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손 흔들며 헤어질 산 몇은 곁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소풍 끝내는 날에

by 힘날세상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이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아직 싱싱하게 매달려 있는 나뭇잎들을 할퀴어대는 바람은 끝내 휘청거리며 몸을 피하고 있던 나뭇가지들을 뚝뚝 부러뜨려 흩어 놓았다. 자연의 일상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나뭇가지들이 조금은 처량해 보였다. 이렇게 부러져야 나뭇가지가 더 풍성하게 자라는 거라며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라던 글이 생각났다.


숲길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숲의 울타리에 부딪혀 잘게 잘게 쪼개졌어도 바람의 발톱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들을 한꺼번에 흩어 뿌리더니, 애먼 내 얼굴까지 후려쳤다.

그때, 느닷없이 소백산의 등성이가 떠올랐다. 한겨울에 몰아치던 그 매서운 칼바람이 생각났다. 눈이 쌓인 소백의 등허리를 걸어 면도날로 그어대는 듯한 모진 바람을 일부러 맞았다. 남의 살이 되어버린 듯 감각이 없어진 볼을 비비며 ‘지금 나는 소백의 영혼을 만났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등산화 속에서 뽀송뽀송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소백의 바람을 온새미로 받아들였다.


그리움이다. 흩어지지 않고 산꼭대기에 그대로 남아있는 산행의 시간. 골짝으로 산등성이로 퍼져나갔던 걸음의 편린들이 덩어리가 되고, 그리움이 되어 꼭대기에 오롯이 남아 있는 것이다.


산에 들어선 지 40년이 넘었다. 젊었을 때는 오직 만용으로 걸었다. 천왕봉에서, 향적봉에서, 설악의 대청봉에서 ‘산을 정복했다’고 소리치며 오만의 품새를 떨었다. 겸손하지 못한 치기稚氣였다. 산의 정령精靈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거대한 자연 앞에서 미물에 불과한 존재가 내지르는 허접한 추임새였다. 그런 마음으로 산을 걸었다. 자만自慢의 걸음이었다.


남덕유산 서봉 꼭대기에서 별빛을 어깨에 두르고 앉아 밤의 시간을 걷어 올리던 선배는 산에서 겸손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다.

“산은 우리를 받아주고 품어주는 위대한 존재야. enormous가 아니고 great야. 감히 우리들이 마주 설 수 없는. 걸음마다 겸손하고 공손하게 걸어야 하는 거야.”

선배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버리고, 나는 쏟아지는 별빛에 무너졌다. 내 발로 못 올라가는 산이 없고, 넘어서지 못하는 봉우리가 없었던 까닭에 산은 늘 정복의 대상이었다.

서북으로 뻗어 나간 지능선을 따라 계북으로 내려섰다. 커다란 나무 산길을 막고 있다. 앞서 걷던 선배는 허리를 굽히고 나무 아래로 힘들게 통과했다. 나는 선배의 행동을 비웃으며 나무를 밟고 뛰어넘었다. 그리고 발이 미끄러지며 한 바퀴 뒹굴었다. 스틱이 부러지고 무릎에 상처가 났다.

“왜 겸손하고 공손하게 걸여야 하는지 알겠지?”

선배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뒤로 언제나 공손한 마음으로 산길을 걷는다.


산은 언제나 말이 없다. 어느 때, 어느 길로 들어서든지 산은 넉넉한 품을 다 내주었다. 산길을 걸으며 어지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나무 아래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며 내가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들여다보았다. 산을 걸으며 두고 온 산 밖 세상의 이야기를 들었다.


산은 늘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눈이 쌓인 산등성이를 걸으며, 온갖 꽃이 피어나는 산길을 생각했다. 짙은 녹음으로 덮인 산자락을 바라보며, 적(赤), 황(黃), 등(橙)으로 피어나는 단품의 하모니를 그리워했다. 산행은 늘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남았다. 피아골을 걸으며 덕유평전의 바람을 잊을 수 없었고, 눈꽃 세상이 펼쳐진 선자령에서 진달래가 만발한 영취산의 산자락을 그리워했다.


산에서 보낸 세월의 깊이가 깊어갈수록 어딘가 모르게 걸음이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있다는 것은, 언젠가는 산길에서 주저앉을 수 있다는 경고가 아닐까. 산길을 걷지 못하는 그날에 어떤 모양으로 허퉁한 마음을 쓸어내고 있을까.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산봉우리들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다 어떻게 다독거릴 수 있을까. 그동안 올라 다닌 봉우리가 잊히지 않고, 내 안을 들여다보며 홀로 걷던 산등성이가 생생하게 돋아나고 있다.


어느 산길을 걸어야 할까.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산길을 한 올 한 올 풀어내며 어느 산으로 들어갈 것인가를 저울질하다가 피식 웃었다. 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니. 그때 소백의 등성이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제1연화봉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초원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한겨울 칼바람을 쏟아붓는 소백의 산등성이 미치도록 걷고 싶었다.


죽령에서 맞은 아침은 새소리가 시작점이었다.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는 기어이 눈 쌓인 겨울의 시간을, 스패츠를 파고들던 혹한의 기온을 소환해 냈다. 여름의 한 자락을 걸으면서도 나는 겨울 세상을 그리고 있었다. 연화봉 정상석을 수놓았던 그 겨울의 상고대를 마음속에서 끄집어내었다. 주목 관리소를 휘몰아쳐 들어오던 철쭉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저 앞에서 걷고 있는 아내를 생각했다. 그녀가 걷고 있는 소백의 능선은 분명 나와는 다른 산길이리라.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산길은 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늘상 마음으로 걷는다. 깊은 숲 속에서는 나를 들여다보며 걷고, 최고의 조망을 내놓는 등성이에서는 저 멀리 달아나고 있는 산줄기에 내 마음을 얹어본다. 산길을 걷는 일은 언제나 나를 재조명해 보는 걸음이다. 가장 좋은 것이 나를 잃어버리는 무아無我라고 하는데 나는 한 번도 거기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냥 산 위에서 나를 들여다보려고 시도해 보는 정도일 뿐이다.

오늘 소백을 걸었다. 편안하고 평안한 걸음이었다. 고희古稀로 다가가고 있는 걸음이기에 얼마를 더 걸어 산등성이의 시간을 이어갈 수 있을지. 좀 더 힘이 빠져나가기 전에 아직도 가슴속에 박혀 있는 몇몇 산꼭대기와는 하룻밤의 시간일지라도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고 싶다. 끈덕지게 달라붙는 그리움을 떨쳐내야 할 것만 같다. 나이가 들면 비우고 놓아야 한다고 하는데, 아직도 움켜쥐고 있는 산이 많다. 욕심은 아니고 굳이 말하라면 미련이다. 그리움이다.


다리에 힘이 풀려 어느 날 동네까지 내려온 산자락을 따라 걸어야 할 그때, 눈물 흘리며 그리워할 산이 몇은 남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소풍을 끝내는 언저리에서 들어서는 다른 세상의 길목에서 손 흔들며 헤어질 산꼭대기 몇은 곁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끝까지 그리움으로 남아야 할 산 몇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