 실조차 남김없이 홀라당 벗어야 한다.

45 다시 글빚(2023.06.04)에서


봄을 지나면서 극심한 가슴앓이를 했다. 45일 동안 글을 써놓고, 나의 글쓰기를 돌아보며 쓴 글이다. 만약에 이때 나의 글쓰기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쓰고 있는 글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나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자판만 두드리고 있는 나를 보았다. 깨달음이었다.


운동장 끝까지 직선을 그어야 할 때 목표지점인 운동장 끝을 바라보면 절대 직선을 그을 수 없다. 운동장 끝까지 마음으로 직선을 그은 다음 그 직선을 아주 촘촘히 나누어 짧은 거리에 목표지점을 정해 놓는다. 그리고 그 아주 짧은 거리를 직선으로 잇고, 돌아보고, 다시 짧은 직선을 긋고, 돌아보고, 그렇게 짧은 직선을 이어 운동장 끝까지 가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직선이 아니라 직선을 닮은 듯한 곡선을 그었다. 봄은 내가 불러일으킨 글쓰기의 마음을 마구 흔들며 지나갔다.


정말 따갑게 내려 쪼이는 햇볕을 안고 숨을 헐떡이며 여름날의 더위를 견뎌냈다. 더우면 에어컨을 켜놓았고, 해거름 녘에는 뒷산에서 불어닥치는 시원한 바람을 창문을 열어 놓고 받아들였다. 여름이 쿵쾅거리며 짓밟고 다니던 8월이 시작되었을 때 100편의 글을 모두 썼다. 정확하게 말하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일어서지 않고, 자판을 두드리며 수정을 하지 않고 글을 완성해 보는 일을 했다.

블랙야크에서 100 명산을 오르는 일정에 따라 100 명산을 완등했을 때 성취감보다는 허전함에 빠진 적이 있었다. 목표가 사라져 버렸을 때 몰아닥친 그 허전하고 허전했던 마음은 방향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로 인해 한동안 산행을 못했었다.


매일 1편씩 100편을 다 썼을 때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노트북을 열지 못했다. 페인까지는 아니었어도 제대로 걸음을 걸을 수 없는, 그야말로 '번아웃'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비틀거리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입성했다.


가을이 하늘에 파란 색칠을 시작하던 때 뻔질나게 뒷산을 걸었다. 그 낮고 낮은 산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았다. 볼품없이 낮은 산이었지만 바라보는 곳마다 스캔이 되어오는 사물과, 현상은 마음을 두드려 일깨웠고, 상념의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벤치에 앉아 소소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벌레 한 마리가 나뭇잎을 갉아먹는 것을 보았다. 입을 놀릴 때마다 정확한 크기의 이빨 자국이 생겨났다. 그렇게 반복되는 행위는 그의 삶이었다. 멈출 수 없는.


글을 쓰는 일은 그렇게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가을은 자판을 두드리는 나에게는 제법 혹독했다. 단풍이 붉게 물든다는 사실을 작년, 또는 그 이전의 가을을 보아두지 않았다면 까마득히 모를 만큼 나는 갇혀 있었다. 손주들을 위한 동화를 쓰려고 했다. 발버둥으로 끝났지만, 동화는 어린이의 마음을 갖지 못하면 단 한 줄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쯤 어린이의 시선과 마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손주들이 자신들의 행동으로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어느 날 손주들과 영화를 보다가 어린이의 시선과 마음을 언뜻 깨달았다. 그리고 그 시선과 마음을 지켜내려고 안달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추위가 도둑처럼 스며들었을 때 겨울이 시작되는 것을 알았다. 아내가 새 달력을 가져다 놓는 것을 보고, 곧 해가 바뀔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새해에도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한다. 그냥 흐르는 세월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리라. 흐르다가 바위에 부딪치면 몸을 비틀어 큰소리도 질러보고, 물가에서 자라고 있는 갈대숲에라도 이를라치면 갈대 사이로 스며들어 조용히 앉아 있기도 해야겠다. 이루지도 못할 계획을 세워놓고 그 포충망에 갇히고는 싶지 않다.


술판을 벌이며 시시덕거리는 네 명의 늙은이들이 새해에도 겯고틀면서 껄이는, 세상 사는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 같다. 어쩌다가 써놓은 동화를 읽은 손주들이 제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머리를 맞대고 낄낄거렸으면 더할 나위가 없지 않겠는가. 서른의 후반을 아직도 홀로 지내고 있는 아들 녀석이 어느 날 누군가를 데려온다면 며칠 동안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일이 아니겠는가.


새해에도 그냥 흘러갈 것이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물결이 치는 대로 따르고 흘러갈 것이다. 도시에 살고 있어도 깊은 산골에 홀로 사는 자연인처럼. 은퇴하고 아무 연고가 없는 낯선 도시로 떠나온 그 마음이 끌리는 대로 말이다.


12월은 그냥 12월일 뿐이라고 덤덤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이런 글이나 쓰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슨 짓인가. 이별본능일까. 돌아서는 뒷모습을 아무렇지도 않은 정으로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걸까. 무계획으로, 내 멋대로 살았어도 어쨌든 내가 보낸 시간들이기에 떠나가는 한 해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던 것일까. 늙은이의 알량한 시간들이었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담겨있는 까닭일까.


다행히도 오늘은 날씨도 풀어지고 미세먼지도 사라졌다. 해가 쨍해서 좋은 날이다. 바람이 불어오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