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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근애 Jan 20. 2024

결혼을 하고 이상형을 만났다.

어디서 봤더라?

첫째를 품었을 때 초음파 사진을 찍었었다. 다들 초음파 사진을 보면 아기 얼굴을 짐작할 수 있다는데 초보 엄마인 나는 짐작이 되질 않았다. 그때 초음파 사진을 보신 급식소 조리실무원 여사님이 걸쭉한 사투리로 한 마디 던지셨다."잘 생깄네!"

잘 생겼다고? 어떻게 알 수 있지? 아기 얼굴도 궁금했지만 그 보다 빨리 아기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다.

드디어 아기가 태어났다. 약 3시간의 진통 끝에 만났다. 그런데 신생아가 이렇게 잘 생겼다니. 혹시 아기가 바뀐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 만큼 첫째는 이목구비가 꽤 또렷한 신생아였다. 얜 누굴 닮은 거지?

아이가 자라며 시댁 어른들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아빠를 닮았다며 입을 모았다. 어머님은  "이 아일 안고 있으면 꼭 지 아빠 어릴 때 안고 있는 기분이야"라고 거듭 말씀하시곤  했다. 근데 엄마인 내 눈엔 아무리 봐도 아빠는 안 닮은 것 같은데...

둘째는 바랐던 대로 딸이었다. 엄마도 아빠도 아닌 첫째를 닮았으면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초음파에서 먼저 만난 둘째는 나의 기대를 와장창 무너뜨렸다.

첫째랑은 확연히 다른 얼굴. 딸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걱정이 되기도 했다.(딸아 미안)

초음파 사진에 반전은 없었다. 뱃속보다는 부기가 좀 빠진 것 같았지만 초음파 사진 그대로였다. 또 생각했다. 근데 얜 누굴 닮았지?

그런데 이번엔 사람들이 날 닮았다고 한다. 그리고 친정에선 나를 똑 닮았다며 첫째보다 더 예뻐하셨다. 하지만 난 인정할 수 없었다. (올해 8살인 둘째의 외모는 누구보다 빛나고 있다.)


갑작스레 생긴 셋째였지만, 이 아인 누굴 닮았을까 궁금했다. 뱃속에서 항상 얼굴을 감추고 있어 사진을 찍는 게 쉽지 않았다. 겨우 건진 사진. 사진으로는 누굴 닮았을지 짐작이 되질 않는다.

셋째를 만났다.

어떻게 보면 첫째, 또 둘째도 닮은 것 같았다. 이제는 사람들도 엄마, 아빠보다 형을 닮았다고도 하고 누나를 닮았다고도 했다. 오히려 안도했다. 엄마 눈엔 셋 중에 제일 완벽했다. 나의 이상형을 내 뱃속에서 낳았다. 작은 눈도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남편과 한바탕하고 난 다음 날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막둥이를 안고 있는데 순간 아이가 낯설게 느껴졌다. 나의 귀염둥이가 아니라 남편 얼굴이 오버랩되는 것이었다. 이 씁쓸한 기분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자식이 지 아빠 닮지, 안 닮겠나?" 하며 큰소리친다.

하,이게 아닌데...


 그제야 현타가 왔다. 이 아이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마리아처럼 성령으로 잉태된 것도 아니다. 남편과 나의 컬래버레이션의 결과라는 것을. 그리고 잊고 있던 기억이 떠 올랐다. 아, 남편도 내가 한 때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는 걸.

 허허,하루하루 아빠를 더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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