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4시간 수유텀 만들기는 성공한 듯 보였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하지만 아름다움에 심취할 여유는 찰나였다.
애가 셋인 집에서는 확실한 사치임을 다시 확인했다.
한 달 가까이 감기로 기침을 달고 있었던 둘째. 기침이 잦아든다 싶었는데 하원 후 자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다시 긴장하게 된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막내가 집에 온 이후로 온 식구가 9시 이전 강제 취침을 하고 있는데 피곤할 게 무어람. 늘 활력 넘치는 아이의 눈이 풀린 걸 봐서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다시 왔구나 싶은 예감이 들었다.
하원 후 곧장 방에 들어가 잠을 자더니 저녁도 먹질 않고 다시 잠을 청하는 아이. 이마를 짚어보니 미열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아데노 바이러스의 전조 증상 인가 싶어 모두 비상이다. 아데노 바이러스는 미열로 시작해 40도가 넘는 고열로 간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 미열이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 딸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재웠다.
아침이 되었는데도 미열이 여전하다. 오늘 하루는 집에서 쉬기로 했다. 세 아이 중 두 아이만 있는데도 아침부터 부담백배다. 다행히 오전에는 시어머니께서 막내를 돌봐주시기로 하셔서 둘째는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막내가 태어난 뒤 헛헛한지 아기를 안고 있으면 와서 치대길 자주 했던 둘째였다.
오전 내내 같이 있었는데도 채워지지 않았는지 막내를 재우러 가자 쫓아와 옆에 눕는다. 거실에 나가면 겨우 잠든 막내와 논다며 발을 만지작 거린다. 밥 먹을 때도 꼭 엄마가 옆에 있어야 하고. 아프다 보니 7살이라도 아기가 된 것처럼 군다. 분명 기저귀, 손수건 심부름도 곧잘 하는 아인데, 자기 몸이 안 좋은 게 확실히 표가 난다. 도와주는 것 같은 아군인 것 같다가도 동생이 울 때 결정적인 방해를 하는 걸 보면 아군으로 위장한 적군인가 싶기도 하다.
하루 종일 두 아이에게 치이다 보니 오늘 밤은 더 곤하다. 해가 지고 온 식구가 잠이 들어 고요해지니 그제야 더 품지 못했던 둘째가 아픈 손가락으로 다가온다. 고작 7살인데 누나라는 이유로 의젓하길 기대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 내일은 더 많이 안아줘야지. 더 보듬어줘야지. 더 예쁘게 말해줘야지. 다짐하며 짧은 잠을 청한다. 이제 곧 막내의 밥 달라는 울음소리가 잠을 깨울 테니.