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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국 Dec 24. 2020

진정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21세기의 황표정사와 조학주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속한 조직은 대표가 몇 년마다 바뀐다. 선출된 대표는 임기 동안 머무르다 퇴임한다. 대표의 임기가 정해졌다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최악의 대표가 오면 몇 년이라는 기간은 너무나도 길게 느껴진다. 저런 사람이 조직의 대표라는 것이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결국 대표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온 힘을 다해 존버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대표의 임기가 정해졌다는 것은 장점으로 작용한다. 아쉽게도 대표의 임기가 짧게 느껴질 만큼 훌륭한 인품과 카리스마를 지닌 대표는 내가 입사한 이래 취임한 적이 없었다.


대표는 임원이기에 조직 구조상 직원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있다. 여기서 어느 정도라 표현한 이유는 직원 개개인의 직책에 따라 체감하는 거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말단 직원이나 실무를 처리하는 주임, 대리라면 임원과의 거리는 상당히 멀게 느껴질 것이다. 팀장 이상의 직책을 맡은 직원이라면 임원과 빈번하게 마주할 정도로 거리감은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대표는 직원의 채용과 퇴직, 진급, 포상에 관한 결정 권한을 갖는다. 요즘 같은 세상에 실력과 능력을 무시하고 양손 비비며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직원들의 평가를 후하게 줄까 생각하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도 이놈의 조직은 그렇다.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허쉬'를 보니 이 문제는 비단, 이곳뿐 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브런치에 가장 먼저 썼던 글에도 언급했지만, 대표는 간부 아닌 직원들은 대부분 모른다. 아무리 뛰어난 업무능력을 발휘해도 모른다. 조직 구조의 문제와 한계로 모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표는 일 잘하는 직원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저 어쩌다 한 번 하는 회식에서 비위 맞춰주고 회사생활을 빙자한 사적 모임에서 같이 공 한번 차주는 직원들을 기억할 뿐이다. 더럽고 치사해도 이게 현실이다.




조선시대 문종은 어린 단종이 걱정되어 새로운 인사제도를 만드는데 바로 '황표정사'다. 의정부에서 낙점한 인물을 왕이 도장만 찍었던 기형적인 인사제도였다. 이 기형적인 인사제도가 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 2020년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영화 관상에서 표현된 황표정사


내가 속한 조직에서 중간 간부는 조직 구조상 발생하는 임원과 직원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가교 역할을 위해 임명된다. 직원 가운데 올바르고 청렴한 가치관을 가진 이가 맡아야 할 직책이다. 나는 지금의 중간 간부를 보면 이 사람이 떠오른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조학주




드라마 킹덤의 악역인 조학주는 권력에 대한 욕망과 굶주림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제 뜻을 거스르거나 반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처단한다. 드라마 내내 주인공 이창과 대립하며 그를 위협한다.


킹덤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맹렬한 기세로 주인공 일행을 뒤쫓은 좀비 무리가 아니다. 이 세상의 그것이라고 할 수 없는 살육의 존재들을 자신의 야욕과 야망을 위해 이용하는 조학주와 그의 무리의 광기가 이 작품에서 표현하는 공포의 근원이라 나는 느꼈다.


내가 속한 조직의 중간 간부는 점점 조학주가 되어갔다.


중간 간부가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대표님 지시사항입니다." 


이상하다. 조직의 대표가 사사롭고 사소한 일을 지시할 리 없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대표가 지시했다니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이 모든 직원은 중간 간부의 말을 따른다. 절망스러운 사실은 위협을 했든 회유를 했든 그를 추종하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왕국을 세워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의 목표에는 내가 포함되어 있다. 그의 눈에는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내가 반역을 꾀한 역모자로 보일 것이다. 이내 나를 제외하고 자신을 추종하는 내 후배의 진급을 상신했고 나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기 위해 내 입사 동기의 진급을 상신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표는 일말의 평가나 검토 없이 황표가 찍힌 인물에 도장을 찍을 뿐이었다. 


그렇게, 아득한 조선시대에서 시행했던 황표정사가 여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조학주에 의해 자행되고 있었다.




내 멋대로 그의 말로를 예상한다. 킹덤의 조학주가 그랬듯 그 역시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미 조직 내에서 그에 대한 반감을 품은 직원들이 상당수다. 시기와 기회를 엿보며 그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있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 했다. 그가 피웠다고 착각하는 화려한 꽃은 곧 생기를 잃을 것이다. 그가 가진 권력은 종언을 맞이할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무섭다. 그의 치졸하고 비겁한 행실과 처사가 무서운 게 아니다. 그의 왜곡된 가치관과 일그러진 욕망이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전이되어 조직 전체를 괴멸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내가 느끼는 공포의 근원이다.


좀비는 결코 무섭지 않다. 진정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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