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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몬트 마운트 케냐 사파리

꿈결같은 순간의 휴식이었다

by 준구

케냐 북부 삼부르에서 나이로비로 이동하는 길에 케냐마운틴 좌편에 위치한 페어몬트 마운트 사파리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현지인 기사가 우리 일행을 태우고 울퉁불퉁한 아프리카의 거친 길을 달려 목적지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이 가르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잘 닦인 길을 통과하는 다소 긴 구간이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는 짧은 직선 루트였다. 가이드는 자신도 처음이라는 짧은 구간을 선택했다. 우리의 고행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4륜 구동의 아프리카 지형에 적합한 SUV가 아니었다면 이미 바퀴가 빠져 튕겨 나갔을 법한 꾸불한 산길을 연속해서 만났다. 길이 조금 평탄하다 싶은 곳을 달릴 때도 4열의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자리에서 높이 튀어올라 차량 지붕에 머리를 박기 일쑤였다.

전체 거리가 200킬로 조금 넘는 길이었지만 깊게 파이고 가파른 길을 달리느라 몸은 녹초가 되었고 엉덩이가 얼얼했다.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점심이 지난 오후에야 도착한 사파리클럽은 진입하는 출입구부터 별천지였다.

입구 진입로

사파리 뒤쪽으로는 5천 미터 높이의 케냐마운틴 봉우리가 보였고 호텔도 해발 2천 미터 고지에 놓여있었다. 넓게 자리 잡은 사파리 클럽 안에는 골프장을 비롯해서 작은 동물원과 수영장 꽃과 수목으로 가득한 정원이 연이어졌다. 1950년대에 건물을 지어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데 유럽풍의 고풍스러운 건축이 초록의 자연과 산을 배경으로 서있다.

해가 지는 시간으로 기울지만 안았다면,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피곤하지만 않았다면 기필코 수영복으로 갈아입었을 것이다. 맑고도 청명한 수영장의 물속으로 들어갔어야만 아깝지 않을 숙박이었다. 적어도 물가의 썬베드에 누워라도 있었어야 야속하지 않을 황홀함이었다. 그렇지만 시간과 몸의 컨디션이 받쳐주지 않았다.

겨우 케리어 짐을 숙소에 풀어놓고 침대와 소파에 몸을 쳐 박고 쉬는 게 고작이었다. 창문을 열어 두고 산속의 공기를 깊이 호흡하며 푸른 잔디와 숲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잠시 방에 머물렀다 바깥으로 나갔다. 피곤하지만 이 아름다운 환경을 돌아보면서 눈에 담지 않는다면 억울할 것 같아서 로지 내의 경내 이곳저곳을 살피며 걸었다. 일행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이미 나와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여자분들은 화장을 예쁘게 마치고 빨간 립스틱으로 기분을 업시키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공작새와 초식 동물들은 스스럼없이 사람들의 주변을 돌아다녔다.


숙소 내 정원

수영장과 썬베드
벤치



호텔 건축양식과 주변환경만 보면 이곳은 유럽의 휴양지 중 한 곳이지 아프리카 케냐로 보이지 않았다. 머무는 투숙객 역시 하얀 피부색의 유럽 노인들로, 은퇴 후의 한가로운 여행길에 오른 사람들로 보였다.

수영장의 물은 어찌나 맑던지 손이라도 담그지 않으면 억울하고 후회할 거 같아 일부러 수면의 감촉을 느껴본다. 썬베드에 누워 잠깐이라도 쉬었으면 좋겠단 생각만 하면서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은은한 조명을 켜 놓은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담아 온다. 아프리카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열대 과일과 잘 구운 육류를 케냐 커피와 함께 곁들였다. 일행과 한 테이블에 앉아 음식과 대화를 나누며 밤의 들뜸과 여유를 즐기다. 방으로 돌아왔다. 산 아래라 밤공기가 차다. 낮엔 한 여름날의 기온이고 밤엔 초가을의 쌀쌀함이다. 호텔 직원이 벽난로에 불을 지펴 놨다. 침대 이불 안에는 따스한 물을 데운 주머니를 넣어 두었다. 아날로그 한 방식으로 추위를 좇는 모습이 정겨웠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케냐마운틴

벽난로

아프리카에선 이동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에너지를 쏟게 만든다. 영상제작을 목적으로 출장 와서 쉼 없이 일하고 움직이다 보니 이렇게 갑작스럽게 주어진 고급진 환경과 여유로운 시간이 낯설면서 귀하다. 이런 좋은 숙소에서 하루만 더 머물며 쉬어갈 수만 있다면 쌓인 피로가 싹 가시고 몸도 상쾌해질 것만 같다. 결단코 하루를 더 연장할 수 없겠지만 언젠간 저 유럽의 노인들처럼 한가롭고 여유 있게 머물 게 되길 염원하면서 쓰러지듯 잠에 빠져든다. 마른 장작이 타면서 내뿜는 규칙적인 소리와 열기가 자장가처럼 파고들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빨리 마치고,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호텔 주변 정원을 산책했다. 비밀의 정원처럼 가꿔진 공간엔 아름드리나무와 꽃과 잔디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향기를 내뿜는다. 이 별천지 같은 파라다이스의 초현실적 공간을 떠나 향한 곳은 나이로비 도심 속의 슬럼가 키베라다.

페어몬트 사파리 숙소에서 뿜어내는 공기가 천상의 향기로움이었다면 키베라 초입에서 풍기는 냄새는 악취로 역한 배설로 썩는 역겨움이었다. 아프리카는 최상과 최악이 공존하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이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산다.

그럼에도 가끔씩 페어몬트 사파리의 푸른 잔디와 파란 물가의 수영장이 떠오른다. 그때 하루만 더 그곳에 머무르며 쉬었더라면 여한이 없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꿈같은 상황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그 순간을 그림의 떡처럼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을 게다. 그렇게 다음을 기대하며 꿈꿔보는 수밖에.

꿈같은 곳에서 보낸 꿈결 같은 순간이었다.

멀리 보이는 케냐마운틴 봉우리

비밀의 정원

숙소 전경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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