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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근애 Dec 17. 2023

따뜻한 말 한마디

늦둥이 엄마입니다만.

드디어 셋째가  집에 왔다. 조리원은 산모들에게 천국이라던데 워킹맘에 임산부였던 내게 조리원 생활은 여간 무료한 게 아니었다. 내 앞에 펼쳐질 일은 생각지도 못한 채 집에 가고 싶단 생각만 했다.


조리원 퇴소일이 딱 명절연휴였다. 오전 11시 이전에 퇴소하면 된다고 했는데 우리 부부는 평소와 달리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입추라는 이름도 무색하게 조리원에서의 기온은 제법 높았다. 셋째가 집에 가는 날은 다행히 가을비가 촉촉이 내려 우리의 걱정을 덜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처럼  우리 부부의 걸음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당당했다. 건강하게 셋째를 만나 집까지 데려오는 중대한 미션을 수행 중이니 그럴 법도 하다.


아기가 처음 우리 집에 왔다는 설렘도 잠시. 아기의 울음은 우리의  일상 대부분을 바꿔 놓았다. 그제야 약 10여 년 전의 서툰 우리 부부의 모습이 떠 올랐다. 맞아, 신생아는 이랬었다.


울면 먹이고 달래고 싸고 치우고를 반복하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하루가 이리 짧았었나.

출산 전부터 남편과 충분히 육아에 대해 협의를 했고, 상대적으로 늦게 자는 남편이  케어를 하기로 했다. 


나는 남편을 믿기로 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기 울음소리에 도통 잘 수가 없었다. 3시간쯤 안눕안눕의 상황이 지속되자 남편은 급기야 짜증을 냈다. 난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면서도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도 했다. 언제는 이쁘다며 호들갑 떨더니만.


 이유인즉 첫째, 둘째 때는 휴직했다는 이유로 거의 4년을 독박육아였다. 80년대생 남편이지만 60년대생 남편과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저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집안일은 물론 육아를 함께 하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그런데 이 남편이 늦둥이 셋째는 얼마나 이뻐하는지 자기가 새벽을 케어하겠다고 먼저 선언했다. 못 미덥기도 했지만 위에 두 아이도 있기에 강제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런 남편이 아기의 숱한 잠투정에 지쳐 있던 새벽녘, 아이를 안고 넌지시 말을 꺼낸다.

"자기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두 아이를 혼자 다했어?"라는 거다.


이 말은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에 있어 매우 기념비적인 말이다. 내가 이제껏 해 왔던 독박육아에 대한 치하이자 자신의 참회를 담은 고백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적으로 나 혼자만의 평가다.)

말 한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는데 목석같은 남편의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은 왜 이리 따스해지는지. 그간의 얼어붙은 내 마음이 잠시나마 눈 녹듯 했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자발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남편을 대신해 새벽 보초를 섰다.  4시간여의 씨름 끝에 새벽 1시쯤 간신히 공갈젖꼭지를 물려 재운 아기는 새벽 4시쯤 깼고 그 이후부터는 쭉 내가 수유하게 된다. 남편은 잠결에 새벽에 아기가 깨면 자기를 깨우라는 말을 남기고 야속하게도 딥슬립을 했다는 건 안 비밀이다.


다음부터는 말 한마디에 절대 쉽게 넘어가지 않으리. 꾀돌이 남편이랑 사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늘 밤은 모두가 진정 굿나잇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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