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산다는 것은

속울음을 울고. 있다는 것

by 힘날세상

폰에 설치한 앱 중에서 ‘시요일’이라는 앱이 있다. 매일 정오 무렵이면 시 한 편을 배달해 준다. 대부분 읽어보지 못한 새로운 시들이어서 기대감으로 읽는다. 세상에 시인이 그렇게 많은가 보다. 매일매일 모르는 시인의 작품이 배달된다. 그리고 시를 읽었을 때 마음에서 은은한 일렁임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느 구석에서는 무거운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나기도 한다.


잘 읽히는 시가 좋다. 시구를 읽으면서 마음이 환해지며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는 시 말이다. 마음에 드는 시를 읽게 되면 이보다 더 좋은 시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몇 번이고 읽는다. 그러나 또 다른 시를 읽으면서 냉정히 돌아서는 사랑처럼 내팽개치기도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살짝 비켜 놓는 것이다.


평생을 두고 읽어야 할 시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신경림 시인의 『갈대』를 꼽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국어 시간에 읽었던 시이다. 정년을 앞두고 계셨던 선생님은 마음 깊이 담아두라고 하셨지만, 그때는 건성으로 읽었다. 청마 유치환 시인의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같은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시가 좋았던 시기였던 까닭이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 조용히 울고 있었다. /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 그는 몰랐다.


비무장지대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진중 문고 더미에서 『갈대』를 발견했을 때 약간의 전율을 느꼈다. 둘레 길이 196m의 철조망을 두른 산꼭대기에 갇혀 하늘만 바라보며 가슴을 찧고 있던 가을날 운명처럼 『갈대』를 읽게 되었다.


철조망 밖으로 튀어 나갈까 봐 배구공을 끈으로 묶어 놓고 배구를 하던 그 좁은 산꼭대기에 유배된 생활을 견뎌내기에는 통통 튀는 젊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문을 열어 주면서 집으로 가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비무장지대에서 늘 날카롭고 깊은 가슴 저림을 다독이고 있었다. 인내라기보다는 무기력이어야 했다.


달이라도 뜨는 날에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부엉이 울음소리를 따라 오소리까지 철조망 주변을 맴돌며 원색적인 울음을 토해내던 날 철조망을 타고 넘는 꿈을 꾸었다. 탈영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비무장지대에서 하루에 몇 백 걸음도 걷지 못하고 묶여 있는 마음을 그저 쓰다듬고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때 『갈대』를 읽었다.


울음을 우는 것이 어디 나 하나뿐일까. 밤을 새워 울어대는 부엉이인들 그 가슴패기 어디쯤 묵은 그리움 하나 담고 있지 않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멈추어 있고, 가라앉아 있는 이곳 비무장지대에서 살아 있는 어느 것인들 눈물을 떨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 그는 몰랐다.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제 속에서 솟구치는 울음바다를 아무렇지 않게 짓누를 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아픔을 매만지며 조용히 울음을 울어 삶을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나를 둘러 가두고 있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산꼭대기는 유배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한가운데였다.


나를 흔드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울어대는 그 조용한 울음이었다. 울음이 나를 묶는 올가미가 되고, 그 올가미에 묶여 가슴이 저렸다는 것을 알았다. 울음을 울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그렇게 비무장지대의 하늘을 보았다.


마흔이 넘었던 어느 날 다시 『갈대』를 읽었다. 내가 내는 울음소리에 놀라 잠을 깼던 새벽녘의 시간은 고요했었다.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울고 있었다. 어둠의 농도가 묽어져 갈 무렵, 울어야 산다는 것을 알았다. 울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물에 물탄 듯 밍밍하고 싱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를 읽고 나면 가슴은 한 자나 깊이 파였다. 아리고, 쓰리고, 미어졌다. 눈물은 꼭 흘렀다. 시인이 제 가슴을 쥐어뜯어 핏물로 써 놓은 시를 아무렇지도 않게 읽을 수는 없었다.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해 시를 읽지는 말자. 아무런 감각이 없이 그냥 활자만 바라볼 때, 시는 가슴을 후벼 파지 못한다. 시는 그대로 죽어버린다.


흔들리는 것을 느끼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던 도종환 시인은 생명 탄생의 거룩함을 말하고 있다. 모든 아름다운 꽃이 흔들리어 피는 것처럼 사랑도 흔들리며 여물어 가고, 우리도 흔들리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흔드는 것은 삶의 지대한 이야기를 튼튼하게 쓰려는 것이다. 울어야 한다. 흔들려야 산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관계가 생겨나고, 서로 꽃이 되고, 이름이 되는 것이다. 존재의 아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