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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Nov 30. 2024

12월 앞에서

가을이 돌아서는 아침 즈음에 만난 단풍 이야기


어김없이 한 해는 또 끝을 보이고 있다. 창문을 열어놓았으나 찬바람에 밀려 손바닥만 한 가을 하늘은 들어오지 못한다.


제대로 만나지도 못한 가을을 놓아줘야 할 때, 마음은 참 부산하다. 한 해를 보내는 길목에서 어떻게든 마음을 정리해야 하는데 어떡할까. 꼭 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2024년 10대 뉴스를 선정해 볼까.

실행하지 못하고 후회한 것들을 모아볼까.

잊히지 않는 사람이나 시간을 떠올려볼까.


창을 넘어 찬바람이 와락 밀려들었다. 추위가 오는 거로구나. 작년보다 올해에 더 추위를 느낀다. 해가 갈수록  추위를 느끼는 정도가 깊다. 나이 탓이다. 지금쯤 아내는 겨울 동안 입을 내복을 준비해 놓았을 거다. 어느 상표인 히트텍보다는 등산용 내복을 입는다. 근육을 잡아주는 힘이 훨씬 좋을 뿐 아니라, 보온에도 아주 효과적이라는 제품이다.


찬바람은 아직은 날카롭지는 못하다.  어느 순간 바람의 끝이 뾰족하게 날을 세우는 즈음이면 많이 움츠려들 것이다. 몸도 그렇고 마음도 바짝. 마음을 웅크려야 할 때 세상도 오그라든다. 숲을 온새미로 차지했던 나뭇잎이 제 몸을 뚝뚝 떨구고, 아침부터 요란하게 울어대던 풀벌레들이 떨어진 낙엽을 파고들어 깊숙이 몸을 숨긴다. 그렇게 숲은 텅 비어버리고, 한기를 가득 품은 겨울바람만 남아 숲을 차지할 것이다.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한 해가 돌아서는 마당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며칠 전부터 화두로 내세웠지만 좀처럼 졸가리가 잡히지 않는다. 이럴 때 좋은 방법이 멍 때리기이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던지는 것이다.

햇살이 밀려드는 거실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관리실 직원분이 낙엽을 쓸고 있다. 유난히 붉게 물든 단풍나무에 눈길을 묶는다. 역광을 가득 안은 단풍잎이 통랑하다. 햇볕이 단풍을 아름답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밀려든 생각 하나.


 '나를 드러나 보이게 한 사람도 있겠구나.'


그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자. 겨울이 왔는지 아직 가을인지 모르지만 조금은 한적한 카페에서 찻잔을 마주 놓고 앉아 감사의 인사를 하자.


그게 누구일까.


10여 년 전에 탁구를 가르쳐 준 동료 선생님일까. 깊은 산 골짜기를 걸어 산을 가르쳐 준 그 선배일까.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와 한바탕 웃음을 일으켜주는 쉰 살이 갓 넘은 제자일까.  어머니를 작스레 잃고 허탈에 빠져 있을 때 한걸음에 달여와 등을 다독여주었던 그 목사님일까. 1983년 처음으로 교단에 서던 날 "학생들은 배운 대로는 하지 않아도 본 대로는 한다"며 교사의 길을 가르쳐 주시던 퇴직을 1년 앞두고 계셨던 그 선생님일까. 초등학교 1학년때 여섯 살에 입학했어도 한글을 다 배워왔다며 동화책을 주시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선생님일까. 아니면 늘 곁에 있어서 특별한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아내일까.


학생들에게 감사일기를 쓰게 했던 일이 생각났다. 하루에 3개씩 감사할 일을 찾아 적어보면서 감사의 의미와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가짐을 그려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마지못해서 되는 대로 적었지만, 그때 한 학생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감사할 것이 한 가지도 없는데 세 가지를 찾아내려고 몸부림하는 나를 볼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그 몸부림이 단순한 몸부림이 아니라 신경림 시인이 말하던 '울음'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더 크고 가슴이 미어지도록 '울음'을 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생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대학에 들어갔고, 세무사가 되었고, 세무법인 대표가 되었다.


"선생님, 그때 감사일기를 억지로 썼는데 정말 짜증이 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학 시간에 발표수업했던 신경림 시인의 "갈대"가  생각났습니다. 갈대가 속으로 우는 울음이 갈대가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은 제 가슴에 콱 들어박혔습니다. 울지 않고는 살 수 없고, 그 울음은 바로 제 속에서 나온다는 것. 그 울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되뇌며 공부했습니다. 억지로 썼지만  감사일기를 쓰다가 움켜쥔 '울음'은 제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었습니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는 햇살과 마주 서야 선홍빛의 아름다움을 흩뿌릴 수 있다. 솟아오르는 햇볕을 비스듬히 안고 도는 나무 아래서 감사일기를 쓴다.


짧은 가을이라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서는 가을의 뒷모습을 보며 감사할 대상을 생각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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