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벌레 Apr 02. 2021

얼음 속의 소녀들 (The Farm)

톰 롭 스미스 / 박산호 옮김

은퇴 후 시골에서 낭만적인 전원생활을 보내는 줄만 알았던 아버지에게서 갑자기 이런 연락이 오면 어떨까? 엄마가 심각한 망상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말도 없이 퇴원했다고. 그리고 잠시 후에는 그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아버지의 말은 모두 거짓이고 그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책의 초반부에서는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한 명은 완벽한 진실, 한 명은 완벽한 거짓을 말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느 한쪽의 거짓이 반전처럼 밝혀지면서 끝이 나겠지?"라고 생각했다. 보통 영화나 책에서 이러한 상황을 보면,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약자의 외침이 진실인 경우가 많다. '얼음 속의 소녀들'에서도 약자는 명백하게 엄마인 '틸데' 쪽이고, 그래서 주인공인 아들마저 엄마의 말을 믿지 않았을 때 나는 배신감 비슷한 걸 느꼈다. (하지만 다른 감상을 읽어보니 처음부터 엄마의 말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아서 신기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틸데의 말은 진실이 아니다. 적어도, 100% 진실은 아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는다. 애초에 그 두 가지는 칼로 무 자르듯이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직접 그 시골에 찾아가 밝혀내는 틸데가 겪은 끔찍한 소녀시절에 대한 진실은 왜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해 준다. 모든 상황을 알게 됐을 때, 틸데의 말은 거짓말 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구조 신호로 들린다.


하지만 틸데는 그러한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아래 대사가 참 좋았다.


"어쩌면 이런 무지의 패턴은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온 것으로, 여자들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들이나 비판들을 억지로 비워내면서, 이 농장들만큼이나 오래된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거겠지. (...) 그런 역할을 연기하면 나 역시 이곳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거고, 어쩌면 그것도 일종의 행복일지 모르겠다. 다만 혼자 있을 땐 다르겠지. 그러면 나 자신을 증오하게 될 거야.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자신에 대해 어떤 기분을 느끼는가에 따라 삶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거야."


부서질 대로 부서진 마음이겠지만,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틸데와 가족들은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갈등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의 아들에게 스웨덴에 가서 진실을 마주하는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엄마의 상처를 치유할 열쇠를 발견할  있었다. 틸데는 자신의 아버지로 인해 산산조각 났지만,  다른 가족인 아들로 인해 살아갈 용기를  듯하다. 그래서 작가는  둘 모두에게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붙인  아닐까? 가족은 가장 끔찍한 존재가  수도, 가장 소중한 존재가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아래는 틸다의 이야기에 나오는 다양한 상징 속에서도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감자 샐러드. 첫 번째는 트롤이지만 무서워서 그릴 엄두가 나지 않음 ㅜ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