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일기 1
그림자가 나보다 앞서 달렸다. 숨이 터질 듯이 가빴지만 그림자를 놓쳐서는 안 되었다. 그림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결국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니까.
번아웃이었을까.
오랫동안 이유도 없이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머릿속에 쌓여 있는 글감은 넘쳐나는데 노트북만 열면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나는 텅 빈 들판에 서 있는 느낌이다. 웅성거리던 글감은 모두 흔적을 감추고, 자판을 두드려야 할 손가락은 힘을 잃었다. 더 모르겠는 것은 브런치에서만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는 매일 글을 올리고 있다. 블로그에 올리는 글과 브런치에 쓰는 글은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기는 하다. 그렇다고 왜 나는 브런치에는 글을 쓸 수 없을까.
고인돌공원에는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시간을 디자인하고 있다. 모녀로 보이는 여성분들이 다정한 걸음을 나누고 있기도 하고, 삶의 주름을 안고 있는 부부들도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가 불빛으로 나오기도 한다. 강아지를 품에 안고 자박자박 걷는 사람, 100 미터 경기에 출전한 것처럼 빛의 속도로 내달리는 사람, 벤치에 앉아 전화기 화면에 빠져드는 사람, 장미정원 한가운데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사람, 나보다 더 느리게 메말라 있는 꽃길을 달리고 있는 사람. 사람들.
1999년 5월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고 왔다며 걸음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직장 선배는 화장실까지 걸어가지 못했다. 선배를 의자에 앉혀 화장실로 밀로 가면서 물었다.
ㅡ형은 이런 짓을 왜 하는 거야?
이것은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었다. 선배를 조롱하는 것이었고, 비웃는 것이었다.
ㅡ내 말이 아니라 네 몸으로 느껴봐.
형과 나는 새벽마다 중인리 들판을 달렸다. 급격하게 달리기에 빠져 들었다. 1시간을 달리고 나서 출근했고, 어둠에 덮인 시간을 내달렸다. 달리기는 황홀이었다. 넉 달 후 9월 5일, 변산에서 열린 하프마라톤에 참가하여 길바닥에서 죽었다. 그리고 마지막 고개를 넘어 결승선에서 쓰러져 죽었다. 달리기를 마라톤이라고 부르며 사흘 만에 살아났다.
공원 한 바퀴 돌았을 때 가민 인스팅트 솔라는 1.03km의 거리를 보여줬다. 8분 12초 페이스. 달리는 것이 아니라 걷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달리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반주를 하고 있는 나의 그림자와 함께 가라앉아버린 마라톤의 세포를 살리려고 애쓰는 중이다. 무기력증에 갇혀버린 내게 활력을 넣을 수 있는 것은 달리기뿐이었다. 극한의 상황으로 몸을 구겨 넣고, 그 안에서 부대끼며 내 힘으로 살아나야 한다.
마라톤은 청마 유치환이 <생명의 서>에서 노래한 '아라비아 사막'이었다. 거기에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灼熱)하고' 있었다.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이었다. 마흔네 살의 나는 날마다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호올로' 서 있었다. 늘 고통스러웠으나 잔잔한 희열이 있었다. 터질 듯한 가슴속으로 삶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이 봇물같이 밀려들었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오늘, 이 공원에서 다시 한번 쓰러져 죽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처럼 사흘 만에 아니 일주일, 한 달만에라도 다시 살아나고 싶었다. 어떻게든 마라톤의 세포가 살아나기를 바랐다. 100 미터 선수처럼 달리고 있는 사람이 바람처럼 나를 추월했다. 나는 저 사람을 따라가다가 죽어보려고 했다. 8분대로 달리던 발길에 속도를 입히자 가슴이 터졌다. 호흡을 잃었다. 앞이 노랗게 보였다. '그래 이렇게 죽는 거야.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들과 함께 쓰러져 죽는 거야.' 들숨에 달렸고, 날숨에 죽어갔다. '그 옛날 변산의 바닷가에서처럼 죽는 거야.'
춘천의 하늘을 맑았고, 의암호의 수면은 잔잔했다. 나는 주로走路에서 펄펄 날았다. 자만이었다. 소양 2교를 건너면서 숨이 멎었고, 갑작스럽게 죽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2km를 남기고 틀림없이 죽었다. 나는 죽었는데 환호성이 들렸다. 춘천의 파란 가을 하늘이 뒤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그때 춘천댐을 지나면서 빠져들었던 황홀경이 떠올랐다. 그 무아지경이 생생하게 피시쉬라인에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런너스 하이 runner's high*가 결승선에서 다시 피어날 줄이야. 세상은 무릉도원이었다. 3시간 57분 08초 동안 나는 죽어 있었고, 살아 있었다. ㅡ 1999년 10월 24일 춘천마라톤대회 참가 후기에서
고인돌 공원을 두 바퀴 돌았을 때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옛날처럼 죽을 수는 있을 것 같았으나 다시 살아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이대로 달리는 것은 119 구급대원들을 괴롭히는 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걸음을 멈추었다. 가쁜 숨을 할딱거리고 있는데 뒤따라 오던 아내가 걱정스러운 듯이 손을 잡았다. 아내 역시 풀코스 마라톤을 5번 달렸던 터라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 아는 까닭이다. 사실 지금의 나는 숨이 조금 가쁠 뿐이지 예전처럼 죽지는 않았다. 내가 죽을 만큼은 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흡은 이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거친 숨을 빼고는 어느 곳에도 문제가 없었다. 발목, 종아리, 허벅지, 그리고 무릎. 다시 천천히 달렸다. 공원의 불빛이 유난히 밝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이라면 나를 짓누르고 있는 그 원인 모를 것들과 맞잡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감까지는 아니었지만 한판 거대하게 붙어 볼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마 유치환의 말대로 오늘 고인돌 공원에서 나는' '나'와 대면'하였던 것이다. 청마의 바람처럼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겨우 2km를 달리고서 처음으로 나선 풀코스 마라톤 춘천마라톤대회에서 느꼈던 오르가즘을 기억해 냈다.
