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30주기 추도예배를 드렸다. 예전 같으면 어머니 묘소에서 드렸을 텐데, 3월에 파묘하여 자연으로 보내드렸기에, 이번에는 동생들이 우리 집까지 와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어머니 살아생전 이야기를 하며 지난 시절을 돌아보다가, 살아계셨으면 ‘90 살이 되셨을 지금은 어떤 얼굴을 하고 계실까?’하는 생각에 울컥했다.
그날, 1993년 그 엄청난 아픔의 날. 모내기를 위해 장에 다녀오시던 어머니는 웃는 낯으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토요일이어서 한가한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막내 동생의 울음 섞인 전화를 받았다.
ㅡ 오빠, 엄마가 돌아가셨대.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차를 달려 병원으로 가는 1시간 동안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냐고 나 자신에게 화를 내었다. 병원을 들어서면서 나는 보았다. 무서움에 휩싸여 있는 나를 보았다.
어머니는 온화한 웃음을 지으면서 반듯하게 누워 계셨다. 무지막지하게 온몸을 파고 들어오는 그 아픔을 어떻게 받아내며 차디찬 길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때,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당신의 육신을 내던져 키워낸 일곱의 자식들을 그 짧은 순간에 다 보듬어보셨을까. 당신의 장롱 서랍에 고이 넣어 두었던 아버지의 지갑을 생각하셨을까. 늘 얇고 가벼운 것이 안타깝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지갑을 어머니는 그려보셨을까. 장독대를 둘러 손수 심어 놓았던, 어머니가 좋아하던 분꽃을 가득 품어 보셨을까. 비가 그치고 처마를 따라 떨어지던 낙숫물을 바라보던 그 한가로운 시간을 되돌려 느껴 보셨을까.
동생들과 둘러앉아 빌립보서 2장 15절을 읽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어머니가 우리를 생각하면서 늘 하신 말씀이었다. 말씀을 읽으면서 가슴속에 잔잔히 솟아오르는 어머니의 입김이 느껴졌다.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살기를 바라셨던 어머니는 그렇게 서둘러 하늘나라 천국으로 가셨을까. 떨어지지 않는 그 발걸음을 도대체 어떻게 옮기셨을까. 아픈 마음을 움켜쥐고 찬송가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를 불러드렸다. 온몸을 죄어오는 암세포를 움켜쥐고 기도하시던 아버지를 위해 3년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부르셨던 찬송이었다. “힘이 없고 연약하나 엎드려서 비오니 성령강림 하옵소서 충만하게 하소서. 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아멘.” 어머니는 아버지의 병마 앞에서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당신의 연약함을 주님께 간절히 비셨다. ‘;애통하며 회개’하오니, ‘성령강림’하셔서, ‘기도’를 ‘들어’ 주시 기를 날마다 날마다 애원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이 지난 어느 봄날, 동생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금산사 벚꽃을 보러 갔다. 하얀 꽃송이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나무 아래에서 어머니는 소녀처럼 좋아하셨다.
ㅡ꽃이 어쩜 이렇게도 곱게 피었을까. 너희 아버지 계시는 천국도 이럴 거야.
그때 나는 어머니를 멀찍이서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모처럼 환하게 웃고 계셨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들처럼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덩달아 하하 호호 웃어댔다.
ㅡ 자식들과 꽃구경하고 다니니까 좋긴 좋다. 나중에 더 좋은 곳으로 놀러 가자. 꼭.
늙어가면서 어머니가 더더욱 보고 싶어 진다. 벚꽃이 필 때면 하늘 자락을 따라 스르륵 내려오실 것 같다.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라고 했던가. 이제 와서 가슴 두드리며 발을 동동 굴러도 어찌 시간을 되돌리겠는가. 어머니는 이미 멀리 가셨지 않은가. 울지 않겠다고 늘 다짐하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가 되어 버린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머니를 위한 기도를 한다. 어머니 말씀대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살겠다고 기도한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성령’이 ‘온전히 강림’하시기를 간절히 빈다. 살아계실 때는 잘못하고서, 돌아가신 후에 이렇게 후회하는 어리석은 자식이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어머니가 늘 부르셨던 ‘성령이여 강림하사’를 부른 후에 우리는 ‘나의 갈길 다 가도록’을 불렀다. 하나님이 우리의 갈 길을 잘 인도해 주시라는 바람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에게 드리는 다짐이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받은 영혼 하늘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어머니가 그토록 애원했던 ‘성령’의 감화를 받아 찬송을 부르며 하늘나라로 가겠다는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어머니가 보여주셨던 믿음의 깊이를 손톱만큼도 따르지 못하고 있다. 내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나 편안대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보여주셨던 믿음의 자세는 따르고 싶다.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는데 참 마음이 무겁다. 절차가 부족하고,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잘 받아주셨을 것이고, 어머니는 무조건 잘했다고 하실 것이다.
꿈에서라도 만나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