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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국 Aug 18. 2022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천하를 다스릴 마음은 없지만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대학의 8조 목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지만 대략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 무렵 이 고사성어가 와닿았다. 문자에서 느껴지는 딱딱하고 오래된 느낌 탓에 그리 좋아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특히 최근 몇 년간 이 말이 정말 와닿는다.




몸이 아픈 게 정말 싫다. 


나는 두통을 빈번하게 겪는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귀 옆머리가 찌르듯이 아픈 편두통 증상을 겪는다. 식사를 조금이라도 급히 하면 속도 안 좋지만 머리 전체가 너무 심하게 아프다. 두통을 겪을 때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 나무토막이 된다.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면서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에너지 드링크와 비타민으로 내일 쓸 체력을 가불 받기도 한다.


결국 내가 내 몸을 수양하지 못하면 나는 물과 단백질, 지방으로 이루어진 물질에 불과할 뿐이다.


내 몸을 수양했다면 가족을 돌봐야 한다. 


사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이자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가족 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족이 겪고 있는 문제가 있는데 이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언젠가 자세한 글을 쓸 생각이지만, 현재 나의 가족이 겪고 있는 문제는 '층간소음'이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제하려고 노력한다. 대표적으로 타인의 감정과 행동이 이에 속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 내가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것에 나의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을 나는 정말 혐오한다. 그래서인지 타인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하는 것이 꺼려진다. 내게 고민을 말하는 사람들은 푸념을 늘어놓고 위로를 받고 싶거나 스스로 답을 정한 상태에서 내게 확인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조언을 귀담아듣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지금 겪고 있는 층간소음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윗 집의 행동이다. 몇 번의 대화 시도 끝에 소음의 빈도와 크기는 아주 약간 줄었다. 나는 현실적인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 윗 집의 소리를 참고 들으며 살지, 이사를 선택할지. 문제는 아내다. 출근하는 나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저녁때부터다. 하지만 육아를 하는 아내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에 머무른다. 즉, 나보다 잦은 빈도로 윗 집이 내는 소음을 겪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가 윗 집에 느끼는 감정은 분노와 증오다. 아내는 낮시간에 소음을 피해 매일 외출을 한다. 내가 내 집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이다. 몰상식한 윗 집 사람들 때문에 내가 힘들게 번 돈과 아내의 소중한 시간이 일방적으로 낭비되고 있다. 가끔 뉴스에서 층간소음과 관련하여 안 좋은 소식이 보도되는 것을 보며 피의자들이 겪었을 고통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사실, 가족이 겪고 있는 문제 때문에 일상이 힘들다. 지금 이 글에서는 비록 짧게 서술했지만 층간소음과 관련하여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얼마 전 작성한 글에서 언급했지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나는 가족의 안위와 투자만 생각하고 싶다. 그 생각만으로도 시간과 에너지가 모자라다. 그런데 불쑥 층간소음이라는 최악의 이슈가 등장했다. 가족의 평온한 삶을 위협하고 있다. 아내와 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답답하고 화가 난다. 울고 싶을 만큼 정말 힘들다.


결코 나라를 다스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내 한 몸 건강하고 우리 가족이 행복한 삶을 살긴 바라는 내가 너무 잔혹한 시련을 겪고 있다. 어릴 적 내가 느꼈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가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느껴졌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저 말은 세상 그 무엇보다 어렵고 무거운 말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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