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그래도 가르쳐야 합니다.

by 힘날세상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이제 막 교단에 발을 디뎠다는 제자가 전화를 했다. 도대체 자신이 제대로 된 선생인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학교 다닐 때의 성품이나 인품으로 보아 훌륭한 선생이 될 거라고 다독이고 전화를 끊었다. 퇴직을 앞두고 신임 선생님과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개학을 며칠 앞두고 바쁘다. 언제나 그렇듯이 몸이 바쁜 것보다 마음이 바쁜 것이 힘들다. 학교에 갔다. 아무렇지 않게 개학날 학생들을 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책상도 깨끗이 정리하고,

진도계획표도 작성하고, 발표 수업 방법을 가다듬기도 하고, 컴퓨터에 SSD도 설치하고, 수능특강 교재를 펴놓고 수업 구상을 하고 있었다.

- 선생님 이 책들 어떻게 해야 해요?

딸보다도 한참 어리게 보이는 젊은 여선생님 환한 얼굴로 묻는다. 아침에 교무실에서 보았던, 처음으로 교단에 선다는 그 여선생님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 지금 느낌이 어떤가요?

자신이 사용할 책상 위에 가득 쌓아있는 각종 문제집들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물음은 밀어내고 되물었다. 갑자기 83년 3월 나의 첫걸음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참 선하게 보이는 얼굴이다.


교사는 누구인가. 과연 이 시대에, 인터넷이 다 가르치는 이 시대에, 그래서 학교 무용론이 나오는 이 시대에 교사는 어떤 존재일까.


무엇인가 말을 해줘야 했다. 짧은 순간에 깊은 고민을 했다.

- 저는 일 년만 있으면 퇴직인데 선생님은 첫걸음이네요.

- 어머! 그러시군요.

이렇게 말을 나누기는 하지만 꼭 해야 할 말을 나는 찾지 못하고 있다.


교사의 자세부터 말할까? 학생들의 세계부터 말할까? 견딜 수 없는 입시 지옥부터 말해야 하나?

-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아니면 자신의 목표가 뚜렷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채용 면접 같은 질문 같아서 말을 꺼낸 나 스스로가 미웠다. 송아지 눈망울처럼 순수하게 보이는 선생님은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럴 거야. 나도 처음에 그랬으니까.

대답을 못 하고 있는 젊은 선생님의 마음을 속속들이 헤아릴 수 있었다.

- 대답하기 어렵지요?

-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요.

그녀는 시간 안에 정답을 말해야 하는 퀴즈프로그램 참가자처럼 서두르는 자세로 대답을 했다.

- 선생님은 누구도 가르칠 수 없을 거예요.

- 왜죠?

- 교실에는 그런 학생들이 별로 없거든요.


붕괴되어 버린 오늘의 교실 실상을 그대로 말해줬다. 교사를 투명인간처럼 대하는 학생들 이야기할 때쯤 그 선생님은 가느다란 신음을 뱉었다.

- 그래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선생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무슨 뜻이냐는 듯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공부하고 싶지 않아도, 꿈이 전혀 없어도, 남을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책임감이 없고 도덕심이 없어도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가르쳐야 합니다. 때로는 엄격한 교사로서, 때로는 아이들 눈높이로 몸을 낮추고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학생들은 우리의 미래이고, 우리는 그들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줄 수 있는 선생이니까요. 교권을 말하기 전에, 학생들의 인권을 말하기 전에 열심히 가르치는 것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렇다. 교단을 내려와야 하는 처지에서 내가 서 왔던 교단을 돌아다보며 내린 결론이다. 선생은 아이들이 어떻든지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

- 그런데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참 잘 가르칠 것 같았다. 아이들의 세계를 잘 넘나들며 소위 코드를 잘 맞출 수 있을 것이고, 좋은 수업을 만들어 갈 것 같이 보였다.

- 선생은 입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몸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학생들은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은 그래서 깊이가 있어야 하고 세심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젊은 선생님이 참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 될 것이 분명하며, 학생들로부터 인정받는 선생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40년 전 어설펐던 나의 모습이 생각나 부끄러워 바쁘다는 핑계를 내놓고 교무실을 나왔다.

- 성실하고 헌신적으로 가르치시라고 믿습니다. 교실이 어떻든 그래도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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