30km를 지나 약간의 오르막을 만났다. "흘린 땀과 기록은 비례한다"며 전주마라톤클럽 회원들과 한달음에 넘어 다니던 3km가 넘는 거리에 표고차 150m에 이르는 금산사 고갯길이 생각난다. 작년 5월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하였을 때 초등학교 운동장 다섯 바퀴를 돌고 나서 땅바닥에 주저앉았던 일이 떠올라 실소를 지어본다. 파랗게 펼쳐진 구이 들판의 농로를 따라 숱한 땀을 흘리며 마라톤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고, 9월 5일 처음으로 출전한 변산 하프대회는 1시간 56분 내내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빗물이 뒤범벅이 된 경기였다. 짜릿한 바다내음으로 밀려오는 빗줄기를 손바닥으로 훔치며 달리던 고독의 레이스 후반에 즐거운 표정과 여유 있는 자세로 나를 추월해 가는 50대의 한 분(현 전주마라톤클럽 최병준 회장)을 따라 뛰면서 몇 마디 건넨 것이 인연이 되어 한마음으로 맺어진 전주마라톤클럽회원들과 같이한 새벽 훈련, 10월 16명의 회원 전원이 풀코스에 도전장을 낸 춘천 마라톤 대회에서 3시간 57분의 기록으로 첫 완주를 하고 난 후 흘렸던 눈물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힘이 솟았다. 인도에서 손을 흔들어 다독여 주는 시민들과, 어린 고사리 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달려 3시간 20분에 35km를 지났다. 무릎은 이제 완전히 회복된 것 같았다. 남은 거리는 7.195km. 4시간을 넘기지 않아야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다리에 힘을 주었다. 스피드를 내보았다. 괜찮았다. 됐다. 이제 평소에 다짐하던 대로 마지막을 즐겁게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눈앞에 잠실 주 경기장이 보인다. 이제 저 문으로 들어가 트랙을 한 바퀴 돌면 결승점이다. 결승점을 먼저 밟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또 나중에 달려들어 올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달리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길을 막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몇몇 사람들은 지금쯤 마음의 평정을 가라앉혔을까? 길가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고 북을 두드리며 힘을 돋아주던 그 많은 사람들은 또 누구를 향해 자신들의 힘을 나누어 주고 있을까? 광화문에서 잠실까지 달린 이번 동아마라톤을 통해 직접 달린 사람들과, 인도에서든 TV 앞에서든 마라톤을 지켜본 많은 국민들이 한 곳으로 마음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혀줄 견인차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 3월 19일 동아마라톤 참가기 공모전 당선작 일부분
마라톤은 그대로 삶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 내면 응시와 확인이 영락없는 판박이다.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 어느 순간 컨디션이 급변하여 경기를 망칠 수도 있는 것, 혼자서 달리지만 같은 주로를 달리는 다른 주자들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 초반에 힘이 넘친다고 페이스 조절을 못하고 내치고 달리다가 후반에 경기를 완전히 망쳐버리는 것. 어쩌면 그렇게 우리 인생과 똑같은 지 모른다.
작은 공원을 달리면서 많은 것을 돌아보고 끄집어내어 반추해 봤다. 숨이 멎을 만큼 힘들어 지칠 때 정신이 확 맑아지는 것을 오늘 다시 한번 느꼈다. '아라비아 사막' 한가운데 섰을 때, 그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아래 '열렬한 고독'에 처해 있을 때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오늘 잠깐의 달리기에서.
앞으로 어떤 형태의 달리기에서도 런너스 하이 runner's high를 다시 맛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숨이 턱에 닿도록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느껴보았기에 은퇴라는 무게에 짓눌려 무기력하게 세상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마라톤의 보폭은 크지 않아야 하고, 지나치게 빨라서도 안된다는 것이고 보면, 고희를 맞은 내
삶의 궤적은 우상향의 직선은 아닐지라도 끊어지지는 않게 이어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내 안에 갈무리되어 있는 삶의 진실에 글자의 힘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35km 지점에서 만나는 '마라톤의 벽'을 넘어서야 나머지 7km를 쾌감으로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의 심적 고통을 걷어내고 살아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달리기를 따라 자판을 두드릴 수 있을까. 런너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기만 하면, 그 마음을 이어 달릴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노트북을 열 수는 있을 것 같다. 잘 쓰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진솔한 마음을 담을 수만 있다면.
런너스 하이 runner's high : 달리는 도중 또는 달리고 난 후에 느껴지는 강한 행복감, 희열, 무아지경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