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물구나무 하나 키우기

세상을 바라보는

by 힘날세상


새벽에 잠이 깼다.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서 소위 ‘미라클 모닝’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쩌다 눈이 떠지는 때가 있다.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 몰래 살짝 빠져나온다. 노트북을 켜놓고 마주 앉았다. 오늘도 스스로 글빚에 몰려보려는 심사다. 자판을 두드려도 화면에 글자가 써지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판을 두드리지만 글자로 살아나지 않는 것이다. 글은 써지지 않았다.


밤을 건너오느라고 아직 어둠을 떨어내지 못한 새벽이 창문 밖에서 기웃거린다.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는 표정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저는 참 답답하다는 듯 이리저리 바둥거린다. 한참을 그냥 바라본다. 휙 던지면 쉽게 받을 거리인데도 입을 삐죽 내밀고 동동거리는 것은 무엇인가. 일찍 일어난 새 한 마리가 뾰로롱뾰로롱 새벽을 가른다. 가느다란 파동이 인다.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어둠.


동네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몸을 잔뜩 키워 올린 단풍나무는 간밤을 꼬드겨 얻어낸 이슬을 이파리마다 걸어 놓았다. 밤을 새워 제 몸을 닦았을까. 단풍나무 아래서 발돋움을 하고 있는 남천은 그냥 희멀건 어둠 사이로 하늘이나 바라보고 있다. 있는 대로 다 몰려온 토끼풀은 떼를 지어 고개를 들고 있다. 그 가녀린 작은 이파리 속에 송이송이 흰 꽃을 다독이고 있으리라.


어둠이 짙고 두꺼워야 새벽이 아름답다. 행복을 말할 수는 없다고 해도, 어둠을 걷어내는 새벽의 흥겨운 몸짓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하기는 하다.


창문을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새벽이 밀려든다. 덩달아 아직 남아 있는 어둠이 잔잔한 바람을 더불고 뒤따른다. 상쾌하다는 생각을 하려다가 점령군처럼 밀려든 새벽의 군상(群像)에 화들짝 놀랐다.


ㅡ 밤의 뒤태를 보았나?


새벽은 묽어져 흩어지는 어둠의 꽁무니를 붙잡고 나직이 속삭였다.


밤은 한 번도 뒤태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나는 밤의 뒤태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올빼미처럼 밤이 되어야 무엇인가를 시작했다. 어둠의 두께를 느끼며 책장을 넘겼고, 남의 집 창문의 불이 꺼질 때부터 노트북을 두드렸다. 그러면서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밤은 실타래처럼 긴 시간들을 품고 있었고, 화수분처럼 끝없이 이야기들을 쏟아내었다. 활자들은 밤의 두께를 먹고 살아났다. 밤은 튼튼한 울타리를 두르고 새벽을 가두고 있었다.


ㅡ 물구나무를 서봐. 밤이 어떤 걸음으로 세상을 돌아다니는지 보란 말이야.


희미해져 가는 어둠을 향해 물구나무를 섰다. 한꺼번에 서지 못하고, 몇 번의 헛발질을 한 다음에야 겨우 해냈다. 코가 막히면서 머릿속으로 한꺼번에 피가 몰려들었다. 몸뚱이가 흔들렸다. 어떻게든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버둥거렸다. 벽에 기댄 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창밖으로 어둠이 벗겨져 나가는 하늘이 보였다. 언제부턴가 하늘은 잿빛이다. 파란 하늘을 그리는 것은 사치가 되었다. 단풍나무는 그 작은 이파리들을 죄다 하늘로 쏘아 올렸다. 어느 사이 단풍나무는 자기의 키를 엄청나게 키워놓았다. 뿌리를 박고 있는 굵은 기둥은 다 감춰버리고,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애기 손바닥만 한 이파리만 하늘에 달아놓았다. 늘 뾰로통한 얼굴로 서 있던 앞 동의 꼭대기가 하늘을 베고 손을 흔들었다. 시멘트로 된 사각의 얼굴은 낭창낭창한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있다. 어둠이 걷혀가는 하늘은 수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 지금까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커다란 연못이었다.


분홍빛 분칠을 곱게 한 새색시가 다소곳이 앉아 있다. 나뭇가지를 끌어안으려는 바람은 진초록의 수작을 부리고 있고, 이제 막 일어난 사람들이 발을 내디디는 새벽녘의 시간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눈 비비며 올라타는 사람들을 맞아주는 첫차의 클랙슨 소리를 들은 것 같다.


ㅡ 이것이 밤의 뒷모습이군.


밤은 스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밤은 새롭게 변신하고 있었다.

책장에 꽂아 놓은 책들이 한꺼번에 일어섰다. 자신들의 활자를 다 털어내었다. 신경림 시인의 『갈대』 위에 서정윤의 『홀로서기』가 쏟아졌다.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이 먼저인지,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인지, ‘어딘 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기다려 손을 맞잡고 속으로 같이 울어야 하는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누렇게 변색이 되어버린 시집(詩集)을 읽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때가 많았다. 장편이든 단편이든 작가가 생명을 불어넣은 사람들을 만나 술잔을 들어 세상을 푸념하기도 했다. 감성이 넘쳐나는 수필이 펼쳐내는 그 애잔한 이야기에 눈물짓기도 했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 토하는 울부짖음에 혀를 차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렇게 책을 읽었다. 세상으로 걸었다.


첫차는 이미 출발해 버렸고, 재갈거리며 학교로 가는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 끝에 어둠은 어느덧 제 꽁무니를 감추었다. 나만 홀로 물구나무를 선 채로 그 새벽인지, 아침인지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새벽을 따라 한꺼번에 밀려 들어온 어둠을 따라 물구나무를 하나 키워야겠다. 어둠이 덕지덕지 묻은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며 ‘조용한 울음’을 울어댈 물구나무를 꼭꼭 눌러 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