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이 튄다는 것을 핑계로 삼았지만, 한 주일째 창문을 닫고 있는 것은, 바깥공기가 싫은 까닭이다. 방마다 커튼을 쳤다. TV를 껐다.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아니 귀를 먼저 닫고 나중에 눈을 감았을까. 하여튼 스스로 세상을 향해 등을 돌렸다.
소파에 누워서 어둠이 두꺼워지는 것을 보았고, 힘을 잃고 소리도 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철옹성 같았던 어둠의 세상은 결국 무너졌다. 끝이 없을 것 같던, 그래서 지식인들이 친일로 돌아섰던, 일제 치하도 어쨌든 무너졌다. 서슬이 퍼렇던 유신정권도 권총 한 발에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어둠은 힘을 잃는 것을 보았다. 매일 아침 눈을 떠서 보았다.
한 주일 동안 움직이는 것은 나뿐이었다. 다 죽었고, 나만 살아있었다. 그것도 즐겁게 삶의 시간을 이었다. 가만가만 숨을 들이켜고, 누구에게 들킬세라 조금씩 썰어서 내뱉었다. 물을 마시는 것 외에는 맥없이 소파에 누워 있었다. 책을 읽지 않았다. 그렇다고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리는 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누워서 어둠이 세상을 무너뜨리고, 빛이 그 무지막지한 어둠을 걷어내는 것을 보고 있었다.
어둠은 어느 순간 파고들었다. 어둠이 밀려든다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순간, 어둠은 이미 세상을 덮어버렸다. 쿵쾅쿵쾅 점령군의 군홧발로 마구마구 짓밟았다. 책상 밑이나 소파 밑까지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어느 곳 하나 어둠의 발길질을 피하지 못했다. 자신들만을 위한 세상이었다.
빛은 좁은 틈으로 밀고 들어왔다. 창문을 막아선 커튼은 절대 완벽하지 못했다. 종잇장 같은 틈새를 어쩌지 못했고, 아침은 그 가느다란 틈으로 옹송그렸던 몸을 아메바같이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집안을 해방의 물결로 채웠다. 어둠의 조각들까지 모두 끌어내 내동댕이쳤다. 어둠은 남김없이 찢기고 무너졌다.
그렇게 어둠과 밝음이 공방전을 벌이는 것을 세 번이나 지켜보았다. 배가 고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고 있었는데도 허기는 월세 고지서처럼 어김없이 밀려왔다. 그러나 밥 먹는 것이 귀찮았다. 그냥 누워 있었다. 천장이 뱅글뱅글 돌았다. 회오리바람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 즈음, 느닷없이 ‘카프카’를 만났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자신의 소설 『변신』을 내밀었다.
어느 날 아침 고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대고 누워 있었다.
『변신』은 첫 문장부터 몸이 발발 떨릴 정도로 강렬하다. 이 강렬함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지만. 끝까지 읽었을 때 화가 났다.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레고르가, 가족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던졌으면서도 가족들로부터 냉대를 받는 그레고르가, 불쌍하게 죽어버리는 그레고르가 역겨웠던 탓이다.
가족 때문에 이미 자신을 잃어버렸는데도 가족들을 위해서 살아왔던 그레고르의 실체를 보고 싶어 했던 것은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나는 없어지고 ‘정하사’로만 남아 있었던. 철조망 너머로 지뢰가 터지고 그때마다 오소리가 올가미에 걸려 꽥꽥 울던. 그 무의미한 산꼭대기. ‘정하사’라는 벌레로 변해버린지도 모르고 있던 내 옆에서 바람은 불었고, 비가 내렸다. 그렇게 나는 비무장지대에 등껍질을 대고 누워 있었다.
신대철이었다. 시인은 비무장지대 산꼭대기에 ‘무인도’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상봉(上峯)에서 상상봉’으로 훌쩍훌쩍 뛰어다녔다. ‘사람이 그립다’고 헤집고 다녔다. 그는 산에서 ‘南向’을 하고 있었고, ‘흰나비를 잡아다가 스스로 흰나비가 되’었다. 무인도에 ‘시커먼 삼각파도’가 치고, ‘막 배가 끊어’질 때, 흰나비는 흉측한 몸짓으로 ‘꿈틀거려’야 했다. 쉬지 않고 꿈틀거려야 했다. ‘까마귀’가 되지 않기 위해서 깨어있어야 했다. ‘타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까마귀가 되지 않기 위해서.
배가 고프니, 천장이 뱅뱅 돌고, 그 알량한 카프카를 생각한다. 웃긴다고 중얼거린다. 신대철의 무인도까지 소환해 놓고도 나는 소파에 그대로 누워 있다.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종이 위에 흉측한 갑충을 그린다. 등껍질을 대고 누워 있는. 얼굴을 그릴까 한참을 고민한다. 내 얼굴? 아니면 그레고리? 어쩌면 카프카를 그려야 할까? 나는 신대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흰나비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까마귀를 그려버리는 나.
나는 문득문득 커다란 한 마리의 벌레가 되어 있기도 했다. 그때마다 빛이 어둠을 걷어내고 있었다. 처음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살금살금 빛의 감시를 피해 창문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어버렸다. 눈이 부시지 않았다. 벌레가 되어 있을 때였다. 그렇지만 무서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내가 보였다. 무인도에 있었다. ‘바닷새가 떼를 풀어 흐린 하늘로 날아오르’는. ‘인간을 만나고 온 바다’가 ‘물거품을 버릴 데를 찾고 있’는. 그런 무인도에서 나는 ‘발가벗고 물 흐르는 대로 흐르고 있’었다.
그레고르는 눈을 떴다. 자기에게 유통기간이 지난 치즈를 먹여주고, 소파 밑으로 어둠을 밀어 넣어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던 여동생이 성가신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죽을 결심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생계를 책임졌던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을 넘어 가정부, 파출부, 심지어는 하숙생들도 놓아버려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말라죽었다.
어둠은 소파 밑에서 깨어났다. 나는 소파 위에 누워 있었다. 배가 고팠다. 무엇이든 먹고 싶었다. 라면을 끓였다. 두 개를 한꺼번에 끓여도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라면을 먹을 때에는 시큼한 김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 캄캄하다는 것을 알았다.
스위치를 겼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창문 너머로 달려 나가는 어둠의 저편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