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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벌레 Jul 27. 2021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 연진희

자신을 둘러싼 온갖 복잡한 상황을 지극히 사소한 점까지 상세하게 아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복잡한 상황과 그것을 이해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그 자신에게만 우연히 일어난 특수한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그에 못지않은 나름의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못한다.

어떤 사람을 무척 싫어하다가도, 아주 사소한 속사정을 듣는 것만으로 눈 녹듯이 미움이 사라질 때가 있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도 그런 감정을 느꼈다. 겉으로 보면 안나는 불륜을 저지른 후 가족을 버리고 외국으로 떠난 비도덕적인 사람이지만, 안나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듣기 시작하면 그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인물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혐오스럽기까지 한 사람도, 당사자 내면으로 마이크가 옮겨 가는 순간 마냥 미워하기만 하는 건 불가능했다. 내가 <안나 카레니나>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스테판 아르키지치인데, 그는 아내에게 불륜을 들켜 가정 파탄 직전까지 가고도 계속해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유흥에 재산을 탕진하며, 하는 일 없이 돈만 많이 주는 직업을 얻으려는 말 그대로 한심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야기 초반에 그가 불륜으로 괴로워하는 장면에서 그가 너무나도 불쌍해 보였고, 그 후로도 어찌나 유쾌하고 기분 좋은 성격으로 그려지는지 도무지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장 정이 가고 기억에 남는 인물은 안나와 함께 이 소설의 주인공 격인 레빈으로, 생각도 무척 많은 데다 사교계 사람들과 좀처럼 능숙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 장대한 소설 내내 정치, 직업, 노동에 대한 고민에 빠져 살아가고, 중반부에서 형의 죽음을 겪고는 죽음과 삶의 의미에 대해 고뇌한다.  

'내가 과연 무엇인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갈 수는 없어. 그런데 그것을 알 수 없단 말이야. 그러니 난 살 수 없어.' 레빈은 혼잣말을 했다. '무한한 시간 속에서, 물질의 무한성 속에서, 무한한 공간 속에서 거품 같은 유기체가 분리되어 나온다. 그리고 그 거품은 잠시 버티다 터져 버린다. 그리고 그 거품은, 바로 나.'

정도는 다를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가까운 사람들과 내 삶이 얼마나 덧없는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이야기한 적은 없고, 할 용기도 없다. 그런 은밀한 고민을 입 밖에 꺼내는 것이 왠지 부끄럽기도 하고, 말한다고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방 안의 코끼리가 따로 없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책에 죽음과 삶에 관한 문장이 나오면 누가 대신 소리를 질러 주는 것처럼 속이 시원하다. 100년도 더 전에 멀고 먼 러시아에 살았던 한 사람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살았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그 역시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다시 공허함을 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몇 년 전 겨울에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뮤지컬을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이 선로에 뛰어들며 끝나는 장면만 기억이 나서, 소설 역시 비극적이고 우울하기만 할 것 같아 읽을 기분이 별로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읽는 동안에는 소리 내서 웃을 정도로 재미있는 장면도 있었고, 이렇게 다 읽고 소감을 정리해보니 꽤나 긍정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러니 혹시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읽어보면 좋겠다. 나는 10년쯤 후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 그만큼 인생을 더 살고 다시 읽으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과연 내가 별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하지만 별들의 움직임을 바라볼 때는 지구의 자전을 상상하지 못하겠어. 그러니 내가 별들이 움직인다고 말할 때, 그 말은 틀린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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