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꽃

by 힘날세상

꽃은 핀다.


복수초가 눈밭을 밀쳐내고 노란 꽃을 피우는 것을 시작으로, 매화, 노루귀가 진달래를 불러낸다. 바람은 덩달아 춤추고, 얼레지, 금낭화 웃음 따라 들꽃이 핀다. 자운영이 논두렁을 다독일 무렵, 봄은 그제야 제 몸을 일으킨다.


산에, 들에 피는 꽃은 제 스스로 핀다. 겨울, 혹독한 바람에 웅크렸던 속살의 생채기를 쓰다듬어 봄을 맞는다. 그러니까 꽃은 쓰라림의 종지부이다. 제 몸을 온전히 휘지어 짓뭉개버린, 숨통을 죄어버린 아픔이 남긴 핏빛 울음이다. 그래서 꽃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난꽃을 피우려면 가혹하게 난의 목을 졸라야 한다. 갈증이 온몸을 산산이 부술 때까지 물을 주지 않고,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야 한다. 죽음을 직감한 난은 종족을 보존해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제 몸을 던져 꽃을 피운다. 우리는 그 꽃을 향해 탐욕의 웃음을 짓고. 돈을 던져 찬사를 보낸다.


꽂은 예쁘고 화려한 옷을 입는다. 벌·나비를 불러들이기 위한 살아가려는 몸부림이다. 두드러지는 색감을 휘감고, 진한 향을 풍겨낸다. 달콤한 꿀을 한가득 담아놓는다. 꽂은 냉정하게 보면 생식기관이다. 숨기고, 감추지 않고 다 드러내놓는 간절한 손짓이다.


아이들은 그 간절한 손짓에 돌을 던졌다. 그들은 한여름인데도 두꺼운 옷을 입었고, 땟물이 찌든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추한 몰골이었으며, 나약한 신체를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그러나 여자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아이들이 던지는 돌멩이를 자신의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ㅡ돌을 던지지 마.

나는 크게 소리 질렀으나 목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돌멩이에 머리를 맞은 여자는 피를 흘렸다. 그때 어떤 아이가 낄낄대며 소리쳤다.

ㅡ히히히. 머리에 꽃이 피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돌을 던졌다. 스스로 놀랐다. 내가 돌을 던졌다니.


꽃은 그렇게 피는 게 아니다. 꽃은 돌에 맞고 피를 흘리기 이전부터 피어있었던 것이다. 여자와 아이는 존재 자체가 한 떨기 꽃이었다. 담벼락에 피어있는 금낭화를 보는 순간,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한동안 무거운 돌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답답함을 떨쳐내지 못했다.


꽂은 아름답다. 그러나 도종환 시인의 말대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혹독한 추위와 무더위를 무릅써야 하고, 된서리를 맞으며 꽃은 피어난다. 그래서 꽂은 여인이다. 여린 듯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힘을 가진 여인이다.


화병에 한아름 꽃을 꽂는 일은 잔혹하다. 현상으로서 꽃을 보지 말고, 꽃의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 화병에 꽂을 꼽는 것은 식물의 목을 비트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처절한 꽃이 목련이라고 한다. 목련은 어느 순간 제 목을 꺾어 툭하고 떨어지는 까닭이다. 제 목을 단번에 꺾어 하나의 가지를 돋워내는 것은 목련의 사명 아닐까.


꽃을 꽃으로 놓아두자. 하나의 존재로서 값어치를 이어가야 하는 꽃으로 그냥.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